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는 자신이 주체가 되는 삶이 좋다고 했다.
점심을 훌쩍 지난 시간. 조금은 황량해 보이는 닭머르 해안의 언덕. 그곳엔 조그만 노란색 푸드 트럭이 있었다. 커피와 김밥을 부탁하자 주인인 그녀는 커피를 내리고 김 위에 따듯한 하얀 밥을 깔고 재료를 얹어 김밥을 말기 시작했다. 그녀는 주문이 들어오면 그때그때 김밥을 만든다고 했다. 미리 만들어 놓으면 밥이 마르고 맛도 변하기 때문이라며.
그녀는 몇 달 전 짐을 꾸려 커다란 배를 타고 제주로 왔다고 했다. 제주에 오겠다고 결심했을 때 가장 먼저 고민되었던 것은 어떻게 먹고살아야 하는가 였다고 한다. 그래서 바리스타 자격증을 따고 요리학원을 다녔고 작은 푸드 트럭과 함께 섬에서의 생활을 시작했다고 했다. 힘들고 어려울 거란 걸 알고 있었지만, 하고 싶었고 원했기에 바람 많은 이 섬에 왔다고 했다.
야무진 두 손으로 꾹꾹 누르며 김밥을 싸고 있는 그녀에게 낯선 섬에서의 삶에 불편함이 없냐고 물었다. 육지에서 엄마가 오시는데 새 이부자리를 펴 드리고 싶어 이불을 주문했지만, 도착일이 지났는데도 아직 받아보지 못하고 있다고 했다. 그런데도 그녀는 빙그레 웃으며 불편하긴 해도 자신이 주체가 되는 삶이 좋다고 했다. 그래서 지금의 삶이 좋고 그 어느 때보다도 행복하다고 했다.
그녀가 부러웠다. 사실 나도 그녀처럼 제주에서 사는 것을 희망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지금 당신과 같은 삶이 내 꿈이라고 말할 수가 없었다. 진지하게 고민하지 못한 채 그저 입버릇처럼 말로만 내뱉던 내 마음의 경박함과는 달리 낯선 섬으로 입도한 그녀의 선택과 열정이 너무 고귀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누구나 자신이 원하는 삶을 살고 싶어 한다. 하지만 살고 싶다는 것과 살아간다는 것은 엄연히 다르다. 상상이 현실로 되는 순간, 삶은 그 순간을 경계로 너무도 명확하고 단호하게 선을 그어 버리기 때문이다. 마치 어제의 친구가 오늘은 적이 되고, 매달 따박따박 입금되던 월급이 더 이상 들어오지 않는 순간, 허전함과 함께 배신감이 느껴지는 당황스러움에 어딘가에 하소연할 사이도 없이 냉혹하게 되어버린 현실처럼 말이다.
하지만 우리는 시간이 지나면 부족함도 불편함도 적응이 되어 살아지게 마련이다. 중요한 것은 내가 선택한 삶을 현실의 내 마음이 어떻게 받아들이냐 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선택에 후회가 없다면 우리도 그녀처럼 행복해질 수 있을 것이다. 그러고 보면 우리는 무엇이 행복의 조건인지를 이미 알고 있는지도 모른다. 덜 먹고, 덜 쓰고, 덜 입는 생활이라 할지라도 조금만 마음을 비워내면 불편할 것도 부족할 것도 없는데 말이다. 단지 행동하지 않을 뿐이며, 만약 그것을 모른 체 한다면 그 사실을 인정하고 받아들이기가 싫을 뿐인 것이다.
나는 마지막으로 그녀와 인사를 나누었다. 그리고 격려를 해주었고 파이팅을 외쳐 주었다. 하지만 난 알고 있었다. 나는 그녀에게 그처럼 용기를 줄만한 자격이 없다는 것을. 되려 그녀의 선택에 대한 실천과 열정적인 삶을 존경해야 한다는 것을.
두 손을 모아 꼼꼼하게 힘주어 말던 한 줄의 김밥에 열정을 담았고, 선택한 삶을 소중히 여기며 자신감 가득했던 그녀. 살아간다는 것은 물질적인 것보단 마음과 정신이 앞서는 것이기에, 행복의 여부는 결국 자신의 마음에 달려 있다는 것을 일깨워 준 그녀. 그렇기에 새로운 삶으로부터 오는 불편함도 그녀는 행복한 불편이 되었을 것이다. 물론 머지않아 그 불편함은 평범한 일상의 고요한 행복이 될 테지만.
※ 이 글은 저의 '제주올레 이야기' 매거진 중 '올레길에서 만난 삶의 열정'글을 다시 각색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