인생 택시
어머니의 품에 스며들던 외할머니의 향기는 어린 시절의 마지막 겨울밤에 내리던 눈발처럼 내 마음을 부드럽게 감싸주었다. 온기는 시간 속에서도 바래지 않고, 아직도 희미한 빛으로 내 기억 속에 남아 있다.
외할머니의 미소는 희끗희끗한 머리카락 사이로 번져나와 추운 날 손끝에 닿는 첫 햇살처럼 따스함을 전해주었다. 세월의 무게에 눌려도 새하얗게 빛나던 머리카락과 언제나 온화했던 표정은 세상의 모든 슬픔과 고단함을 품고도 잔잔히 웃어주었다. 미소를 떠올릴 때마다, 어린 시절 외할머니의 품속으로 돌아가 온기를 다시 느끼곤 한다.
외할머니는 삶의 무게를 묵묵히 견디며 5남 1녀를 키워내고도 혼자의 힘으로 험난한 길을 걸어가신 분이었다. 허리가 굽고 손끝이 거칠었어도 강인한 모습은 내 마음에 깊이 새겨져 있다. 농사일을 마친 후에도 바삐 움직이며 손주들을 챙기던 그녀의 손길은 나에게 주어진 짧은 시간조차도 영원히 잊히지 않을 소중한 순간이었다.
네댓 살 무렵, 외할머니는 나를 돌보러 오셨다. 나는 장난기가 많아 외할머니의 손길을 피해 이리저리 도망치기 일쑤였다. 그날도 마찬가지로 놀다가 하수구에 빠져 뼈가 다치고 말았다. 어머니는 화가 나서 외할머니를 탓했지만, 외할머니는 아무 말 없이 나를 바라보셨다. 잘못이 없음을 알면서도 변명조차 하지 않고 미안한 표정으로 서 있었다. 이러한 모습은 진정한 사랑이란 상대를 탓하지 않고 품어주는 것임을 내게 가르쳐주었다.
또 다른 기억은 대청마루에서 통조림 깡통을 들고 놀다 오른쪽 눈가가 찢어진 날이다. 피투성이가 된 나를 본 어머니는 또다시 외할머니에게 화를 냈다. 이번에도 외할머니는 변명 한 마디 없이 나를 꼭 안아주셨다. 따뜻한 품속은 세상의 모든 두려움과 아픔을 잊게 만들었다. 지금 얼굴에 작은 흉터는 외할머니의 무한한 사랑과 희생을 증명하는 소중한 표식으로 남아 있다.
어린 나에게 외할머니의 흰 머리칼과 주름진 손끝은 세상의 모든 위로가 담겨 있었다. 새벽녘에 잠에서 깨어나 외할머니의 품을 찾아 두리번거리던 순간들이 아직도 기억 속에 아련하게 남아 있다. 언제나 나를 지켜보며 따스함을 아낌없이 나눠주던 외할머니의 손길을, 그때는 당연한 것처럼 받아들였던 나의 무심함이 지금에 와서야 서글프게 느껴진다. 그 사랑이 얼마나 큰 것이었는지 이제야 깨닫게 되어 죄송한 마음이 가득하다.
외할머니는 나를 품어주시는 것만으로도 행복을 느끼셨다. 그분의 따스한 품속에서 무조건적인 사랑을 배웠고 세상의 모든 용서가 그 안에 담겨 있었다. 말썽을 부리던 어린 나조차도 외할머니의 눈빛 속에서는 언제나 넓고도 깊은 사랑과 용서를 찾을 수 있었다. 그분의 미소는 어두운 길 위에 비치는 작은 등불처럼 내 삶의 방향을 밝혀주었다. 그 사랑은 말없이도 나를 지탱해주는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주었다.
세월이 흘러 어른이 된 지금, 외할머니의 모습은 여전히 기억 속에서 사라지지 않는 그리움으로 남아 있다. 어머니의 얼굴에 문득 비치는 외할머니의 표정을 볼 때마다, 가슴 속 깊은 곳에서 다시금 따스함과 그리움이 차오른다. 이제는 외할머니의 손길을 직접 느낄 수는 없지만, 그분의 온기는 여전히 내 안에서 나를 지켜주고 있다.
어린 시절, 외할머니가 떠나고 난 새벽이면 자꾸만 그분의 체취를 찾아 울고불고했다. 지금이라도 문을 열고 들어와 내 곁에 앉을 것만 같았던 외할머니는 더 이상 내 앞에 없었다. 그리움과 기다림으로 가득한 시간 속에서도, 외할머니는 여전히 내 마음속에서 조용히 숨 쉬며 나를 감싸주는 존재로 남아 있었다.
비록 외할머니는 이제 내 곁에 없지만, 그분의 존재는 여전히 삶을 지탱하는 힘이 되어 오늘도 내 안에서 빛나고 있다. 한때 나를 따스하게 품어주며 내 모든 것을 감싸주셨던 그 사랑은 세월이 지나도 내 삶의 모든 순간을 밝혀주는 불빛이 되었다. 어머니의 얼굴에 아련히 비치는 외할머니의 미소를 볼 때마다, 외할머니의 사랑을 새삼 떠올리며 깊은 그리움을 가슴에 품고 살아가고 있다.
망나니처럼 뛰어다니며 애만 먹이던 손주였지만, 외할머니는 그때도 나를 사랑으로 바라보셨을까. 내가 부린 어리광과 장난이 그분에게도 따뜻한 추억으로 남아 있기를 바랄 뿐이다. 그 순간들이 외할머니에게 작은 행복이었기를, 손주와 함께한 짧은 시간이 그분의 마음속에 작은 기쁨으로 남았기를 간절히 바란다.
지금은 더 이상 눈앞에 보이지 않는 외할머니를 생각하며 그리움과 사랑이 뒤섞인 기억 속에 잠겨본다. 빛바랜 기억들은 내 마음속에서 여전히 살아 숨 쉬며 삶의 가장 소중한 흔적으로 남아 있다. 외할머니의 품속에서 느꼈던 따스함은 세월이 흘러도 변치 않는 힘이 되어 오늘도 나를 지켜주고 있다.
외할머니는 내게 있어 사랑의 시작이었고 그리움의 끝이었다. 그 끝에서 나는 여전히 외할머니의 미소를 찾는다. 그 미소는 삶 속에서 사라지지 않는 빛으로 남아 내가 살아가는 길을 따스하게 비춰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