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명 꽃은 피었을 것인데, 나는 왜 꽃을 보지 못했을까?
한 밤 병실. 동생을 간호하던 나는 잠시 눈을 붙이려다 잠이 깼다. 옆 침대에 있던 노인 때문이었다. 전날까지도 노인은 회복되는 듯 보였지만 그날 밤은 그렇지 못했다. 밤새 노인은 아파했다. 누군가와 대화하듯 중얼거리며 허공에 손짓을 했다. 선망을 하는 노인의 모습을 보니 조금 무서웠다. 너무 멀어 아득하다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가까이 있다 해도 외면하고 싶었던 무서운 손을 노인이 잡을 것만 같아서였다. 간호사가 노인의 까슬하고 얇은 손목에 주사를 놓고 나서야 노인은 잠이 들 수 있었다. 나는 다시 잠을 청했지만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언제라도 찾아올 것이지만 그때가 언제 인지 몰라 망각할 수밖에 없는 운명의 끝을 생각했다. 누군가를 부르던 노인의 모습이 자꾸 아른거렸다. 선잠을 자듯 아득할 뿐이었다.
다음날 노인은 큰 대학병원으로 간다고 했다. 며칠 되지 않는 짧은 기간이었지만 아프다는 이유와 아픈 이를 돌본다는 이유로 형성된 유대와 그 이유로 인한 염려 때문이었을까? 나는 병실을 떠나는 노인과 보호자를 배웅했다. 노인을 부축했고 구급차가 있는 곳까지 침대를 밀었다. 침대에 실려 허공을 바라보는 노인의 눈은 아이의 눈처럼 맑았고 살아온 날들만큼 두텁게 쌓인 의연함을 의지해 자신의 상황을 받아들이는 듯 보였다. 나는 꼭 좋아질 것이니 걱정하지 마시라 했고 오래오래 사시라는 말을 했다. 노인은 힘없고 느린 말로 고맙다 했고 구급차는 사이렌을 울리며 침대에 실린 노인과 보호자를 싣고 출발했다. 나는 꾸벅 인사를 하곤 떠나가는 구급차의 뒷모습을 보며 손을 들어주었다.
노인이 떠나고 며칠 후 동생은 퇴원을 했다. 집으로 가는 길. 놀라고 다급한 마음으로 응급실에 오던 날 입고 왔던 겨울 옷은 나의 체온을 충실히 옷 안에 가두고 있었다. 덥고 답답했다. 해마다 일월이 되면 가장 먼저 봄을 생각했고 그래서 빨리 겨울을 보내고 싶었다. 두툼한 외투를 더는 입고 싶지 않았고, 눈 쌓인 거리를 거닐 때면 경직된 몸으로 온몸에 힘을 주며 미끄러지지 않으려 안간힘을 쓰는 것이 싫었다. 차창밖을 보았다. 거리엔 더 이상 눈이 없었다. 두툼한 옷을 입은 사람도 없었다. 세상은 이미 봄으로 가득했다.
동생이 퇴원하던 날 봄이 왔다는 것을 알았다. 가장 먼저 꽃을 찾았다. 그런데 꽃이 보이지 않았다. 봄이면 집 앞 횡단보도에 서서 파란 불을 기다리는 사람들에게 하얀 꽃 비를 내려주던 나무에는 푸른 잎새들이 번져 가고 있었다. 당장이라도 사라질 것 같은 누진 팝콘 같은 몇 안 되는 꽃들만이 만발하게 피어올랐던 지난날들을 그리워하고 있었다. 무언가를 애타게 기다린다는 것은 참 마음 설레는 일인데 그 설렘을 맞이하지 못하다니. 해를 넘겨 쓸모 없어진 달력 사이에 섞여 누구도 모르게 버려진 오늘이 있는 달력처럼 나도 모르게 봄을 잃어버린 것만 같았다. 한 계절이 커다란 덩어리로 듬성 빠져나간 것 같은 서운함에 괜히 꽃이 지는 나무가 원망스러웠다. 하지만 나무가 무슨 잘못이 있을까. 항상 한 자리에서 모든 계절을 지내며 자신의 소임을 다했을 뿐인데.
분명 꽃은 피었을 것인데 나는 왜 꽃을 보지 못했을까? 그 물음 뒤에 노인이 생각났다. 노인이 떠나던 날 병원 마당과 도로가에는 벚꽃이 목련이 하얗고 소담 소담하게 피었을 것이다. 하지만 병실에서 창 밖을 보았을 때도, 잠시 병원 밖을 나왔을 때도, 나는 꽃을 보지 못했다. 대신 깜깜한 밤 헛손질하며 허공을 맴돌던 노인의 시선처럼, 몰랐던 것도 알 수 없었던 것도 아니었지만, 너무 막연하고 무서워 생각하고 싶지 않았던 운명을 생각했던 것 같다. 그리고 그 운명의 끝에는 노인이 주춤거리며 서 있었다.
눈 앞에 두고도 힘에 부쳐 어쩌지 못할 때가 있다. 손가락 한 마디만큼만 뻗으면 잡을 수 있을 것 같은데 도저히 닿을 수가 없을 때가 있다. 그날 밤 노인은 살아온 날들의 백만분의 일만큼 힘이 모자라 운명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나는 노인에게 운명의 끝을 밀어낼 아주 작은 힘이라도 주고 싶었다. 가족도 피붙이도 동료도 아닌 생면부지의 노인이었지만 삶은 아름답다는 것을 증명해 보이고 싶었다. 자연의 순리로 만들어진 세상이 아름답다는 것을 노인도 알고 있었을 것이기에 그 증명은 오직 봄 만이 가능했다.
하얀 침대에 실린 노인을 배웅하던 날. 나는 내가 그토록 보고 싶어 했던 봄 꽃을 노인에게 보내 주었다. 노인은 병원 마당에 핀 하얀 목련을 보았을 것이다. 노인을 실은 구급차는 벚꽃들이 휘드러진 도로를 달렸을 것이다. 너무 만발해 하늘마저 하얗게 만들어 멈추지 않고서는 안될 만큼 아름다운 봄꽃이 있는, 그래서 오래오래 머무르고 싶고 머물러야 할 세상을 향해 달렸을 것이다. 이봄. 그렇게 난 노인에게 아름다운 봄꽃을 보냈다. 부디 내가 바라는 작은 힘이 닿기를 바라며, 하얀 봄을 보내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