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을 걸었다. 입에서 작은 입자들이 서걱거렸다. 입안에 물을 머금다뱉어냈다. 물이떨어진자리에마른먼지가 피어올랐다. 잠시후건조하던세상이낮게가라앉기 시작했다. 빗방울이떨어졌다. 작은움직임에도피어오르던대지의흙들이선명한갈색으로 변하며냄새를피웠다. 냄새는 평소에는자주 맡아보지못했지만 낯설지않았다.영화의한장면이떠올랐다. 끝이보이지않는 사막위를달리는자동차와그뒤를따라이는뽀얀먼지. 그장면이왜생각났는지알것같았다. 너무 오래되어존재했는지조차 기억할수없는것. 그것이돌아온것같았다.
오래전 나는일에묻혀살았었다. 매일이어지는야근과주말출근. 그덕에몸과마음이황폐해졌다. 쉬고 싶었다. 토요일을앞두고급한 일이 있어도 야근도,주말출근도하지않겠다고결심했다. 토요일아침.모닝콜이울렸지만어색함을 이겨내고꼼짝도 하지 않았다. 눈을떴을땐오전의끝이었다. 많지도적지도않은아침을먹고무엇을할지생각했다. 회사에 대한 일 외에는 떠오르는 것이 없었다.시간이있어도무엇을해야할지모르는현실이슬펐다.
리모컨을찾아 TV를켰다. 차 한 대가사람보다큰선인장이 있는넓고마른땅에서굉음을내며달리고있었다. 차의목적지가어디인지누가타고있는지알수없었다.먼지를일으키며달리고만있을 뿐.그때어디선가 냄새가 났다. 한뼘만큼 열려있는베란다창문틈으로들어온냄새였다. 밖에는비가내리고있었다. 메마른회색의 겨울땅이비에젖어 선명한색으로변하고있었다. 냄새는대지가비에 젖으며피어오르는흙냄새였다. 반가운마음이들었다. 돌아오리라기약할수없었던그리운것이돌아온것같았다.
길을 걷다 영화 속 먼지를 일으키는 장면이 생각났던 이유는 냄새 때문이었다. 냄새는 훈훈한 커피 향이나 갓 구운 빵 냄새처럼 멋진 냄새가 아니었다. 그보다는대지의 원초적인 냄새였다. 그 냄새 때문에 오래전 어느 겨울에 보았던 영화의 한 장면과 냄새가 기억났다. 냄새는춥고 건조한 땅에 비가 내렸을 때 나는 생명의 냄새였다. 냄새는 세상을 깨우고 있었다. 나는 냄새를 맡으며 생기를 느꼈다. 그리고냄새는 그리움으로 간직되었다.
실체가없어도보고싶은것이있다. 보고싶을만큼사랑한것도, 잊지못할추억을남긴것도아닌데말이다. 모든상황이딱하고 맞아떨어져야할것같고, 공교롭다해야할만큼우연이필연이되어야만만날것같은. 그래서마주하면더욱애틋하고반가워눈물나는것. 그것은그리움이다. 그리움은무어라 하며콕집어말할수있는것이아니다. 어딘가에있어일부러찾아갈수도없다.그리움은 본능에서시작되기때문이다. 길을걷다메마른 땅에 비가 내리고 젖은흙냄새를맡는순간나는그순간을본능적으로 저장했다. 누군가에게는사소하지만 나에게는 소중했던 감정을시간이지나서도기억하게해줄끈을간직하고싶었던것이다. 어느누구도쉽지않은삶을살아내기위해내안의본능에잠식시켜그리움으로간직한것이다.
비가 그치고 있었다. 더 이상 서걱거리던 먼지도 일지 않았다. 피어오르던흙냄새도사라졌다. 그러나냄새는이전보다더깊은그리움으로나의기억에저장되었다. 그날나는그리워야할것을또하나간직했다. 언제어디서만나게될지모를. 그러나꼭한번쯤은만나야할그리움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