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픈 가을

평화로움은 노인의 한숨을 더욱 또렷하게 합니다 - 아산 공세리 성당

by Ollein


가을이 깊어 가고 있습니다. 계절의 깊이는 두꺼움에서 두터움으로 변하며 떠나가는 아쉬움에 서운이 가득해져만 갑니다. 그래서인지 떠나는 가을을 보기 위해 어디든 가야 할 것 같아 조바심이 생깁니다. 하지만 멋지다고 소문난 곳을 찾아다니기는 싫습니다. 너무 많은 사람과 너무 많은 차들 때문에 배보다 배꼽이 더 클 만큼 길에다 쏟아붓는 시간이 기 때문입니다.


어떤 이는 말합니다. 멋진 것을 보려면 그만큼의 희생이 필요하다고. 그것이 시간이든 돈이든 아니면 몸으로 하는 것이. 하지만 꼭 그럴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우리나라의 가을은 어디를 가도 울긋불긋한 단풍과 황금빛 들판 그리고기 없는 서늘한 공기가 있기 때문입니다. 잠시 집 밖을 나오기만 해도 세상 어디에 내놓아도 멋지고 아름다운 가을이 있죠.


공세리 성당. 2016.11.
공세리 성당. 2016.11.
공세리 성당. 2016.11.


마지막 가을을 보내려는 마음으로 길을 나섭니다. 목적지는 공교롭게도 성당입니다. 제가 공교롭다고 한 이유는 얼마 전 제주의 어느 성당에서도 사진을 찍으며 이리저리 뛰어다닌 적이 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군대 시절 초코파이와 비빔밥을 준다는 말에 선임병을 따라가게 된 것이 계기가 되어 천주교가 아닌 다른 종교를 믿고 있습니다. 이러다 종교가 바뀌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네요. 하지만 어느 종교든 무슨 상관이 있겠습니까? 마음이 힘들 때면 법정 스님의 책도 읽고, 이해인 수녀님의 글도 읽으면 되는 것이니까요.


공세리 성당. 2016.11.
공세리 성당. 2016.11.


차를 몰아 아산에 있는 공세리 당에 도착합니다. 저처럼 가을을 느끼려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나무들은 저마다의 색으로 잎을 물들이고 있네요. 어떤 나무는 이제부터 시작이라 하며 샛 노란색을 자랑하고, 어떤 나무는 오늘이 끝인 듯 내년을 기약하며 잎을 떨구고 있습니다. 그런 자연의 섭리가 왠지 부산스럽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당은 고요니다. 사람들의 대화는 소곤소곤하며 발걸음은 빠르지 않습니다. 마음이 들떠 바쁘게 달려온 저의 마음도 차분해집니다. 찰칵거리는 카메라 셔터 소리마저 조심스럽기만 합니다.


공세리 성당. 2016.11.
공세리 성당. 2016.11.
공세리 성당. 2016.11.


성모 마리아의 상을 보니 안식이라는 단어가 떠오릅니다. 안식이라는 말은 편히 쉰다는 의미입니다. 몸이 편한 육체적 안식이 아닌 마음이 편안한 정신적 안식이 필요한 요즘. 그분의 모습을 보니 마음이 편해지는 것이 느껴집니다. 세상에서 벗어나 혼란스럽던 것들을 잊고 잠시 쉬어 갈 수 있을 것 같은. 가족들, 연인들, 그리고 홀로 서성이는 사람들. 이곳에 있는 이 순간만이라도두의 마음이 고요하고 편안했으면 좋겠습니다.


공세리 성당. 2016.11.


어느 가족이 저에게 사진을 찍어 달라고 합니다. 큰 사진기를 들고 있으니 전문가냐고 물어보네요. 아니라고 했지만 포즈를 취하는 가족들의 모습엔 멋진 사진이 나오리라는 기대감이 보입니다. 그들이 건네준 휴대폰으로 신중하게 가로로 두 번 세로로 두 번 사진을 찍습니다. 그리고 휴대폰을 건네주며 마음에 들지 않으면 다시 찍어 주겠다고 말합니다. 이유는 저도 언젠가 어느 여행지에서 어렵게 부탁해서 사진을 찍었던 적이 있는데 내심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경험이 있기 때문입니다. 서툰 사진 때문에 가족 여행의 추억을 망칠 수는 없죠.


공세리 성당. 2016.11.


성당엔 오래된 나무가 습니다. 한여 그늘이 되어주었던 고목들도 이제는 잎들을 노랗게 변신시켜 우리들 마음으로가오고 있습니다. 가지가 하늘을 뒤덮고 있지만 우울하거나 어둡거나 침울하지 않습니다. 되려 이곳에 있는 모든 것들을 지켜주고 보호해주는 존재 같습니다. 자신을 내세우지 않고 우쭐해하지 않으며 말입니다.


공세리 성당. 2016.11.
공세리 성당. 2016.11.
공세리 성당. 2016.11.


무엇을 간절히 바랬던 적은 언제였을까요? 그리고 그것을 위해 기도를 해본 적이 언제였던가요? 두 손을 모으는 것이 어색하고 쑥스럽습니다. 그래서 성모 마리아를 바라보며 마음으로만 기도를 드립니다. 저 자신을 위해 그리고 가족을 위해. 그런데 떠오르는 생각 하나가 있습니다. 나만 잘 되게 해달라고 기도 하는 것. 너무 이기적인 것이 아닌가 하고요. 세상 사람 모두가 잘되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하지만 그러할 수 없는 것이 우리의 삶입니다. 슬프게도 내가 잘 되려면 누군가는 그렇지 못하게 되는 것이 우리의 현실입니다. 다시 기도를 합니다. 세상 사람 모두가 평등한 행복속에서 살아가게 해 달라.

공세리 성당. 2016.11.
공세리 성당. 2016.11.
공세리 성당. 2016.11.


예배당. 이 세글자는 참 따뜻한 느낌이 느껴지는 단어입니다. 그곳에선 모든 것, 모든 사람존중받고 차별도, 편견도 없이 사랑으로만 모든 것이 통용되는 곳이죠. 이곳 공세리 성당은 100여 년의 세월을 보낸 성당입니다. 역사적 의미에 비해 사람들에겐 잘 알려지진 않은 곳이죠. 100여 년 전부터 이곳 예배당에서는 수많은 사람들이 두 손을 모아 따뜻한 세상을 만들어 달라며 기도를 하였을 것입니다. 그리고 100여 년이 지난 지금. 우리는 시련의 계절을 맞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곳 예배당만큼은 여전히 따뜻한 마음간직되어 있을 것입니다. 입구에 놓인 신발의 주인들도 그 따뜻함이 그리웠을 것입니다.


공세리 성당. 2016.11.
공세리 성당. 2016.11.
공세리 성당. 2016.11.
공세리 성당은 충청도 지역의 천주교 초기 본당 중의 하나로, 충청도에서 두번째로 오랜 역사를 가진 성당이다.(공세리 성당. 2016.11.)


한 명, 두 명,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많은 사람들이 몰려옵니다. 카메라 삼각대를 든 사람. 멋진 유니폼을 입은 자전거 동호 사람들. 그리고 저마다의 삶 속에서 위안을 받으려 온 사람들. 그리고 그들은 사진을 찍습니다. 누군가 한 곳에서 사진을 찍으면 다른 사람들도 똑같이 그 자리에서 사진을 찍습니다. 그런 이유는 아름다움을 보는 눈은 모두 똑같기 때문입니다.


아름다움을 표현하는 것은 사람들마다 다릅니다. 어떤 이는 소리 내어 탄하며 표현하고, 어떤 이는 마음속으로만 감탄하는 이도 있습니다. 하지만 표현하방식만 다를 뿐 그들 모두의 마음은 똑같습니다. 그처럼 아름다운 것은 누가 보아도 아름답고 그것을 바라보는 순간 마음은 선해 지기 마련입니다. 그리고 잠깐이라 해도 그 순간만큼은 모든 사람들 에게는 소중한 순간인 것이죠. 그렇기에 본래 사람은 선하다고 믿고 싶습니다. 그래서 잘못한 일이 있다 해도 자신의 죄를 뉘우치고 책임질 수 있어야 한다고 말입니다.


공세리 성당. 2016.11.
공세리 성당. 2016.11.
공세리 성당. 2016.11.


잠시 성당을 나와 느릿한 걸음으로 마을길을 걸어 봅니다. 백 미터 남짓의 짧은 마을 길이지만 정겨움이 가득하네요. 작은 도서관엔 동심의 마음이 가득한 그림들이 걸려있고, 건물 벽에는 활짝 웃고 있는 농부의 모습도 보입니다. 역사가 깊은 성당이 있는 마을이지만 하나의 이정표만이 곳에 성당이 있다는 것을 알리고 있습니다. 참 평화롭고 소박한 마을입니다.


공세리. 2016.11.
공세리. 2016.11.
공세리. 2016.11.
공세리. 2016.11.


버스 정류장에 계셨던 할머니께서 한숨을 크게 쉬시며 말씀하십니다. 어쩌다 나라에 이런 일이 생겼느냐고. 할머니가 한숨짓는 이유 때문에 지금 세상은 꺼지지 않는 촛불로 가득 밝혀지고 있습니다. 민초들의 힘에 의해 만들어진 세상을 어느 누군가가 제 것인 것 마냥 불법을 저지르며 우리의 역사를 더럽혔기 때문입니다. 설마 했던 생각은 사실이 되었고 그 진실에 우리는 허탈해하고 분노하고 있습니다. 깊어가는 가을에 둘러싸인 평화롭고 조용한 마을은 할머니의 한숨을 더욱 또렷하게 합니다. 그리고 그 또렷함이 너무도 선명하기에 분노된 마음은 더욱 슬프고 서글픈 아픔으로 변해 다가옵니다. 이제 이 가을이 지나고 겨울이 오면 눈을 기다리며 설레어야 할 우리들이지만, 도무지 러하진 못할 것 같습니다. 아마도 이번 겨울은 어느 해 겨울보다 몸과 음이 추운 겨울이 될 것 같습니다.


공세리. 2016.11.
공세리. 2016.11.
공세리. 2016.11.


마지막으로 멀리 보이는 성당의 마리아 상을 보며 마음을 다해 기도 합니다. 세상 사람 모두가 평등하고 합리적인 세상에서 살아갈 수 있게 해 달라고. 지금은 슬프고 화나고 억울 하지만, 희망을 갖고 시련을 이겨낼 수 있도록 해 달라고. 아름다운 것을 보아도 웃을 수 없을 만큼 너무도 깊은 상처를 갖게 된 우리들이지만, 우리들의 아이들과 우리들이 살아갈 미래는 평등하고 합리적인 올바른 세상에서 살아가게 해 달라고. 그리고 맑은 눈을 가진 아이의 마음처럼 저토록 천진난만하게 이쁘고 고운 가을을 쑥스럽지 않고 부끄럽지 않은 우리의 세상에서 떠나보낼 수 있게 해 달라고.


기도합니다. 지금의 시련을 이겨내어 평등하고 합리적인 올바른 세상을 만들게 해 달라고. (공세리 성당. 201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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