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번도 가본 적 없는 그곳이 가보고 싶었다. 제주 용수리 성당
여행에서 날씨는 꽤나, 아니 무척이나 많이 여정의 느낌을 좌우한다. 특히나 궂은 날씨는 여행자를 당황스럽게 하지만 길을 걷고, 차를 타고, 목적지를 찾아다니고 하는 행위가 번거로울 뿐 그 자체를 즐긴다면 나름의 다양한 매력을 느낄 수 있다. 그렇기에 비와 눈 그리고 바람과 구름이 만들어낸 분위기는 꼭 한 번은 다시 보고 싶게 하는 배경이 되기도 한다.
밤새 내리던 비는 아침이 되자 가는 비로 바뀌며 서서히 그치고 있었다. 하지만 바람은 힘이 약해진 비의 몫까지 몰아치며 지난밤보다 더욱 세차게 세상을 흔들고 있었다. 흐린 하늘을 따라 차는 제주 서쪽 수월봉을 향해 달리고 있다. 차창밖으로 보이는 하늘은 파란색의 자리를 찾으려 애써 보지만 회색의 구름은 그런 하늘을 놓아주지 않고 있었다. 신호등이 빨간색으로 바뀌고 차가 멈춘 사이 이정표가 보인다. 용수리.
팻말을 보자 문득 그곳에 있는 성당이 생각났다. 왜 생각이 났는지는 모르겠다. 사실 이 전에도 몇 번 이곳을 지나친 적이 있었다. 하지만 포구의 풍경을 보며 잠시 머물렀을 뿐 성당 안으로는 들어가 본 적은 없었다. 그런데도 마치 그곳을 가보았던 것처럼 그곳이 가보고 싶었다. 날씨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마음에 불어오던 찬 바람 때문이었을까? 신호가 바뀌고 차는 방향을 바꾸어 이정표를 따라 그곳으로 향하고 있었다.
나는 가톨릭 신자는 아니다. 하지만 어느 종교든 그 모든 것은 신성한 것이고 그 본질을 접할 수 있는 것은 어느 누구에게나 평등한 것이라 믿고 있다. 그래서 종교와 관련된 어느 곳이든 그곳에 들어선다면 마음은 경건해야 하고 그 안의 모든 것을 존중해야 한다. 물론 사이비라 불리는 종교는 제외하고 말이다.
성모 마리아의 모습이 보였다. 낯설었지만 어색함은 잠시였을 뿐. 마리아의 상을 보니 마음이 차분해지며 을씨년스러운 날씨마저 밝게 느껴졌다. 추웠던 몸도 얼음이 녹듯 풀리는 것 같았다. 아니, 몸보다는 마음이 따뜻해졌다고 해야 더 정확할 것이다. 모든 것을 포용해주는 그분의 모습. 그 모습이 너무 인자하여 나도 모르게 꾸벅 인사라도 해야 할 것 같았다.
생각해 보니 그곳은 바다가 보이는 성당이었다. 엄숙하고 경건하게 미사를 드려야 하는 곳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얼마나 낭만적인가? 성당에서 보이는 넓은 바다 위에는 그림처럼 섬이 떠있고 그 바다를 배경으로 예배당 앞 넓은 뜰과, 지중해 바다 어느 섬에서 보았던 것처럼 이쁜 포구가 보이는 곳. 경건히 미사를 드리고 난 후에 바라보는 바다. 마음이 복잡하고 어지러울 때 고해성사를 드리고 난 후 바라보는 바다. 그리고 추운 날씨가 무색하도록 마음까지 따뜻하게 해주는 성모 마리아가 있는 곳. 이 모든 것들이 너무 낭만적이지 않은가?
전에는 왜 이곳에 오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무심히 지나며 그냥 그럴 것이라 생각했던 곳이었지만 그 안에는 마음을 따뜻하게 해줄 고귀한 것이 있었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생각해 보니 그동안의 여행은 자의든 타의든 남들이 보았던 것만 보는 여행이었던 것 같다. 그것은 수없이 많은 다양한 정보에 의해 만들어진 꼭 가봐야 한다는 틀에 박힌 고정된 생각들이었고, 결국 그것들에 얽매이게 되어 아름다운 경험을 할 수 있는 기회를 놓쳤던 것은 아닐까? 세상은 넓기에, 그래서 어느 곳을 여행하든 자신과 마주하기 전까지는 아무것도 모르는 것이다. 그리고 예상치 않게 다가오는 기쁨은 어느 여행자가 미지의 성당에 들어서는 순간 종교에 귀의라도 한 듯 차분한 감동이 일렁이는 마음과도 같을 것이다.
여전히 바람은 빗방울과 함께 야자나무 잎을 마구 흔들어 대고 있었다. 하지만 그와 반대로 성당의 분위기와 마주하는 풍경들은 나의 마음을 차분히 설레게 해 주고 있었다. 마치 늦가을 떨어지는 낙엽을 보며 누군지도 모르는 누군가를 보고 싶어 하는 마음처럼. 그리고 그 여운은 너무 강하여 다음에 이곳에 왔을 때 만약 지금 같은 날씨와 계절이 아니라면 시시하다고 느껴 버릴 것처럼. 그렇게 주위의 모든 것들은 내 머릿속 기억 속에 깊게 자리를 잡고 있었다. 기억은 사랑보다 더 슬프다고 했던 어느 노랫말처럼 분명 오래오래 그곳이 생각날 것처럼.
나는 신세계라도 만난 듯 여러 장소를 옮겨 다니며 사진을 찍었다. 커다란 사진기를 갖고 오지 못했던 것이 아쉬웠다. 그리고 뒤늦게 알게 된 사실인데 나는 몇 군데의 똑같은 장소를 계속 돌며 사진을 찍었다는 것이다. 방금 전 사진을 찍었다는 것을 잊은 채 다른 장소에서 사진을 찍고는 다시 돌아와 마치 처음 보는 풍경인 것 마냥 또 사진을 찍었던 것이다.
아마도 그 순간만큼은 성스러운 장소에서 바람과 비가 만든 분위기가 만들어낸 풍경을 바라보며 다양한 느낌을 받았던 것 같다. 여러 생각과 느낌은 나쁘지 않은 좋은 것들이었고, 같은 장소에서 보았던 풍경이라도 매 순간마다 다르게 느껴졌다. 나는 한참이나 그렇게 성당 주변의 공간을 빙빙 돌며 사진을 찍었다. 그리고 지금도 내 휴대폰에는 시간차가 나는 똑같은 장면의 그곳 사진이 가득하다.
많은 사진을 찍었다고 생각했지만 거의 비슷한 풍경의 사진들이었다. 그렇지만 같은 모습이라 해도 매번 사진을 찍던 내 마음은 달랐다. 전기가 오듯 찌릿한 설레임처럼 내 마음은 순간순간 변했고 매 순간 마주하는 풍경은 모두 달리 보이고 달리 느껴졌다. 그렇듯 여행에서 마주하는 수많은 순간들은 여행자의 마음에 따라 카메라 플래시 터지듯 번쩍하며 기억과 마음에 그 느낌을 담는 것이다. 그리고 훗날 그날의 기억을 회상하며 좋았던 여행, 아니면 아쉬웠던 여행이라 생각하며 회상할 것이다. 그리고 당시의 기분과 느낌, 그곳에서의 추억을 꺼내며 그곳을 그리워하거나 꼭 다시 가보겠다는 꿈도 꿀 것이다. 성당을 나왔을 때의 나의 마음은 알지 못할 기쁜 무언가로 가득 차 있었다. 먹지 않아도 배 부르고 속이 든든한 것처럼 나의 마음은 그러했다.
하늘을 바라보니 여전히 흐리다. 회색빛은 바람의 힘을 빌어 푸른빛이 있어야 할 자리에 구석구석 스며들며 절대 이 곳을 떠나지 않을 것이라 외치는 것 같았다. 그리고 그것은 그곳에 계속 머무르고 싶던 내 심정이기도 했다.
차는 다시 수월봉을 향한다. 본래 그곳을 가려했던 이유는 넓은 바다가 보이는 수월봉 정상에서 돌고래가 뛰노는 장면을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것 말고도 그날 나는 또 하나의 소망이 생겼다. 그것은 맑은 날도 아닌, 눈이 내리는 날도 아닌 딱 그날만큼의 비와, 그날만큼의 구름과 바람이 부는 날씨에 그 성당에서 성모 마리아를 바라보며 따뜻함을 느끼는 것. 그리고 바다 위 풍경들을 바라보며 성당 안을 이리저리 뛰어다니는 것. 당연히 그때의 마음은 지금까지 간직하고 있는 나 만이 느꼈던 그 마음으로 말이다. 아마도 회색 구름이 가득한 하늘에서 비가 내리는 바람 부는 날, 제주 용수리 성당에서 카메라를 들고 이리저리 돌아다니는 사람이 있다면 분명 내가 될 것이다.
여행은 마음의 눈으로 순간순간의 기억을 가슴에 간직하는 것이다. 그 기억은 사소한 것일 수도 있지만, 세상 모든 사람들의 생각과 감정들이 다르기에 누군가에게는 커다란 감동이 될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마음의 발자국을 남긴 그곳을 기억하며 그리워하고 다시 찾아가겠다는 희망을 꿈꾸는 것이다. 여행은 두발이 아닌 마음의 발로 움직이며 보고 느껴야 한다. 그리고 그것은 특별한 누군가만이 할 수 있는 것이 아닌 세상을 여행하고, 세상 속에서 살아가는 나와 당신, 그리고 우리들 모두가 할 수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