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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llein May 08. 2017

제주 서쪽의 새로운 바당 올레길

제주 올레 15-B 코스


새로운 길


 흐트러진 점들이 모여져 의미 있는 선이 되는 것. 그 선이 또 다른 선과 연결되어 그 선 상에서 우연과 필연을 마주하며 새로운 경험을 하는 것. 차창 밖으로 보았던 풍경이나 누군가 찍어놓은 사진을 보며 꼭 한 번은 가고 싶다고 생각했던 곳을 이어 놓는 것처럼. 그렇게 새로운 길이 만들어지고 그 길을 걷는다는 것. 참 마음 설레는 일이다.


 제주올레 15-B 코스는 기존의 내륙으로 걷던 15코스 길을 해안으로 걸을 수 있도록 또 하나의 길로 만든 길이다. 새로운 길이 열린다는 소식에 한림항에 모인 사람들은 마음이 한껏 들뜬 것 같았다. 사람들을 보며 생각했다. 내가 길을 걸으며 느꼈던 감정들을 이 사람들도 똑같이 느끼고 감동받았기에 이렇게 모였다는 것을. 길을 걸을 때면 혼자 걷는 일도 있었고 지나는 사람을 볼 수 없을 때도 있었다. 그럴 땐 외로움을 마주 하기도 했지만 광장에 모인 사람들을 보면 그럴 필요는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분명 사람들 모두는 올레길을 걸으며 생각했던 내 마음과 같았을 것이다. 단지 서로 만나지 못했을 뿐 모두가 알 수 있을 이유로 그들도 나처럼 이 길을 사랑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제주 수원리
제주 수원리
제주올레 15-B코스는 한림항- 대수포구-한수풀 해녀학교-귀덕1리 어촌계복지회관-곽지과물해변-한담해안 산책로-애월초등학교-고내포구로 이어지는 길이다.


한림항


 광장은 새로운 길을 맞이하는 설렘으로 북적거렸다. 하지만 커다란 대로를 사이에 둔 한림항은 조용하기만 했다. 비양도는 여전히 푸른 바다 위에서 자태를 뽐내고 있었고, 항구의 배들은 먼 바다로 나가기 전 숨을 고르듯 쉼을 이어가고 있었다. 배들에게 하루의 시작은 자정이 아니라 배의 시동을 거는 순간부터일 것이다. 배는 기지개를 켜며 하루를 시작할 것이고 힘차게 바다로 향할 것이다. 비록 우리의 삶 같은 망망한 바다이지만 만선으로 돌아오리라는 희망을 안고.


한림항
한림항


봄과 유채


 새로운 올레길엔 봄이 완연했다. 길과 돌담을 따라 가지런하고 곱게 피어난 꽃들은 사람들의 발걸음을 잡아 놓기에 충분했다. 그중에서도 노란 유채는 초록의 대지와 대조를 이루어 그 앙증맞음이 더했다. 봄이 완연히 깊어진 탓에 어쩌면 볼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나의 염려는 헛된 것이었다. 이러다 유채는 제주에서 사계절 내내 볼 수 있는 꽃이 될 것만 같다. 제주의 특이한 기후 때문 이기도 하겠지만 그렇다 해도 자연의 순리대로 피고 지는 유채이니 무어라 탓할 수도 없을 것이다. 사실 언제 피어도 상관은 없다. 노란빛의 꽃이 이쁘기만 하니 더 바랄 것이 무엇이겠는가?


수원리
수원리
귀덕리 해변


함께 한다는 것


 대부분의 사람들은 일행이 있었다. 그들은 서로 사진을 찍어 주기도 했고 함께 바다를 바라 보기도 했다. 상대가 누구든 함께 여행한다는 것은 좋은 것이다. 아름다운 풍경을 볼 때면 함께 행복하여 좋은 것이고, 여행이 지루 할 때는 서로에게 위안을 줄 수 있으며, 길을 잃었을 땐 함께 있다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든든하기 때문이다.


 때로는 의견이 엇갈려 골이 날 때도 있다. 하지만 함께 길을 걷고, 차를 타고 같은 방향으로 함께 간다는 사실에 서운했던 마음은 모두 풀어지게 된다. 자신을 바라보고 싶을 땐 혼자 하는 여행도 좋겠지만 아름다운 광경을 보거나 생경한 경험을 할 때 혼자 이기에 누군가와 공감하지 못한다는 아쉬움을 생각해 본다면 함께 한다는 것은 소중한 것이다. 더욱이 여행에서 돌아온 후에 이 한마디로 웃음을 짓게 할 때면 더욱 그러하다.


"우리. 그때 그랬었지"


귀덕리 해변
귀덕리 거북 바위 해변
한림 해안로


인고의 옥빛 바다


 어디선가 사람들의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소리들은 어느 마을 회관 앞에서 들려오고 있었다. 그곳엔 물질을 준비 중인 해녀 할망들이 계셨다. 조용한 동네에 많은 사람들이 지나는 것을 보시곤 왠지 마음이 들뜨신 것 같았다. 잠시 무거운 물질도구를 메고 바다로 나가는 해녀 할망들과 함께 길을 걸었다. 말씀을 건네니 친절하게 받아 주시며 어디서 왔는지, 오늘 몇 명이 이 길을 걷는지, 다리는 아프지 않은지를 물어보셨다.


 내 눈에 그녀들은 굉장히 커다랗고 위대하게 보였다. 수십 년간 물질을 한 세월의 흔적은 얼굴에 깊게 파인 주름으로 알 수 있었다. 그녀들이 무거운 물질도구를 거뜬히 메고 바다로 나갈 수 있었던 것은 자식과 가족들의 행복 때문이었으리라. 그리고 이제는 쉬어도 될 나이가 되었지만 여전히 그녀들은 거친 바다로 향한다. 위험하고 고달픈 하루하루라 해도 그 날들이 모여지면 어제 보다 행복한 날들이 있을 거라 확신하며 인고의 숨비 소리를 토해냈을 것이다. 옥빛의 바다 더없이 아름답게 보였다. 하지만 그 안에 있는 삶은 그 빛깔만큼 아름다울 수많은 없다는 생각도 들었다.

 


귀덕리
귀덕리


머물고 싶은 봄 바다


 사람들은 바다를 보며 사색을 하거나 서핑을 즐기기도 했다. 보아도 보아도 질리지 않는 제주의 바다. 사람들의 입에 많이 오르내리는 곳을 찾는 것은 일반적인 여행의 일정이다. 그런 사람들에게 한 곳에 머물며 있는다는 것은 몇 년, 혹은 그 이상의 시간을 기다리며 고대했던 여행을 한순간에 버리는 것과 같을 것이다. 하지만 제주의 바다를 보며 그것이 맞지 않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 곳의 장소에서 아침과 점심과 저녁. 그리고 새벽과 밤을 보내는 것. 다양하진 않을지라도 한 곳에서 고스란히 하루를 보낸다는 것. 그것은 잠시 동안이라도 내가 그곳의 일부였다는 사실과 그곳을 떠나며 뒤돌아 보게 했던 여운은 다음 여행을 계획하는 동기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어느 여행지를 다시 가고 싶다는 것. 그것은 낯설고 신기했던 모습보단 평범함 속에서도 순간순간 자신도 놀라워했던 감정들이 더욱 그립기 때문일 것이다.


곽지 과물 해변
곽지 과물 해변
곽지 과물 해변


여행의 복병


 곽지 해수욕장을 지나니 산책로가 나왔다. 한담 해안 산책로이다. 산책로는 곽지에서 애월까지 이어지며 바다를 따라 끊임없이 걷는다. 아름다운 길이었고 어디에 내놓아도 멋진 길이었다. 하지만 그 멋진 길을 걷는 데 방해가 되는 복병이 있었다. 바로 배고픔이었다. 시간은 오후 1시가 넘어가고 있었고 작은 초코바 하나로는 허기진 배를 채울 수가 없었다. 언제쯤 식당이 나오려나 했지만 어느 드라마 촬영지에 있던 식당에서는 너무 많은 사람들이 붐벼 한참을 기다려야 할 것 같았다. 결국 그곳에서의 식사는 포기를 해야 했다. 산책로를 걸으며 허기짐은 여유와 집중력을 떨어 트렸다. 식당이 있는 애월까지 가야 한다는 생각에 빠른 걸음만 있었을 뿐이었다.


 생리적인 현상의 해결은 여행에서 중요하다. 배고픔, 화장실 등등은 즐거워야 할 순간 여행자를 힘들게 한다. 그것들의 문제가 해결되기 전과 후의 여행은 엄청난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빠르게 이동할 수 없는 걷는 여행에서는 그러할 때가 더욱 많다. 그래서 항상 사전에 식당 등이 있는 곳을 알아 두는 편이 좋다. 설마 하며 숙소에 두고 온 초코바와 먹을 것들이 자꾸만 생각이 났다. 방심했던 마음을 반성하며.


한담 해안 산책로
한담 해안 산책로
한담 해안 산책로의 드라마 촬영지
한담 해안 산책로
한담 해안 산책로에서


애월의 초록


 결국 애월에 도착해서야 늦은 점심을 먹었다. 배를 채운 후 힘을 내어 걷다 보니 초록이 가득한 밭이 보였다. 일을 하시던 아주머니 한분이 손을 흔들어 주셨다. 사진으로 그 모습을 담고는 밭에서 자라는 것이 무엇이냐고 물어보았다. 취나물이란다. 뜻밖이었다. 난 취나물이 산에서만 나는 줄 알았는데 밭에서 재배가 되고 있다니. 지나던 사람들도 신기해했다. 아주머니들은 취나물을 뿌리째 뽑지 않고 위쪽만 잘라 내고 계셨다. 며칠이 지나면 또다시 싹이 나기 때문이라고 한다.  


 너른 밭 너머에는 바다가 있었고 등대도 보였다. 바다 바람이 불어오고 파란 하늘과 연결된 초록이 깔려 있는 평야를 볼 수 있는 곳. 이런 곳이 어디 있을까 생각해 보았다. 많은 곳을 다녀보진 않았지만 해외의 어느 곳에서도 볼 수 없는 풍경이었다. 나지막한 풍경들에 눈이 환하게 떠지고 옹졸했던 마음을 가진 사람도 포용의 마음이 생기는 풍경. 구체적으로 무엇이라 말할 순 없지만 이곳이 그리워진다면 분명 저 모습들 때문일 것이다.


애월의 취나물 밭
애월의 취나물 밭


길 끝의 나


 예전부터 제주에 오면 꼭 들르는 카페가 있었다. 그곳에선 길과 바다가 보였고 그래서 카페가 있는 길목에 올레길이 생겼으면 참 좋겠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새로운 길이 생기며 정말 그 카페 앞에 올레 리본과 올레 이정표가 있었던 것이다. 근처인 것은 알았지만 정말 반가웠다.


 카페의 커다란 통유리 밖으로 올레길을 걷는 사람들이 보였다. 중년의 부부, 가족, 유모차를 끌고 가는 엄마와 아빠가 종착점을 향해 함께 길을 걷고 있었다. 힘들 수도 있는 이 길을 왜 걷느냐고 물어본다면 그들은 대답할 것이다. 길을 시작했을 때의 마음과  내가 길 끝에 있기 때문이라 하며신기하고 대견하기도 하며 놀랍기도 한 자신이 있기 때문이라 하며.


고내포구 가기전
고내포구 가기전


 카페에서 나와 사람들과 함께 길을 걸었다. 금세 고내 포구에 도착했고 처음 보는 사람들이었지만 아름다운 길을 걸어 행복했고 수고했다며 서로를 격려해 주었다. 자신들이 갈 곳으로 뿔뿔이 흩어지면 보지 못할 사람들이다. 하지만 뭔지 모를 아쉬움이 남아 쉽게 자리를 뜨지 못하는 것을 보면 모두가 같은 마음이었을 것이다. 굳이 말하지 않아도 모두가 알 수 있었던 마음들그 마음들 곁에서 포구는 오후의 햇살을 한껏 받아 내고 있었다. 아쉬워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위로해 주려는 듯 아주 강렬하고 매혹적인 빛을 내며. 눈이 부시게 반짝이는 빛들이 사람들 마음을 붙잡고 있다는 것을 모른 채.


고내포구
고내포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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