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대를 존중할 수 있는 방법
반말은 상대와의 밀접성을 강조해 주는 상징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때로는 분쟁의 씨앗이 될 때도 있다. 반말을 함으로써 생기는 친밀감 때문에 상대에 대한 존중이 허물어질 때가 있기 때문이다. 그런 측면에서 본다면 적당한 거리에서 서로를 존대해 주는 말은 친밀하지 못한 어색함은 있지만, 또한 그런 이유로 상대에 대한 말이나 행동이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다. 무례를 범할 순간이 적어지는 것이다. 그래서 되려 상대를 더욱 신뢰할 수 있다.
"안녕하세요."
헬스장에서 운동을 하고 있던 나에게 먼저 인사를 건넨 것은 그였다. 나도 답례를 했고 그 후 그와는 운동을 하다 눈이 마주치면 가볍게 인사를 하곤 했다. 명함을 주고받지도, 통성명을 하지도 않았으며 그저 어림짐작으로 나이가 비슷할 거라고만 생각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결혼 준비를 하고 있는데 여자 친구와 의견이 맞지 않아 고민이라고 했다. 친하지 않은 사이에선 꺼내기 힘든 말이라 생각되었기에 조금은 당황스러웠다. 하지만 난 그와 그의 고민에 대해 이야기를 했고, 그는 얘기를 하니 마음이 후련하다고 했다. 사실 그가 자신의 고민을 얘기했을 때, 고민의 내용보단 그의 고민을 나에게 말했다는 사실이 의외였다. 연기가 자욱하게 피어오르고 지글지글 고기가 구워지는 술집에서 잔을 부딪혀가며 형님 동생 혹은 친구 하자며 의기투합 한 것도 아니었는데.
그 후 그와는 운동을 하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곤 했다. 직장생활, 여행, 결혼, 그리고 나이를 먹을수록 포기할 것들이 쌓여가는 것에 대한 푸념 같은 것들로.
대부분 그와의 대화는 차를 마시거나 술을 마시며 하는 긴 대화가 아닌 잠깐 동안의 대화였다. 하지만 그와의 대화는 늘 정중하고 진지했다. 왠지 튼실한 알맹이가 있는 속이 꽉 찬 과일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비슷한 또래 일거라는 짐작에서 오는 반가움으로 친근하다는 생각이 들었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서로가 존댓말을 하며 대화를 나누었기에 더욱 그런 생각이 들었 던 것 같다.
이후에도 우리는 서로의 신상에 대해선 궁금해하지 않았다. 어찌 보면 꼭 알아야 할 만큼 중요한 것이 아니었는지도 모른다. 그저 비슷한 시대에 태어나 동시대를 살아왔을 것이라는 추측 만으로 서로의 고민과 살아가는 이야기를 할 뿐이었다. 게다가 존댓말로 오고 가는 대화 속에서 나는 그의 말을 신뢰할 수 있었고 그도 똑같았을 것이다. 때론 적당한 거리와 상대를 존중해주는 말이 오랫동안 지속될 수 있는 관계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을 느끼며.
누군가와의 대화에서 마음에 담을 수 있는 이야기를 나눈다는 것은 참 행복한 일이다. 어느 대화든 상대와 같은 공감대가 있다면 그것만으로 대화의 깊이는 진지하고 깊어질 수 있다. 게다가 적당한 거리에서 서로를 존대해 주는 말은 양쪽 모두에게 신뢰감을 준다. 말을 하는 사람도 말을 받아들이는 사람도 모두가 무례를 범할 순간이 적어지는 것이다.
지금도 나는 그의 이름을 모른다. 물론 그도 마찬가지이다. 앞으로도 그의 이름은 크게 중요하지 않을 것 같다. 다만 서로를 존중해 줄 수 있는 대화만 있으면 된다. 그러기 위해서는 어느 상황에서건 존댓말은 상대를 존중해 줄 수 있는 좋은 방법이다. 그것은 부서 회식에서 선배 사원과 후배 사원이 취기에 반말을 섞어가며 앞으로는 형 동생 하자며 의기투합했지만, 다음날 어제의 맹세는 온데간데 사라지고 어색해하며 다시 원래의 관계로 돌아갔던 상황보단 낫겠다는 생각이다. 반말을 섞어 친밀한 듯했지만 진정성이 없었기에 빈말이 되어 버린 것이다. 되려 그 보단 처음 본 사이이지만 한적한 공원을 산책하던 노인과 청년이 활짝 핀 탐스러운 꽃을 보며 존댓말로 꽃에 대해 이야기하는 모습이 반말의 허세보단 더 진지하고 아름다울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