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동행

아이의 작은 걸음들은 훗날 큰 힘이 될 것입니다.

by Ollein


몇 해 전 걸었던 어느 올레 길중 엄마와 아이의 대화가 들려옵니다.


" 힘들어? "

" 헤헤 "

" 힘들어서 쉬더라도 엄마 따라잡을 만큼만 쉬어야 해. 엄마는 네가 뒤 떨어져도 계속 걸을 거야. 그리고 오늘 엄마랑 올레길 걸은 거 잃어버리지 말고 꼭 기억해주길 바랄게 "

" 기억해야 해? 엄마? "

" 그 이유는 지금 엄마도 몰라. 그건 네가 어른이 되어야 알 수 있는 것이거든. 하지만 언제 일지는 모르지만 아주 먼 훗날 오늘 엄마랑 이길 걸은걸 기억할 날이 올지도 몰라. 그래서 많이 힘들겠지만 참고 걸어보는 거야. "


엄마는 아이에게 단호하게 얘기했지만, 엄마는 아이가 힘이 들것이라는 것을 알기에 길을 걷는 동안 아이를 기다려 주기도 하고 아이의 손을 잡아 주기도 했습니다. 아이를 바라보던 저도, 함께 길을 걷던 사람들도 모두 아이가 무사히 잘 걷기를 바랬죠. 그 마음을 아는지 아이는 잠시 서서 이름 모를 꽃을 바라보기도 하고, 때로는 앞서가는 엄마를 바라 보기도 했습니다. 그러다 힘들면 쉬었다가도 다시 힘을 내어 길을 걸었구요. 꽤나 먼 길이었지만 결국 아이는 엄마 손을 꼭 잡고 무사히 길을 마치게 됩니다.


그날 길 위의 모습들은 모두 아이의 맑은 눈과 마음에 담겼을 것입니다. 하늘, 땅, 벌판 그리고 공기. 훗날 어른이 되어 사나운 파도가 밀려왔을 때 그것들을 이겨낼 힘이 될 아름다운 기억들을요. 그러고 보면 아이가 무사히 잘 걷기를 원했던 건 작은 체구 때문이기도 했지만, 먼 훗날까지 아이가 스스로 해냈다는 마음을 간직했으면 하는 바램도 있었을 것입니다.


엄마와 아이, 제주올레 18코스


유년의 기억은 누구에게나 있습니다. 하지만 당연히 있는 것임에도 어른이 된 우리는 그것들을 꺼내지 못한 채 마음 안에 간직하고만 있습니다. 그래도 가끔씩 스치듯 떠오르곤 하지만 유년을 기억한다는 것은 밤하늘에 떨어지는 별똥별 같기만 합니다. 소원을 빌려해도 너무 빨라 아! 하는 외마디 탄성밖에 할 수 없는 것처럼요. 맑고 선명했지만 순식간이었기에 후회되고 더욱 그립죠. 하지만 행여 또렷이 기억이 소환된다 하더라도 눈물이 왈칵 쏟아질 것만 같아 망설여지기도 합니다.


길을 걷던 그날 신기하게도 손을 잡고 걷는 아이와 엄마를 보니 하나둘씩 지워졌던 유년의 기억이 떠올랐습니다. 아이처럼 먼 길을 걸었던 기억은 없지만 저 혼자 스스로 알아가며 깨달았던 순간들이요. 조금씩 그것들이 쌓여 갈수록 어른이 된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 같습니다. 아주 드문드문 떠오르는 기억이었지만 돌아갈 순 없어도 회상할 수는 있다는 것만으로도 위안이 되었죠. 그리고 기억의 재생과 위안을 가능하게 해주었던 아이와 엄마가 고마웠습니다.


시간이 흐르고 어른이 되어 갈수록 잃어버리는 것이 너무 많은 것 같습니다. 수많은 이해관계 속에서 삶이라는 현실 속에 살다 보니 무엇을 잃었고 무엇을 버렸는지도 알 수 없죠. 그래도 한 번은 꺼내고 싶어 애를 써 보아도 마음처럼 그리 쉽지만은 않습니다. 하지만 그 마음은 어른들이 만들어낸 마음 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어른이 되어 갈수록 정확해야 하고 반듯해야 하며 체면과 자존심을 지켜야 한다는 의무가 고집으로 변한 것처럼 말입니다.


그날 저는 아이가 느끼고 보았던 모든 것들이 아이의 마음에 간직되기를 빌었습니다. 길을 걸으며 느꼈던 모든 것들을 엄마처럼 어른이 되어도 잊지 말기를요. 지금보다 더 힘들고 각박한 세상이 온다 해도 이 날을 떠 올리며 어려움을 이겨 냈으면 하는 마음이었습니다. 아이가 힘들면 쉬었다가도 또다시 힘을 내며 걸었던 것처럼요. 그리고 그날 저는 알 것 같았습니다. 한걸음 한걸음 내딛던 작은 걸음들이 훗날 커다란 걸음을 걷는 어른을 위로해 줄 것이라고요. 아주 환하고 크게 미소 지으며 말입니다. 물론 아이가 엄마에게 물어보았던 왜 길을 걸었던 것을 잃어버리지 말아야 했는지의 답도 함께 말입니다.


아빠와 아이, 제주올레 21코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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