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마다 맞이하지만 해마다 새롭고 마음 들뜨는 계절이 봄이다. 꽃들은 따뜻한 기운을 따라 피어났지만 내가 느끼는 체감은 분주한 삶을 사느라 여전히 추웠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하루와 이틀이라는 시간 차이로 바람은 완연히 따뜻한 기운으로 바뀌었고 하루아침에 필요 없게 된 겨울 패딩이 당혹스럽기만 했다.
이처럼 정신없이 계절을 맞이 했다고는 하지만 어쩌면 나의 게으른 마음이 더 컸을지도 모른다. 뉴스며 인터넷에서는 봄의 시작을 알리는 글이며 사진들이 올라오기 시작했지만 난 왠지 그 계절의 설렘을 간직하려 모른 체 했는지도 모른다. 그러다 뒤늦게 사방천지 꽃들이 피고 어느새 조금씩 사라지는 꽃을 보고는 마음이 급하여 아산의 어느 마을로 향했다. 그곳으로 가는 동안 마음에선 하얀 꽃 속에 묻힌 풍경을 기대하면서도 나의 설렘, 아니 나의 게으름이 그 풍경을 놓치고 만 것은 아닌지 하여 조금은 조급한 마음도 있었다. 하지만 마을에 들어서니 생각과는 달리 막 꽃들이 피어나기 시작하고 있었다. 차라리 일주일만 더 늦었으면 만개한 꽃들을 볼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을 느꼈다. 그리고 그 아쉬움을 통해 이미 난 지난겨울의 끝자락부터 봄을 애타게 기다려 왔던 사실을 알게 되었다.
마을에 들어서니 벚꽃이며 산수화며 개나리가 이쁘게 마을을 색칠하고 있었다. 노랗고 하얗고 분홍빛인 꽃들은 지천으로 피어있진 않았지만 지난겨울의 흔적들과 대조를 이루었기에 그 색이 더욱 빛났다. 바람은 따뜻하면서도 그 뒤 끝은 차가운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였는지 사람들의 복장도 참 각양각색이었다. 어떤 이는 겨울 패딩을 입고 있는 이도 있었고 어떤 이는 얇은 겉옷을, 혹은 반팔티를 입고 있는 이도 있었다. 봄바람은 그처럼 사람들의 마음을 들었다 놓았다 하는 것 같다. 게다가 머리카락을 휘날리게 하여 성가시게도 한다. 하지만 그 바람을 맞고 있다 보면 날리는 머릿결은 안중에 없어지고 그저 두근두근 설레는 마음만 생기는 것은 어쩔 수가 없는 것 같다.
마을은 민속 마을이라 했지만 전시용이 아닌 사람들이 살고 있는 마을이었다. 그래서 집집마다에는 널따란 대문에 누구누구네 댁이라는 간판이 있었다. 어느 집 대문 안을 빼꼼히 열고 들여다보니 마루 아래에는 그 집주인의 신발이 놓여 있었다. 들어갈까 말까 망설이다 따스한 빛을 맞고 있는 신발의 여유로움을 망치고 싶지 않았다. 어느 집은 볕 좋은 마당 안에 옷이며 이불을 널어 뽀송하게 빨래들을 말리기도 했다. 그 모습을 사진으로 담으려 주인장에게 양해를 구했더니 뭐 이런 걸 찍냐고 하시며 마음대로 찍으라 하신다. 늘 보아왔던 일상이 사라지고 그것을 그리워하는 날들이 점점 더 많아지는 것 같다. 더욱이 이처럼 환하게 피어있는 꽃이 있는 계절이라면 더욱 그러할 것이다.
그러고 보면 요즈음은 흙길이 없다. 그래서 봄이면 겨울 동안 얼어있던 땅이 녹아 질척거리는 땅을 보기가 힘들다. 퍽이나 불편했고 항상 신발 밑창에 붙어있던 흙들을 떼어내느라 번거롭곤 했었는데 이제는 그 번거로움도 아득한 예전의 추억이 되고 말았다. 그래서인지 되려 넓고 좋은 길보단 어느 집 담 아래로 나 있는 작은 길이 더 좋기만 하다. 딱딱하게 시멘트로 만들어 놓은 길보단 사람들이 만들어낸 반질반질한 길. 한 발짝 한 발짝 디뎠던 발자국들이 모어져 사람의 마음을 더욱 정감 있게 만들어 신뢰와 믿음이 가는 길이다. 그래서 우리는 골목을 찾아다니고 작은 흙길을 걸으며 정겨움을 느끼나 보다. 거대한 롤러가 만들어낸 딱딱하고 넑은 대로보단 이쁜 꽃이 심어져 있는 황토 빛 길을.
담너머 핀 꽃은 누군가 자신을 바라봐 주기를 기다리는 것 같았다. 그래서인지 지나는 사람들은 그 안으로 살짝 시선을 넘겨 바라보지만 꽃만이 그 시선을 받아줄 뿐 그 안은 평화로운 일상이 있을 뿐이었다. 그러고 보면 '너머'라는 단어 뒤에는 희망적인 무언가와 설렘이 있다. 완전하지 않고 살짝이 보이는 삶은 기대를 더욱더 크게 만들어 준다. 지나는 사람들은 담너머 핀 꽃을 바라보곤 했다. 분명 그 너머에는 뭔가 근사하고 아름다운 것이 있을 것이라 기대하며. 그리고 그 기대는 바라보는 이들의 희망이 되어.
한편에선 벌들이 웅웅 거리며 꽃 속을 오가고 있었다. 얼마나 많은지 알 수 없을 만큼 많은 벌들의 날갯짓 소리가 컸지만 살짝 나무 아래로 들어가도 제들을 해치지 않는다는 것을 아는 듯 그저 자기들 일만 열심이다. 벌들이 꽃의 향기를 따라 모여들듯 봄을 생각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냄새이다. 얼었던 땅을 뚫고 올라온 봄의 온기와 꽃들은 사방에 봄의 향내를 퍼트린다. 봄의 냄새는 더웠던 대지가 식어가는 가을 과는 달리 얼었던 땅을 뚫고 올라온 생기의 냄새이다. 그 냄새들이 올라오기 시작하면 한껏 숨을 들이쉬어 냄새들을 온몸에 실어 나른다. 그리고 상큼하면서도 따뜻한 온기가 느껴지는 신호에 봄이 왔다는 것을 느끼곤 한다. 비로소 내 몸과 마음이 기지개를 켜며 새로운 계절 속으로 들어가는 순간인 것이다.
어느 집 큰댁을 지나다 보니 며칠 전 내렸던 빗물에 꽃잎을 고스란히 받아 아직 마르지 않은 채 물에 살짝 띄워 내고 있었다. 유독 하나의 독에만 남겨져 있으니 신기하기도 했지만 어쩌면 지나는 봄이 아쉬웠거나 사랑했던 사람과의 꽃날 같은 날이 그리워 유독 하나의 독에 봄이 얹어져 있을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일찍 피고 지는 꽃이 있는 반면 늦게 피고 지는 꽃이 있듯 세상도 마찬가지 일 것이다. 지나간 것은 후회스럽고 아쉽기도 하지만 또 새로운 무언가를 받아들이며 결국은 그것들이 세상을 살아가게 하는 힘이 되는 것 같다. 그래서 계절이 변한다는 것은 좋은 것이다. 비록 나는 무더운 여름을 끔찍이도 싫어하지만 그 또한 맞이하여야 할 계절이고 그 계절을 지나야 또다시 아름다운 계절이 오니, 나는 봄을 보내고 새로운 계절을 맞이 해야 할 것이다.
하얀 봄의 꽃과 어울리게도 어느 집 마당에는 이쁜 꽃신이 있었다. 누군가 신어보려다 급히 벗어 놓았는지 헝클어진 모습이었지만 가지런히 디딤돌 위에 얹어 놓으니 정갈하게 봄을 맞이하는 모습 같았다. 꽃신 주인은 분명 아담한 발을 신에 넣으며 이 봄을 맞이했을 것이다. 그리고는 아름다운 꽃길을 걸었을 것이다. 아장아장 조심스럽게 그리고 하얀 꽃들이 뿌려져 있는 길의 한 부분이 되어 되어. 사람들도 나도 누구의 신인지 궁금해했지만, 끝내 그 주인은 나타나지 않았다. 어쩌면 우리도 모르게 신발의 주인은 자신을 궁금해하는 우리를 수줍게 엿보고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이번 봄엔 지난겨울이 춥지 않아 시간을 어기고 제들 맘대로 꽃들이 피었다고 했다. 하지만 그것을 원망할 필요는 없다. 그 혼돈 같은 꽃들의 피어남도 자연이 허락했기에 가능했기 때문이다. 제들 맘대로 피었다는 것은 사람들이 만들어 낸 말일뿐이다. 꽃들은 분명 자기들의 운명대로 피고 지었을 것이다.
사람들은 여전히 마을을 산책하며 봄날의 정취를 느끼고 있었다. 아이와 엄마, 무등에 탄 아이, 중년의 부부 그리고 가족들. 모두 한가로운 봄날의 풍경이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꽃들은 다가오는 계절을 만들기 위해 꽃을 떨어뜨리고 여린 잎을 더욱 파랗게 피울 것이다. 그러고 나면 몇 년 만에 무더위 기록을 경신했다는 여름이 올 것이지만, 그 또한 자연의 섭리 이므로 지금까지 맞이했던 것처럼 이 봄을 보내고 새로운 계절을 맞아야 할 것이다. 그 무더위를 생각하고 꽃들을 보면 지나는 봄이 무척 섭섭하기도 하지만 그래도 위로가 되는 것은 아직 사월이 남아있고 봄이라 말해도 누구도 부인 못할 오월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여전히 내 마음에는 남아있는 날들의 든든함을 믿으며 여전히 봄은 오고 있고 봄을 보내기는 아직 이르다고 위안하며 계절을 만끽하고 있다.
다시 한번 생각해도 봄은 참 좋은 계절이다. 그리고 그 믿음이 봄을 보내기 싫은 것이 내 마음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