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 일 년을 보내며
끔찍이도 더웠던 여름이 지나갔습니다. 아직 한낮에는 긴팔 후드티를 입어야 할지 고민되지만, 그것도 잠시일 뿐. 이제 곧 본격적인 가을이 올 것입니다. 본격적이란 말에 마음이 설렙니다. 어쩌면 어떤 이에게는 벌서 가을이 왔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무더웠던 여름 탓도 있겠지만, 무엇보다도 저마다 생각하는 가을은 다르니까요.
가을이 오면 제 마음은 간질간질합니다. 아프지만 아프지 않은 척하며 지나온 날들을 되돌아보게 되죠. 그래서 때로는 가을을 벗어나 도망가고 싶기도 합니다. 하지만 울긋불긋함과 어울려 누렇게 영글어 가는 대지의 빛과, 이른 아침의 차가운 공기, 그리고 낙엽에서 풍겨오는 수수한 냄새는 결코 그럴 수가 없게 합니다.
생각해 보니 작년 이맘때도 저는 지금처럼 다가오는 가을을 맞이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저 그런 매일의 일상을 보내며 내가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일까? 난 어디를 향해 가고 있을까? 생각하며 가을을 바라보고 있었죠. 계절이 깊어갈수록 생각은 깊어갔지만 그래도 가을은 너무 이뻤고 그냥 보내기가 아쉬워 무엇이라도 해야 했지만, 마음만 앞설 뿐 갈피를 못 잡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참에 브런치를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막연하게만 생각했던 글을 쓰기 시작했죠. 처음엔 이전에 알던 블로그와 다를 게 없겠다 싶었습니다. 하지만 브런치는 광고도, 스폰을 위한 팝업도 없는 진정으로 글을 쓰고 싶은 사람들이 있는 곳이었습니다. 지금도 그 진정성은 유지되고 있으니 참 고맙고도 다행인 것 같습니다.
저의 글쓰기는 여행 이야기로 시작을 하였습니다. 어디를 갔고 무엇을 보았고 무엇을 먹었고 하는 글이었죠. 하지만 여행지의 소개가 가득한 정보의 바다에서 저의 글은 무미건조했습니다. 생각과 감성이 없는 글은 제 자신부터가 글을 쓰는 한계로 몰아갔습니다. 사실성에는 문제가 없었지만 객관적일 뿐 생명이 없는 글 같았고, 저의 글을 읽는 분들께 마음 깊이 남을 수 있는 글인지를 끊임없이 생각했습니다. 결국 그것은 제가 글을 쓰는 본질이 되기도 했죠. 그리고 그것은 일상의 생활에서도, 지금 글을 쓰고 있는 이 순간에도 끊임없이 고민하고 의식해야 할 다짐이 되고 있습니다.
제가 처음으로 발행한 글을 보니 정확하게도 일 년의 시간이 지났습니다. 그 시간을 돌이켜 보면 글쓰기는 저에게 많은 고민을 하게도 했지만 반면에 많은 선물도 주었습니다.
언젠가 읽었던 법륜 스님에 관한 이야기 하나가 생각납니다. 대중의 질문에 스님께서 답변해 주시는 말씀들이 많은 사람들에게 공감이 가고 마음 착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스님이 말 주변이 좋으셔서 그런 것이 아니고 항상 마음을 깨끗하고 맑게 유지하시기 때문이라고요. 그 의미는 어찌 보면 말을 잘하고 못 하고는 배우고 익히면 가능한 기술 같은 것이 지만, 말속에 담기는 진정한 의미는 말한 이의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것이기 때문이라는 것이죠.
그 기사를 읽고는 글쓰기도 마찬가지라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글 속에서 느껴지는 감성은 글 쓴 이의 마음과 같다는 것이었죠. 그것은 마음을 꾸미는 것이 아닌, 마음을 덜어내어 자신 본연의 마음을 담아내는 것이라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마음이 어지럽고 복잡하지 않을 땐 글도 잘 써질뿐더러 그 어감이나 느낌이 차분하고, 무엇보다 글에서 우러나오는 의미들이 매우 긍정적이라는 것이죠. 하지만 그 반대의 경우는 글도 잘 써지지 않고, 표현과 어감이 딱딱하기가 이를 데 없습니다. 그런 글은 며칠이 지나 다시 읽어 보면 잔뜩 심통이 난 철없고 욕심 많은 어린아이가 썼다는 것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죠.
그래서 전 항상 밝은 마음을 유지하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러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은 자신의 마음을 다스려 이해와 긍정적인 마음을 갖는 것이죠. 하지만 저는 성직자가 아니기에 이는 너무도 어렵습니다. 또한 사람 마음이 간사하기 이를 데 없어 늘 그러하기도 어렵습니다. 하지만 저는 여전히 글을 쓰겠다는 욕심을 부리며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때로는 헷갈릴 때가 있습니다. 긍정적인 마음을 갖기 위해 글을 쓰는 것인지. 글을 쓰기 위해 긍정적으로 변하려 하는 것인지. 어느 것이 맞는지는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지금의 저는 일 년 전의 저보다 다르게 변해 있다는 것입니다. 아주 긍정적인 마음을 유지하며 글을 쓰려는 사람으로요.
저는 프로그래머입니다. 이십여 년을 넘게 논리적인 로직(Logic)을 구성하여 결함 없는 정확한 결과만을 위해 살아왔죠. 그렇기에 글을 쓰기 전 저의 사고는 매우 딱딱하고 각이 져 있어 모 아니면 도라는 사고로 경직되어 있었습니다. 그런 저를 글쓰기는 머릿속 사고를 유연하게 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변화된 사고는 직장에서도 표가 나기 시작했습니다. 전에는 팀원들에게 결과만 갖고 화내고 질책했지만, 글을 쓰고 난 후부터는 그럴 수밖에 없었던 팀원들의 사정과, 문제가 된 상황들을 이해하며 지시가 아닌 해결할 수 있는 최선의 방향을 함께 고민하는 것으로요.
그리고 브런치를 통해 저 보다도 젊은 세대들의 고민과 아픔, 직장에서 겪었던 힘들었던 경험의 이야기들을 읽으며 우리 시대의 고민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것들은 제 주변의 동료와 팀원들의 고민이라는 것도요. 어느 날인가 동료 중 누군가가 그러더군요. 요즘 모든 걸 다 내려놓은 사람 같다고요. 그래서 말해 주었습니다. 체념과 포기가 아니라 이해하면 그리 된다고요. 생각해 보면 우린 그동안 자신만을 위해 너무 빈틈없이 살아왔던 것 같습니다. 사람의 마음에는 이해라는 공간이 있는데도 그것을 외면하고 모른 체 하며 말입니다.
글쓰기를 통한 변화는 저 자신에게도 많은 영향을 주었습니다. 그것은 글을 쓰며 스스로 저의 마음을 다독이고 다 잡는 것입니다. 과거의 것이라 해도 지나간 사진들을 보며 글을 쓰기 시작하면 당시의 생각과 감성들이 되살아 나고, 그 마음들을 모아 표현을 하다 보면 자연히 마음이 유해지며 차분해집니다. 그리고 어느 순간부터는 저의 글을 읽는 분들께 힘을 주는 글도 쓰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제가 쓴 글에 책임감을 갖고 저 또한 그렇게 살아가겠다는 저의 다짐이기도 했습니다.
글을 쓴다는 것은 매우 어렵습니다. 때로는 몸살이 날 정도로 엄청난 에너지를 요합니다. 주제를 선정하고 도입으로 시작하여 전하고 싶은 내용을 쓰고 결말을 맺어야 합니다. 그리고 발행을 하기 전 읽고 또 읽으며 탈고를 하고. 그러해도 다시 보면 틀린 글자, 문맥에 맞지 않는 내용 등. 창피함에 다시 고치고 또 고치죠. 그것은 저뿐만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아마도 브런치에서 글을 쓰시는 모든 작가님들도 그러하리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렇게 완성된 글들 속에서 우리는 감동하고 위로받으며 힘을 얻습니다. 한눈에 볼 수 있을 만큼의 짧은 글이든 스크롤 압박이 강한 긴 글이든, 멋진 사진이 있는 글이든 하얀 여백에 단 몇 줄로 쓰인 글이든 말입니다.
그렇듯 브런치에 올라오는 글들이 좋은 이유는 상업성 없는, 작가님들의 순수한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진정성 있는 글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단 몇 줄의 글이라 해도 그 안의 의미는 글쓴이의 인생에서 생각하고 느끼는 삶의 부분들 이기에, 글을 읽으며 공감하고 때론 나만 그런 줄 알았던 나와 같은 사연에 위로를 받기도 합니다. 대부분이 한 번도 본 적 없고 말해 보지 않았던 사람들의 인생을, 글을 통해 알고 공감한다는 것은 정말 대단하고 커다란 인연입니다. 그렇기에 글 쓴 이들의 마음과 인생이 표현된 모든 글들은 정말 소중한 것입니다.
글을 썼던 지난 일 년을 되돌아봅니다. 그리고 글쓰기는 분명 제 인생에 기억에 남는 의미 있는 일중 하나가 될 것입니다. 그렇기에 저의 글쓰기 욕심은 앞으로도 꾸준히 계속될 것입니다. 그 욕심으로 작가가 되어 책을 내는 것도 좋은 일이지만 아직은 때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 이전에 제 마음을 다독이며 어떻게 글을 써야 하고 책임감 있고 진정성 있는 글을 써야 할지 늘 가슴에 품고 글을 써야 할 것입니다. 남에게 화려하게 보이기 위한 글이 아닌 자신이 읽었을 때도 부끄럽지 않고, 누군가에게 힘이 되어 줄 수 있는 글. 진정성 있는 저의 감정과 느낌을 담은 글로 말입니다. 글은 글쓴이의 진실한 마음이어야 합니다. 그래야 먼 훗날 부끄럽지 않게 지난날의 나를 반갑게 바라볼 수 있을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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