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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슴속호수 Nov 26. 2024

인생 택시

인생택시

태어나자마자 나는 인생이라는 택시의 좌석에 앉았다. 종착점이 언제 도착할지 알 수 없기에, 시간의 흐름에 따라 여정을 계속할 뿐이다. 종착지는 선택의 여지가 없는 마지막 목적지, 죽음이다.


 길을 걸어오며 쌓아온 경험과 지식은 모두 대가를 치러야 했다. 금전적인 비용뿐만 아니라, 시간과 노력, 실패와 좌절이 포함된 값진 교훈도 그 대가였다. 혁신적인 기술을 익히기 위해 쏟은 에너지도, 어려운 시기에 겪은 고통과 아픔도 모두 비용이었다. 이 모든 과정을 통해 강해지고 지혜를 얻었으며, 결국 지식과 통찰로 보상받았다. 이러한 대가가 내가 지급한 인생 택시비였다. 새롭게 나타나는 길마다 그에 맞는 택시비를 지급하며 여정을 계속해 나갔다.


 부모님의 품 안에서 시작된 인생의 여정은 방탄유리로 감싸인 자가용 같았다. 세상의 험난함으로부터 보호받으며, 비가 내릴 때는 포근한 우산이 되어주었다. 봄날의 햇살처럼 부모님의 사랑 속에서 평탄한 길을 달리며 삶의 기쁨을 만끽할 수 있었다. 손길이 닿을 때마다 불안은 사라지고, 사랑은 일상에 깊이 뿌리내렸다. 안전한 품 안에서 자라난 인생은 마치 꽃이 만개하는 봄날의 정원처럼 풍성하고 편안한 시절이었다.


 청년이 되어 직장이라는 법인 택시에 올라탔다. 정해진 노선을 따라 규칙적으로 움직이는 일상이 시작되었고, 조직 안에서 맡은 업무를 수행하며 안정된 생활을 누렸다. 그러나 반복되는 일상은 마치 붕어빵 틀 속에서 만들어지는 듯한 지루함을 점점 안겨주었다. 자유를 갈망하며, 철새가 봄바람을 타고 어디론가 땅을 찾아 날아가듯, 또 다른 직장을 향해 날개를 펼쳤다. 


 그러나 옮기는 직장마다 생각만큼 낭만적이지 않았다. 드물게는 넓고 탁 트인 국도를 달리며 시원한 풍경을 즐길 수 있었지만, 대부분은 울퉁불퉁하고 굴곡진 경로를 따라갔다. 종종 낯선 일에 부딪히며 예기치 못한 상황과 마주하기도 했다. 많은 것을 포기하며 어두운 터널 속에서 희망의 빛이 보이지 않던 어려운 시기도 있었다. 안개 속에서 헤매며 불안과 혼란을 겪던 시절도 있었지만, 다시 길이 보였을 때의 안도감은 이루 말할 수 없이 컸다. 이에 따라 선택의 중요성을 깨달았고, 우회로가 언제나 존재한다는 사실은 큰 가르침이 되었다. 


 운명은 간간이 예측할 수 없는 방향으로 흘렀으며, 그때마다 나만의 길을 개척해 나갔다. 강물이 바위를 뚫고 흐르듯이 장애물을 넘으며 나아갔다. 세상의 지도에는 내가 알지 못했던 길들이 숨겨져 있었고, 그 길은 또 다른 세계로 나를 이끌었다. 매 순간이 선택의 연속이었고, 내 여정의 그림을 완성하는 붓질이었다.

 법인 택시는 여러 사람과 만남을 이어갔다. 지친 동료를 태우고, 활기찬 후배를 태웠다. 매일 다양한 동승자를 맞이하며 그들의 이야기를 듣는 것은 내 여정의 중요한 부분이었다. 이들은 오랜 친구일 수도, 잠시 스쳐 지나가는 인연일 수도 있었다. 색다른 경로마다 택시를 갈아타며 각기 다른 길로 나를 이끌었고, 저마다 길은 내게 풍부한 경험을 안겨주었다. 하지만, 인생 택시는 업(業)이 아닌 직장으로만 안내할 뿐이었다.


 때로는 자율적인 개인택시를 타고 길을 떠나는 친구를 만났다. 그는 자신의 경험담을 풀어놓을 때마다 넘치는 자신감을 드러냈고, 자유롭게 삶의 길을 운전하는 모습은 큰 자극이 되었다. 나 또한 원하는 방향으로 나아가며 스스로 길을 개척하고 싶다는 열망을 품게 되었다.


 그러던 중, 나에게도 개인택시를 탈 기회가 찾아왔다. 자유는 때때로 무거운 책임으로 다가왔고, 모든 선택의 결과는 오롯이 나의 몫이었다. 한 번은 동승자와 함께한 사업에서 실패를 겪으며 많은 것을 잃었다. 동행도 신중히 가려서 함께 가야 한다는 비싼 택시비를 지급해야 했다. 


 또한, 엉뚱한 길을 가며 방황하기도 했다. 잘못된 방향이라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잘 살아왔으니 이 정도면 괜찮겠지'라며 자신을 위로하며 지냈다. 내면 깊숙한 곳에서는 '이게 아닌데, 이게 아닌데'라는 외침이 들려왔지만, 귀를 막고 무시하며 지내던 시절도 있었다. 폭풍우 속에서 떠돌던 여정은 가끔 한적한 주차장에 닿아 휴식을 취하기도 했다. 그곳에서 재충전과 재정비를 한 후, 다시금 길을 나섰다. 


 태어날 때부터 자가용을 타고 줄곧 목적지로 향하던 친구도 있었다. 그는 부유한 부모에게서 천부적인 혜택을 받으며, 언제든지 원하는 길을 탄탄대로로 쉽게 달려갈 수 있었다. 자신이 원하는 경로를 스스로 정할 수 있고, 중간에 멈추어 마음껏 쉬는 것도 가능했다. 그가 자가용 안에서 어떻게 보내며 어떤 세상을 경험했는지 알 수 없지만, 결국 마지막 도착지는 나와 같다는 사실을 안다. 그의 생활방식을 부러운 시선으로 바라보았지만, 종착지가 동일하다는 점은 나에게 작은 위로가 되었다.


 인생은 짧다. 세월은 빠르게 흘렀다. 아니다. 인생은 길었다. 낭비된 시간이 많았기에 빠른 것처럼 느꼈다. ‘그때 이렇게 했더라면, 다른 결정을 내렸더라면’ 현재의 삶이 달라졌을까. 미지의 길은 언제나 긍정적으로만 보이기 마련이다. 후회일까. 아니면 허상에 사로잡힌 결과일까. 돌아보니 현실과 타협하며 살았던 내 모습이 떠오른다. 두려움 때문에 새로운 길을 선택하지 않은 경험이 많았다. 이제야 깨달은 사실은 어떤 택시를 타느냐가 아니라, 그 안에서 어떤 꿈을 꾸고 어떻게 도전하며 여정을 만들어가는가 하는 과정이 더 중요하다는 것이었다.


 황혼의 길목에 접어든 지금, 나는 경제적 자유를 위해 전력 질주해 왔다. 겉으로 보기에 성공적인 삶을 살아온 것처럼 보이지만, 마음 한편에서는 개운한 느낌이 없다. 퇴직 후, 내가 필요해서 불러줄 곳이 있을까 하는 슬픈 생각이 든다. 돌아보니, 직장을 선택한 것은 많았지만, 직업을 선택하지 않았다는 생각이 든다. 직장을 다니며 업을 찾았어야 했다. 업은 열정이자 재능이다. 그것만 있다면 퇴직 후에도 컨설팅이나 강의, 또는 전문 서적 집필을 통해 정신적 자유를 누릴 수 있었을 것이다. 나는 직장으로 경제적 자유를 얻었지만, 정신적 자유를 동반하는 업을 알지 못했다.


 그렇지만 지나온 여정 자체로도 내 생애를 담은 작품이라 여기며 위안을 삼고 싶다. 다행히도, 유쾌하게 지급한 택시비의 흔적을 발견할 수 있었다. 개방적이고 유머 감각이 풍부한 사람, 활기로 가득 찬 에너지를 주는 사람, 손을 내밀며 도움을 주는 사람, 말이 적으면서도 깊이 있는 사람, 남의 말에 휘둘리지 않는 사람, 기분을 좋게 만드는 사람, 배려와 지지를 아끼지 않는 사람, 친절하고 공손한 사람, 타인의 차이를 이해하고 존중하는 사람, 긍정적이고 열정적인 사람과 만남이 바로 그 택시비였다. 반면 그들의 삶을 본받으려 애썼지만, 그 길은 예상보다 험난했고, 모든 것을 완벽히 실천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다.


 그러던 중, 일대 전환기가 찾아왔다. 인생 택시는 우연히 서점가로 안내했다. 책을 펼칠 때마다 알지 못했던 온갖 경이로운 세상이 있었다. 이의 발견은 정신적 자유를 얻은 듯한 격한 감정이 고무되었고 기쁜 마음으로 인생 택시비를 지급해야 할 시간임을 확신하게 되었다. 종착지는 누구에게나 동등하지만, 도착하는 시간은 각기 다르다. 지금은 멈춤을 준비하는 것이 아니라, 정신적 자유를 이루기 위해 나아가야 할 길이 있음을 알게 된 것은 큰 기쁨이다. 마침내 내가 업을 향하여 가야 할 길이 생겼다. 그것은 독서와 글쓰기를 통해 이루어질 것이라고 확신한다. 앞으로의 인생 택시는 나만의 글로 아름답게 엮어, 소중한 추억의 한 페이지로 기록하여 남기고자 한다. 


 이제, 인생이라는 택시는 마지막 남은 기력을 다하며 내 마음의 빛을 따라 황금빛 노을 속으로 천천히 나아갈 것이다. 나는 인생의 끝자락에서 슬퍼하기보다는, 미소 지으며 종착지에 내리고 싶다. 지나온 길을 되돌아보며, 모든 순간이 소중했던 그 여정이 마치 저무는 노을빛처럼 마음 깊숙이 따스하게 물들기를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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