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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llein Dec 26. 2018

십이월의 뒤늦은 안부

12월의 우리. 잘 지내시나요?

마른 겨울 찬 공기 속으로 퍼지는 연기. 잔뜩 움츠린 어깨. 머리가 희끗한 부장. 차장, 과장 그리고 갓 입사한 신입사원. 그들은 불편한 시선들이 모아진 구석에서 옹기종기 모여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깊게 빨아 뱉어져 하늘로 사라지는 연기를 바라보는 그들. 그 순간 그들은 이십 년 내공의 부장도, 입사가 일 년 남짓된 사원도 아니었다. 그저 한대의 담배에 저마다의 애환을 날려 보내는 사람들 일 뿐. 차가운 허공으로 십이월을 보내는 사람들일 뿐.


일 년 전 십이월. 나의 글에 대해 생각했었다. 감정이 없었다. 보았던 사실만 있었다. 정보를 찾고 인용을 하고 실험을 하여 얻은 결과를 정리한 논문 같았다. 지루했다. 내가 쓰고 싶은 글이 어떤 글인지 생각했다. 나의 생각 나의 느낌 나의 감정을 써야겠다고 생각했다. 음악이 흐르는 카페를 찾았다. 커피 향을 맡으며 글을 쓰면 뭔가 잘 써질 것 같았다. 그러나 집중이 되지 않았다. 당연히 마음도 정리되지 않았다. 세상을 쫓다 세상에 쫓기게 된 사람 같았다. 일 년 후 십이월. 새벽 별을 보며 집을 나섰다. 의 치열함이 가득했던 사무실은 차분하고 서늘한 공기가 가득했다. 스탠드를 켜고 푸르스름한 아침이 올 때까지 글을 썼다. 원래 나는 고요를 좋아했던 것 같다. 조금씩 나의 마음을 알 것 같았다.


누군가를 만난다는 것은 대단한 일이다. 수많은 중 하루가 선택되고 상대를 생각하며 만남을 준비한다는 것은 상대를 위해 내 마음을 쏟는 유일한 시간이기 때문이다. 십이월 어느 주말. 도시는 텅 비어 을씨년스러웠다. 하지만 그곳에도 따스한 빛이 있었다. 환한 등이 켜진 찻집에서 두 잔의 커피를 사이에 두고 살아가는 이야기를 했다. 상대의 삶이 나의 삶 같았고, 나의 삶이 상대의 삶 같았다. 넓은 세상 무수한 사람들이 무수한 생각 무수한 일들을 하며 살아가지만, 따스한 방안에 뉘어진 피곤이 가득한 몸들의 삶은 같았다. 알고 보면 우리의 삶은, 모두 똑같다.


십이월의 밤. TV 채널을 돌리다 죽음을 보았다. 어느 아이의 엄마, 어느 엄마의 딸, 어느 남자의 아내. 그리고 아름다운 여자였던 그녀. 눈물이 났다. 슬픈 광경을 보아도 눈물을 흘리지 않았던 나였다. 그러나 그녀의 죽음 앞에선 참을 틈도 맺힐 새도 없이 주르륵 눈물이 흘렀다. 가슴이 메였다. 떠난 사람은 말이 없었고 사람들은 슬퍼했다. 살아있는 사람들이 흘리는 눈물을 보며 생각했다. 슬픔을 느끼는 순간 우리는 더욱 살아있음을 느낄지도 모른다고. 걱정이 되었다. 슬픔이 떠나지 않으면 어떡하나 싶어서였다. 나와는 상관없는 그녀라는 이유를 들어 잊어야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생과 사의 경계에 있던 그녀의 모습, 자신의 아이들을 바라보던 그녀의 슬픈 눈이 자꾸 생각났다. 십이월의 바람이 불었다. 참고 참다 맺힌 커다란 눈물 같았다.


12월. 어깨를 움츠린 채 종종걸음을 걷는 십이월. 파고드는 바람을 막으려 목도리를 감았어도 허전한 마음은 어쩔 수 없는 십이월. 이룬 것보단 이루지 못한 것이 염치없어 모든 걸 지우고 싶어 빨리 보내고 싶은 십이월. 언젠간 지나야 할 것이고 새로운 해를 맞이해야 한다는 운명을 핑계로 마음에서 멀어지는 십이월. 매일매일 똑같은 날에 1부터 12까지 숫자를 붙여 살아가는 것일 뿐인데. 십이월은 측은하고 일월은 얄밉다.

십이월에 뒤늦은 안부를 물었다. 잘 지내냐 물으니 잘 지낸다고 했다. 나에게도 안부를 물어보기에 그냥 사는 게 다 그렇지 하며 답했다. 수많은 일이 있었고 수많은 생각이 들었고 수많은 감정 속에서 헤매던 나였다. 하지만 나는 십이월에게 이야기하지 않았다. 마지막이 되어버릴 오늘을 매일매일 살았어도 마지막이란 것을 알지 못했던 것을 십이월이 되어서야, 그것도 얼마 남지 않은 십이월이 되어서야 알게 되었다는 것이 미안했다. 그러나 십이월은 늦게 라도 안부를 묻고 답하니 그것이면 된 것이라고 했다. 언제 밥 한번 먹자며 무더운 여름날 했던 누군가의 안부보다는 낫다고 했다. 그러고는 남아 있는 짐이 있으면 자신의 어깨에 올려놓으라고 했다. 미안해하지 않아도 된다고. 그것이 십이월, 자신의 운명이라고.



모두 잘 지내시나요? 십이월이 가고 있습니다. 아팠지만 아픈 내색 할 새도 없이, 쉬고 싶었지만 쉴 새도 없이. 슬퍼도 기뻐도 이불 안으로 지친 몸을 묻고 나서야 울고 웃었던 날들. 세상은 채찍질했고 우리는 모든 날을 쉼 없이 달려왔습니다. 언제까지 달려야 할지 모르면서요. 하지만, 십이월은 용감한 전장의 전사처럼 우리들의 지난날을 자신에게 맡기라 합니다. 그러고는 홀가분한 마음으로 새로운 문을 두드리라 하네요. 잘 지내라는 인사도 함께. 그런 십이월에게 미안하고 염치가 없어 고개를 들 수 없습니다. 하지만 자신이 십이월인 이유는 우리들이 새로운 일월의 문을 가볍게 두드리게 하기 위해서라 합니다. 미안한 마음을 거둘 수 없습니다.


이런 마음이고 보니 일월이 더욱 얄밉습니다. 하지만 시간은 흐르고 해가 바뀌고 새로운 문은 열릴 것입니다. 어쩌면 유명한 식당의 음식을 맛보기 위해 새벽부터 줄을 서는 것처럼 누군가는 이미 일월의 문 앞에서 줄을 서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럴 필요는 없습니다. 문을 통과하기 위한 대기표는 없으니까요. 물론 사전 판매도 없습니다. 세상의 시작은 늘 공평 하니까요.

새로운 문은 밤의 장막을 지나 새벽이 되어 다가오는 여명의 힘으로 열립니다. 우리는 어디서든 그 시간을 맞이합니다. 문이 열리면 그 너머의 날들에게 가볍게 인사를 하고 차분히 새 날을 맞이하면 됩니다. 새로운 문이 열리니 큰 꿈도 꾸게 됩니다. 하지만 커다란 꿈을 이루기 위해선 지치고 힘들 때도 있습니다. 그럴 땐 이루기 쉬운 작은 꿈도 있습니다. 꽃 보며 웃기. 퇴근길 한 정거장 전에 내려 집에 걸어오기. 허공 보며 좋아하는 노래 웅얼거리기. 졸린 오후 두 시에 크게 하품하기. 엄마, 아빠 꼭 안아드리기. 사랑하는 사람에게 손 편지 쓰기. 아이와 함께 우리 동네 산책하기. 비 오는 날 모르는 사람 우산 씌워주기.


내년에는, 내년에도. 우리 모두 꿈을 이루었으면 좋겠습니다. 지치고 힘들 때 웃게 해 줄 소소한 꿈도 잃어버리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큰 꿈이 버거울 때면 작은 기쁨들을 모아 행복했으면 좋겠습니다. 작은 꿈을 이루며 매일매일 누리는 행복도 좋으니까요. 소소한 행복들이 모아지면 큰 꿈을 향해 가는 걸음도 가벼워질 테니까요. 내년의 십이월에게는 미안해하지 않도록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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