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라는 울타리를 벗어나기 위해선
인복이 많아서 인지 지금까지의 직장 생활 중 대부분의 상사는 합리적이고 부하 직원들의 마음을 잘 헤아려 주는 상사들이었다. 하지만 간혹 반대의 경우도 있었으니 그들은 히스테리라 생각될 만큼 고집을 부리며 자신의 결정을 무조건 따르라 하던 상사들이었다. 그들은 나이와 직급이 오를수록 점점 자신만의 세상에 갇혀 갔고 넓게 주변을 바라보던 시선은 온 데 간데 없이 사라진채 고집만이 그들의 신념이 되어가고 있었다. 변해가는 그들을 보며 생각했다. 훗날 그들과 똑같은 위치, 똑같은 상황에 놓이게 된다 해도 나는 절대로 그러지 말아야 하겠다고.
그랬던 내가 이상하다. 언젠가부터 나도 모르게 ‘예전엔’이라는 말을 붙이는 때가 많아졌기 때문이다. 어느 날 회의에서 마주한 팀원들의 눈빛은 신입사원 시절 몇몇 상사들을 보며 ‘난 나중에 저러지 말아야지’ 하며 바라보던 나의 눈빛 같았다. 그 눈빛들과 마주치는 순간 당황스럽기도 했지만 난 절대로 그러지 않을 거라 확신했었기에 왠지 섭섭한 마음도 들었다. 예전 어느 회사에 재직하다 그 회사를 인수했던 선배의 말처럼.
“정말 당황스럽더라. 내 마음은 그렇지 않은데. 전에 함께 일할 땐 형 동생 할 만큼 친했던 사람들이 내가 회사를 인수하고 사장이 되니까 어느 날부턴가 나를 바라보는 시선이 틀려진 거야. 난 변함없이 형 같은 마음 그대로인데, 농담을 건네도 어려워하고 슬슬 피하더라고. 얼마나 섭섭하던지.”
“형. 혹시 사원들에게 꼰대질 하신 거 아니에요?
직원에서 회사 대표로 위치가 바뀌다 보니 형도 모르게 그럴 수 있잖아요”
“글쎄. 난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데....
내가 그랬던 적이 있는지 생각해 봐야 하겠는걸”
예전의 대화를 돌이켜보며 생각했다. 섭섭한 마음이 들기 이전, 지금의 나는 어떠한지. 어쩌면 예전 선배와의 대화에서 나 스스로가 말했던 것처럼 나 또한 변하고 있었는데 나만 몰랐던 것은 아니었는지.
직급이 올라간다는 것은 지난날의 업적과 능력을 인정받는 것이다. 하지만 그것에 도취되어 그 자리에서 안주하고 머문다면 고인 물에 머물러 있는 것밖에는 될 수가 없다. 만일 내가 예전 상사들 처럼 되어가고 있다면 생각과 사고가 점점 정체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동안 눈치가 없었던 건지 순간 정신이 번쩍 들었다. 사고의 정체를 피하기 위해선 계속해서 나 자신을 발전시켜야 겠다고 생각했다. 나이를 먹고 직책이 바뀌어도 세상을 대하는 공부는 계속되어야 하며, 깊은 소양을 쌓기 위해서 책을 읽고 글도 쓰며 다양한 분야를 공부하고 경험해야 하는 것처럼.
생각해보니 신입사원 때 보다 공부하고 배워야 할 것들이 더 많다는 것이 놀랍기도 했다. 하지만 귀찮고 힘들다는 이유로 발전을 포기한 채, 억지 주장과 고정관념이 가득한 울타리 안에 자신의 인생을 가두어 버리는 것은 너무 슬픈 일이 아닐까? 자신의 원칙만으로 음울한 세상에 갇혀 고집만을 내 세우는 것보단, 넓은 세상, 수많은 사람들의 생각과 수많은 문화의 다양성을 인정하며, 나이와 직급에 관계없이 기꺼이 가르침도 얻는 어른이 더 낳겠다는 생각이다.
나이가 들고 직급이 올라 갈수록 고집으로 무장된 방패만을 내세워서는 안 될 것이다. 그보단 경험에 의해 만들어진 내공으로 성숙하고 합리적인 사고를 해야 할 것이다. 사람들의 생각과 관념, 문화는 다양하고 유연하게 변해 가고 있는데, 나만의 세상에 갇혀 고인 물속에 비친 자신의 얼굴만 바라보고 살아간다면 분명 그것은 불행한 삶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작은 샘에서 솟아난 물이 넓은 세상으로 흘러가기 위해 새로운 물줄기를 만나고 때로는 자신의 힘으로 줄기를 만들어 끊임없이 흘러가는 것처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