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의 난처함을 거든다는 것은 생각보다 힘든 일이다. 잠시나마 그 사람 삶에 내가 포함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통화보다 문자 메시지가 익숙한 요즘처럼 마주하고 이야기하는 것을 부담스러워하는 세상에서 상대 의사를 모른 채 타인의 삶에 들어간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용기를 내어 도움을 주고자 하더라도 상대가 거부하거나 뜻밖의 오해를 한다면 난처함과 민망함이남는다. 그래서인지 모르는 누군가를 도운 적이 있는지 생각해 보면 늘 망설였던 것 같다. 숫기 없는 사람처럼 머뭇거리다 백분의 일이 아닌 나와는상관없을 백분의 구십구를 선택하곤 했다.
그녀는 다리가 불편해 보였다. 사람들이 세 걸음을 걸을 때그녀는 한 걸음을 걸었다. 눌러쓴 모자 안으로 얼굴이 보였다. 입을 꼭 다물고 있었지만 찡그리거나 고통스러워하는 표정이 아니었다. 그렇다고 굳건하거나확고한 신념 가득한 모습도 아니었다. 그보단 힘이 들어가지 않은 묵묵하고 담백한 침착함이 느껴졌다.
사람들은그녀를빠르게지나쳐갔다. 목적지까지도착하는 것은 정상인사람도힘든 일이었다.그녀가마지막까지도착할수있을지걱정되었다.그녀를도와주고싶었다. 그러나등을밀어주거나가방을대신메어주겠다는 말을 할 수 없었다. 힘을 내라는 말도 할 수 없었다. '별일없지?'라는물음에별일이있어도별일없다고답해야할것같은허무한안부를묻는것같아서였다.
홀로 길을 걸었던 적이 있다. 걷는 내내 사람을 볼 수 없었다. 유일하게 보았던 사람이라면 검은흙이 가득한 밭을 일구는 노부부뿐이었다. 등에 맨 배낭이 자갈밭을 뒹구는 것처럼 어깨와 등을 눌러댔다. 외롭다는 생각이 들었다. 누구라도 함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볕이 한낮에 다다르며더욱 힘이 떨어졌다. 그때 등 뒤에서 발자국 소리가 났다. 한 노인이 배낭을 메고 걸어오고 있었다. 반가웠다. 마른침을 삼키며 그 길에서의 첫마디였던 짧은 인사를 건넸다. 노인도 고개 숙여 인사했다. 그러나 그뿐이었다. 노인은 빠르게 나를 앞질러 갔다.
깜깜한밤길을걸을때가장무서운것은사람이라고한다. 그러나나와마주치는사람도나를무서워하기는마찬가지다. 어둠속에서 염려하며 무서워했던 상대가 나를 보고 겁을 먹은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면, 두 사람이 품었던 두려움과 경계의 마음은 사라지고 서로를 의지할 수 있게된다. 마치 어둠속아득한점으로만보이던빛이점점 환해지고 커져 안도하는것처럼.
나의 시야에 계속 노인이 보였던 것처럼,그녀 주위를 맴돌 듯 빨리 걷기도 했다가 늦게 걷기도 했다. 걸음이 느려도 그녀가 다다를 목적지로 가는 길에 또 다른 누군가가 있다는 것을 알리고 싶었다. 느림의 이유는저마다의 사정과 사연이 있기 때문이다. 느림은 결과에 대한 잣대가 될 수 없다. 나는 그녀에게 그녀의 느림은 느림이 아니란 것을 알려주고 싶었다. 앞서가는 사람들 때문에 느낄 수 있는 박탈감, 걱정, 상실감을 없애 주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