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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슴속호수 Nov 19. 2024

귀밑의 때

인생 택시


“세수하고 다니니.” 

 찬바람이 살갗을 파고드는 겨울 아침, 어둠이 완전히 가시지 않은 겨울 아침 하늘에 눈발이 흩날렸다. 고등학교 2학년, 조회를 마친 뒤 담임선생님이 교실 밖으로 불렀다. 아침부터 차가운 공기가 폐부까지 스며들었다. 학기 초에 부반장으로 세운 선생님의 부름에 스스럼없이 따라나섰다.


 복도에 나서자마자 부드럽지만, 진지한 목소리가 귓가에 던져진 말이었다. 머릿속이 텅 비고 가슴이 세차게 뛰기 시작했다. 모든 것이 멈춘 듯, 말의 무게에 당혹스러움과 불안이 엄습했다. ‘무슨 말씀을 하시려는 거지.’라는 질문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어떤 답을 해야 할지 몰라 당황했다. 겨우 내내 양동이의 얼음을 깨고 고양이 세수로 대충 씻어내고 학교에 달려오던 모습이 스쳐 지나갔다. 손끝이 시릴 정도로 차가운 물에 세수하는 걸 귀찮아하던 자신이 다른 곳까지 신경 쓸 여유 따윈 없었다. 망설이다가 사실대로 말했다.


 “귀밑의 때가 시커멓구나, 귀 뒤는 왜 안 씻고 다니니. 가서 씻고 오거라.”

 망치로 맞은 듯 충격적이었다. 멍하니 선생님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거울 속에선 절대 보이지 않던 작은 결점이 다른 사람 눈에는 명확하게 드러나 있었다. 부끄러움이 물결처럼 밀려와 온몸을 휘감으며 얼굴이 뜨겁게 달아올랐다. 숨겨둔 허물이 적나라하게 드러난 듯한 느낌. 내면의 민낯까지 드러난 것 같은 기분에 혼란스러웠다.


 목욕은 물론 샤워조차 잘 하지 않던 습관이 이런 상황을 초래했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부끄러움이 밀려올 때마다 무심히 자신을 속이며 살아온 모습을 되돌아보게 되었다. '귀밑의 때'라는 작고 사소한 것에 담긴 무관심이 결국 자존심을 낱낱이 파헤쳤다.


 화장실로 걸음을 옮겼다. 손이 떨릴 만큼 차가운 물에 담그고 귀밑의 때를 문질러내기 시작했다. 때를 닦아내는 마음속 깊은 곳에서 무언가가 서서히 떨어져 나갔다. 손끝의 미세한 마찰감, 차가운 물이 피부에 닿을 때마다 퍼져 나가는 감각은 단순한 세정의 행위가 아니었다. 깊이 쌓여 있던 무언가를 벗겨내고 내면의 어둠을 씻어내는 의식처럼 느껴졌다.


 나타나지 않던 허물들이 하나씩 드러나며 속삭였다. "그동안 얼마나 많은 허물을 안고 살아왔는지 알고 있었느냐." 자책의 목소리는 내면을 흔들었다. 손끝에서 벗겨지는 때는 단순한 먼지가 아니라, 나태와 무심함이 쌓여 굳어진 모습이었다. 자신에게 무심했고, 결점을 외면한 채 눈을 돌렸다. 귀밑의 때 하나로 큰 충격을 받은 자신이 한심하게 느껴졌다.


 깨달았다. 귀밑의 때는 단순히 씻지 않은 흔적이 아니라, 무관심과 게으름이 드러난 상징임을. 눈에 안 보인다고 해서 없는 줄로만 알았고, 작은 흠결을 무시하며 살아왔다. 거울 속에서는 감춰졌던 허물이, 시선 앞에서는 분명하게 드러났다. 누군가 보고도 지적하지 않았다면, 어떤 생각으로 바라보았을까. 친구들이나 다른 선생님도 이미 알고 있었으면서 무심히 지나쳤던 걸까, 아니면 무지를 연민의 눈으로 바라봤던 것일까.


 다른 이들에게 분명하게 보였을 단점과 결점들. 그저 '괜찮을 거야'라고 자신을 달래며 진실을 외면했다. 그날 이후 귀밑의 때를 넘어, 삶의 본질적인 문제들을 정면으로 바라보기 시작했다. 약점과 결점을 숨기는 것이 아니라, 드러내고 정화하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자기 성찰의 시작임을 알게 되었다.


 삶 속에서 다른 '귀밑의 때'들을 마주하게 된다. 시간이 지나도, 상황이 바뀌어도 삶 곳곳에 남아 있는 작은 결점들은 잊힌 메아리처럼 다가왔다. 사회의 여러 모순과 부조리를 분명히 보면서도 침묵했던 자신.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하며 옳다고 믿는 길을 외면했던 순간들. 그저 눈감고 지나쳤던 행동들이 지금도 선명하게 비친다. 귀밑의 때처럼, 나태함과 무심함은 일상의 틈새마다 스며들었다.


 깨달음도 쉽지 않았다. 잘못과 마주할 때마다 여전히 부끄러움에 몸이 떨렸고 얼마나 나약한 존재인지 절감했다. 얼마나 많은 허물을 스스로에게 숨기고 있었는지, 변명으로 감싸왔는지 돌아보는 일은 고통스럽고 두려웠다. 약점과 결점을 지적해 주었던 선생님처럼 냉철하고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싶었지만, 그 과정은 늘 힘들었다. 진실을 직시하는 것의 무게는 무거웠고, 감당하기 쉽지 않았다.


 누군가 허물을 지적할 때, 부끄러워하거나 변명하기보다 겸허하게 받아들이고 바로잡아야 한다는 것. 그 지적이 성장을 위한 첫걸음이라는 것을 진심으로 깨달았다. 허물을 받아들이고, 그것을 바로잡는 용기야말로 진정한 성찰의 시작임을.


 세월이 흐르면서, 그날 조용히 불러내어 허물을 지적해 준 선생님의 모습은 기억 속에서 점점 흐릿해져 갔다. 따뜻한 배려는 여전히 마음속 깊이 새겨져 있다. 작고 사소한 지적처럼 보였던 말 한마디가, 인생의 길을 바꾸고 지금까지도 일깨우는 등불이 되어 있다. 완벽하게 결점 없는 삶을 살기란 불가능하지만, 그 결점을 인정하고 고치려는 노력만이 진정한 나다움을 찾게 만들고, 성장하게 한다는 사실을 깊이 깨닫는다.


 작은 허물일지라도 외면하지 않고 받아들이며 바로잡아 나가는 것이야말로 나다움을 찾아가는 길. 귀밑의 때를 닦아내듯, 삶의 작은 흠들을 하나씩 정리하며 앞으로 나아가려 한다. 따뜻한 손길을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먼저 자신에게, 그리고 다른 이들에게도 그 손길을 내밀 수 있기를 바란다. 깨달음이 누군가에게도 따뜻한 빛이 되어, 허물과 마주할 용기를 가질 수 있도록 돕는 존재가 되고 싶다.


 찬바람이 살갗을 찢는 날이면, 얼음물에 손을 대지 않아도 그날의 기억이 선명하게 떠오른다. 세월의 흐름 속에서 얼굴과 이름은 흐려졌지만, 따뜻한 마음과 진심은 여전히 감싸고 있다. 가르침의 단순한 진리가 내 삶을 변화시켰듯, 누군가에게도 따뜻한 빛이 되어, 세상을 더욱 나은 곳으로 변화시키는 존재가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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