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가 보이는 벤치에는 늦은 가을 냄새가 가득했다. 바람에 머리카락이 눈을 가리기도 했고 하늘 위로 젖혀지기도 했다. 나는 헝클어진 머리를 정리하지 않았다. 흩날리고 떨어지는 것이 가을이기 때문이다. 숨을 크게 들이쉬었다. 폐 안으로 차가운 공기가들어왔다. 감정이 몰려왔다. 좋지만 떠나야 하기에 슬프고, 떠나면 보고 싶어 곁을 떠 날수 없는정의할 수 없고 단정 지을 수 없는 감정이었다.
먼길을가야했지만나는그곳을떠나지못했다. 갈대때문이었다. 누구도찾아오지않을것같은황량한들판에있는갈대는쓸쓸해보였다. 갈대들이사라질끝은차가운겨울이겠지. 따뜻함도생기도얻을수없는. 그러나갈대들은묵묵히생을보내고있었다. 바람이불면모두가하나인것처럼똑같이몸을뉘었다. 그러나자세히보면갈대들은 각자 삶을 열심히 살아가는 세상 사람들처럼 저마다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온기가 가득한 붕어빵이 든 봉투를 품에 안고 따스함이 사라질까 빠른 걸음으로 집으로 향하는 가장처럼, 검은 밤빛이 꺼지지 않은 사무실에서 골몰히 일하는 누군가처럼.갈대들 속에는 우리 가족이 있고 동료가 있고 친구가 있었다. 갈대들은끝이 땅에 닿을 만큼 휘청거렸다. 그렇지만 결코 꺾이지 않았다. 시련을 이겨내며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어 가는 사람들처럼, 갈대는 강인하고 아름답게 가을을 만들고 있었다.
나는벤치에서 쉽사리 자리를 뜨지 못했다. 가을바람을 맞으며 벌판에서 어우러지는 갈대들은 나에게 힘이 되어주어 소중했다. 가을 우체국 앞에서 우연한 생각에 빠졌다는 노래를 오래오래 들었다. 노래가 몇 번반복되었는지 알 수 없었다. 바람과 바다와 갈대를 보기 위해 다음 가을에도 와야 하겠다고 생각했다.
비가 내렸다. 늦은 여름을 보내는 비가 멈춘 세상은 깨끗했다. 새 눈을 뜨고 하늘을 보았다. 티끌 없이 맑은 하늘에 새로운 계절의 색이 한없이 넓게 펼쳐 있었다. 비가 그치고 나면 가까워질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반가워 할 수만은 없었다. 보고 싶었지만 천천히 오기를 바랐다. 헤어질 것이 두려워서였다. 그러나 더는 외면할 수 없었다. 떠나보낼 것을 각오하고 맞이해야 한다. 늘 그리워하던 계절가을을.
가을엔 핑계를 대어야 한다. 현실이 내 앞을 막고당장 해야 할 일을 들먹이며 삶을 재촉해도 어수룩한 이유를 대어서라도 떠나겠다고 이야기해야 한다. 내가 속이 꽉 찬 어른인지는 알 수없다. 삶이 내게 철부지 같다며 무어라 해도 어쩔 수없다. 가을엔 철없는 아이가 되어 떠나야 한다. 품에 안기기도 전에 떠나야 할 것을 슬퍼할 만큼, 가을이 아름답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