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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llein Jul 01. 2016

외돌개에서 월평까지, 제주올레 7코스

아름다움의 깊이를 느끼며 나를 돌이켜 보는  길

사람의 걸음은 자동차처럼 항상 일정하게 속도를 조절할 수가 없다. 그래서 올레길을 걸을 때면 때로는 나의 뒤에 있던 사람이 나를 앞지르기도 하고, 나보다 먼저 걸었던 사람을 내가 앞지르기도 한다. 하지만 누군가를 앞질렀거나, 누군가에게 추월당했다고 하여 뿌듯해할 것도 속상해할 것도 없다. 걷다 힘들면 쉬고, 날이 저물면 그 자리에서 멈추면 된다. 오로지 걸으며 느껴지는 오롯한 감정과 눈에 보이는 풍경에 열중하기만 하면 된다. 그렇기에 올레길 위에선 모든 길을 걸었다 해도 '정복'이라는 말은 없다. 그저 '완주'라는 단어가 최대의 표현 일 뿐. 경쟁도 의무감도 없기에 의 마음, 나의 느낌대로 걷기만 하면 된다.


2009년 가을


어느 해 올레 7코스 돔베낭길에서 바라보았던 아침 바다는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떠오른 해를 고스란히 품은 바다는 흩어졌던 내면의 감성들을 깨어나게 했고, 나는 누구든 붙잡고 그 멋진 풍경을 말하고 싶어 안달이 난 심정이었다. 아름다운 것을 보면 제일 먼저 사랑하는 사람이 생각난다고 했던 어느 글처럼 바다는 정말로 그것을 실감 나게 해 주었고, 어느 누구라도 그 순간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있사랑은 더욱 깊어졌을 것이다. 

 

2010년 가을. 돔베낭길에서 바라본 문섬


제주올레 7코스는 봄엔 아름다운 꽃들이 피고, 을에는 억새와 갈대가 바람에 날리며 계절의 깊이를 더해준다. 외돌개에서 시작되는 돔베낭길을 걷다 보면 먼 바다의 아름다 깊이에 마음은 한참이나 그곳에 머무르게 된다.


길을 전부 걷지 않아도 좋다. 시간이 된다면 이른 아침 작은 책 한 권과 함께 돔베낭 길을 걸어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길 중간에는 바다 냄새와 커피 향이 섞인 차를 마시며 책을 읽을 수 있는 곳도 있으니까. 책과 함께 두둥실 떠있는 섬이 보이는 바닷가 찻집이라면 몇 시간의 시간도 짧게 느껴질 것이다.


2009년 가을, 돔베낭 길에서
2010년 가을, 돔베낭길에서 바라본 제주의 바다
2010년 가을, 저 배는 어디로 가는걸까?
2010년 가을, 제주의 바다
2010년 가을, 속골


길을 낸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무차별적으로 길을 낸다면 자연 파괴이겠지만, 꼭 필요한 길을 만든다면 그 또한 고맙고 감사하기 이를 때가 없을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수봉로는 감사한 길이다. 이 길은 염소들이 지나길이라고도 할 수 없던 길이었다. 그 길을 김수봉이라는 분은 올레꾼들이 지날 수 있도록 홀로 길로 내었다. 이 길이 아니었다면 아주 먼길을 돌아가거나 어쩌면 7코스를 열수 없었을지도 모른다.


이처럼 누군가의 작은 정성과 희생으로 아름다운 길을 만들게 되듯, 사람들의 배려와 정성이 모아진다면 척박한 땅처럼 삶이 힘들다 할지라도, 감사하며 웃는 날이 많은 세상이 되지 않을까? 그렇기에 수봉로는 참으로 고마운 길이다.


2009년 가을, 길과 들꽃
2009년 가을, 수봉로를 넘어
2009년 가을, 수봉로를 지나온 사람들


한낮의 햇살은 바다를 비추고 해녀 동상은 그 너머 바다를 배경으로 서 있다. 선명하게 보이는 섬은 포구의 정취를 더욱 운치 있게 만들어 주고, 어느 게스트 하우스 건물 벽에는 사람들의 낙서가 빼곡하다. 낙서를 보면 저리도 많은 사람들이 이곳을 걸었겠다 싶지만, 주변에는 사람 한 명 보이지 않는다.


내가 제주의 길을 사랑하는 이유는 유명 관광지가 아니더라도 언제 어느 곳에서든 아름답고 고요한 정취 속에 나의 내면을 꺼내어 사색할 수가 있어서이다. 차곡차곡 스치며 모아진 순간의 깨달음들은 여행의 끝이 되면 이 길을 걸었던 이유에 커다란 의미를 가져다주곤 한다.


그리고 우연히 만난 길동무와 함께, 길을 걸으며 느꼈던 감정들을 공유하는 것도 좋다. 사람들은 저마다의 사연으로 세상의 고뇌를 짊어지고 길을 시작 하지만, 길은 그 짐을 하나씩 버려주고 치유해 주며 마음을 다잡아 준다. 길을 시작했던 사연은 다르지만 마지막엔 행복한 결말을 얻게 해주는 길. 그래서일까? 처음 만난 사람이라도 걸어온 길의 아름다움을 말하느라 통성명도 잊은 채 서로의 느낌을 공유하기에 바쁘기만 하다.


2009년 가을, 법환포구
2009년 가을, 법환포구의 해녀 동상
2010년 가을, 법환포구의 어느 게스트 하우스


법환포구의 한적함과는 달리 좁다란 외길로 된 서건도 바닷길로 들어서면 길을 걷는 많은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아빠의 손을 꼭 잡은 아이의 늦은 걸음 때문에 한 줄로 선 사람들은 가다 서다를 하지만, 어느 누구도 불평 없다. 되려 힘든 길을 걷는 아이를 대견해하며 이끌어 주고 격려해 준다. 그렇게 이 길 위에 서면 모든 사람들의 마음은 너그럽고 평화로워진다.


서건도는 물이 빠지면 섬까지 들어갈 수 있는 바닷길이 열리는 섬이다. 일명 썩은 섬이라고도 불리는데, 예전 어느 고래가 물이 차 있는 동안 섬 주변에 있다가, 물이 빠졌음에도 바다로 돌아가지 못해 섬안에 갇히게 되었고 그 고래의 주검이 썩어 썩은 섬이라고 불려졌다고 한다. 정말 인지는 모르겠지만, 생명의 죽음이 있는 이야기가 있음에도 섬의 모습은 참 평화롭기만 하다.


2010년 가을, 서건도(일명 썩은섬)
2010년 가을, 서건도 해변
2010년 가을, 서건도 바다길
2010년 가을, 서건도 바닷길에서 바라본 하늘


하얀 여백의 종이 위에 꾹꾹 펜을 눌러 편지를 써 본적이 언제 였을까? 나의 손끝에서 나온 힘으로 진정마음담아 내는 손 편지. 정성스럽게 편지지를 골라야 했고, 두근두근하며 어떻게 내 마음을 전해야 할지 고민에 빠지던 순간들.


추억의 손편지처럼, 길 위에서 느낀 감정을 작은 엽서에 실어 가족과 친구, 그리고 나 자신에게도 보내 본다. 생각지 못한 엽서를 받은 사람들의 행복해하는 모습을 상상하면 편지를 쓰는 순간에도 빙그레 웃음이 머금어진다. 삶의 즐거움이 별게 있겠는가? 어느 날 날아온 작은 엽서를 읽으며 잠시 웃음 짓는 것. 비록 삐뚤빼뚤 쓴 글이라 해도 오늘과 내일을 살아갈 충분한 힘이 되지 않겠는가? 정성 어린 작은 손편지 한 통에 행복을 넣어 보자. 보내는 이도 받는 이도 모두 즐거울 것이다.



바다 한가운데 있는 저 등대는 아픔을 알까? 아무것도 모른 체 천진난만하게 반짝거리는 햇살은 이 곳의 슬픔을 더욱 깊게 하는 듯하다. 강정마을은 구럼비를 지키려는 아픔이 있는 곳이다. 이전에는 구럼비 바위를 볼 수 있는 바닷길을 걸을 수 있었지만, 이제는 더 이상 그 위와 길을 볼 수도 걸을 수도 없다. 지금은 콘크리트로 덮인 해군기지가 들어섰기 때문이다.


이곳을 지날 때면 사라지는 소중한 것들에 대한 아쉬움이 많다. 지금도 이곳에는 해군기지 반대라는 구호가 새겨진 깃발에 의지 하여 외로이 구럼비를 지키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을 보며 할 수 있었던 건 해군 기지 반대 서명과 수염이 덥수룩한 사람들을 보며 힘내라는 말밖엔 할 수 없었다. 그들이 내 걸은 깃발 옆을 지날 때면 이 길을 걷는 내내 발걸음이 무겁기만 하다.


롭게 서있는 깃발 불어오는 바람에 파닥거리며 울고 있다. 날고 싶지만 날지 못하는 새처럼. 강정은 지금도 그렇게 울고 있다.


2009년 가을,  구럼비가 있는 강정. 지금은 이 모습을 볼수 없다.
2009년 가을, 강정마을
2010년 가을, 강정의 깃발이 울고 있다


이제 길은 월평포구를 향한다. 바다는 끊임없이 반짝반짝 빛을 내며 나를 쫒아오고 있다. 많이도 보았던 바다이기에 덤덤해질 만도 하지만, 여전히 제주의 바다는 바다를 처음 본 아이의 눈처럼 옥빛과 금빛을 섞어 내 마음을 황홀하게 한다. 해는 서쪽으로 넘어갈 채비를 하며 내 마음을 바다색으로 물들이고, 어딘가로 향하는 배는 반짝이는 바다를 가로질러 쉼 없이 달리고 있다. 그 모습을 보니 가슴이 울렁거려 나도 모르게 걸음을 멈추어 본다. 지금의 풍경을 좀 더 눈과 마음에 담기 위해서이다. 분명 나는 이 바다를 그리워할 것이기에.


2010년 가을, 월평포구로 가던중
2014년 가을, 하루의 끝을 향해 가는 바다


늦은 오후의 햇살이 가득한 포구. 정박한 배들은 한가롭다 못해 권태스럽기까지 하다. 끊임없이 쏟아지는 투명한 빛들은 스펀지에 베어드는 물처럼 서서히 오늘의 끝을 알리며 내 마음을 차분하게 한다.


포구에 비친 나를 바라보는 나. 빛들은 마음속 내면의 나를 끄집어내며 지금 이 순간이 나이고 나의 삶이라 하며 내게 말하고 있다. 깨달음인지 아닌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하지만 마음이 행복한 건 분명하다. 그리고 그 행복을 내 마음 어딘가에 담아둔다. 나 홀로 먹으려 꽁꽁 숨겨두었던 달콤한 사탕처럼.


2010년 가을, 월평포구와 햇살
2014년 가을, 월평포구


숲길 산책로는 끊임없이 바다를 보여 주며 나의 발을 이끈다. 마지막 호사를 누리라 하듯, 이유도 없고 사연도 없이 설레며 다가왔던 첫사랑 같은 마음처럼, 저무는 해는 이쁜 빛으로 끊임없이 나를 유혹한다. 한 발짝 걸음을 옮길 때마다 길 위에 흘려진 오늘의 추억들이 뚜벅뚜벅 내 뒤를 따라오고 있다.


지금이 아니면 이 느낌을 언제 느낄까? 서운한 마음으로 발걸음을 옮기던 나는 오늘의 추억이 너무 아쉬워지는 해를 멍하니 바라본다. 하루의 마지막을 향해 수평선과 가까워지는 해. 야속해하는 내 마음을 아는지, 해는 자신이 저물어야 내일이 오고, 그래야만 새로운 날을 기다리는 사람들에게 희망을 줄 수 있다 하며 나를 위로한다.


이제 나의 걸음도 멈춘다. 그리고 조용한 마을 동네 매점 앞에서 버스를 기다리는 사람들 무리 속에 나도 함께 한다.


모두가 웃는 얼굴이다. 행복이 묻어나는 웃음들. 이 길을 걸었던 사람들이라면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들 모두가 왜 웃고 있는지.


버스에 오르기 전 길을 보았다. 길은 나에게 잘 가라 배웅을 한다. 이별은 슬프지만, 길은 그 이별을 애써 외면하며, 나에게 손을 흔들며 행복을 건네고 있다.


2014년 가을, 아쉬움에 잠시 멈추어 본다
2014년 가을, 길을 마치며


바다를 품고 걸을 수 있는 아름다운 돔베낭길과, 대가 없이 홀로 작은 길을 만들나누는 아름다운 마음. 바닷가 우체국에서 보내는 작은 엽서의 행복과 아름다운 자연을 지키기 위한 구럼비의 아픔. 그리고 그 모든 것들을 느끼며 길의 끝에서 저물어 가는 바다를 보며 나를 돌이켜 보는 길.


아름다운 길. 제주올레 7코스입니다.




예전에 올렸던 제주올레 7코스의 이야기를 다시 올려 봅니다. 가장 많이 걸었던 길임에도 이전 글의 내용이 짧아 너무 아쉬워 다시 적어 보았습니다. 저 또한 이 글을 쓰며 그 길을 걷는 듯하여 너무 행복했습니다.


이제는 여름입니다. 여름 올레길 걷기는 매우 힘이 듭니다. 그래서 제주 올레 사무국에서는 장마철 바람과 비가 심할 때에는 될 수 있는 한 길을 걷는 것을 삼갈 것을 권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뜨거운 날 올레길을 걸을 때는 아침 일찍 출발을 하여 가장 더운 한낮 시간은 잠시 쉬었다가, 늦은 오후 남은 길을 다시 시작하기를 권고하고 있습니다. 여름은 해가 길어 좀 늦은 시간까지도 걸을 수 있으니까요.


쉬는 시간에는 중간의 마을에 있는 카페나 그늘에서 책을 읽으시거나 낮잠을 즐기시며 쉬셔도 좋고, 차가운 용천수가 나오는 곳에서 더위를 피하셔도 됩니다. 하지만 어떤 코스는 중간에 쉴 곳이 마땅치 않은 코스도 있으니, 길을 걸으시기 전 적당한 쉼터를 정하시고 걸으시면 좋습니다.


그럼에도 더위에 너무 힘이 들면 더 이상 걷지 않으셔도 됩니다. 올레길은 굳이 마지막까지 걷지 않아도 되는 길이니까요. 얼마를 걸으시든 어느 곳을 걸으시든 떼어낼 수 없는 추억은 분명 남으실 테니까요.


여름 올레길을 계획하시는 분들을 위해 도움이 되실까 하여 잠시 팁을 올려드렸습니다. 그럼 한여름 올레길 걸으시는 분들 더위에 지치시지 않으시도록 조심히 걸으시고, 행복한 올레길 되시길 빌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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