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키마우스가그려진담요를두르고있는커플. 물고기 비늘처럼 반짝이는은빛돗자리위에앉아있는가족. 후드티를 입고 어깨를잔뜩움츠린채양주머니에손을넣은남자. 어스름한늦은가을저녁. 바다가보이는광장작은무대앞에는사람들이모여있었다. 무대에서는허스키한목소리의여가수가공연을 하고 있었다. 그녀는 한곡이 끝나면 이야기를 했고, 이야기가 끝나면 다음 노래를 했다. 노래가 이어질수록밤은깊어졌고공기는쌀쌀해지고 있었다. 그탓이었는지그녀는손이굳어기타를 치다 몇번불안정한 음을 내고는 미안해하는 하는 표정을 짓곤 했다.
그녀의마지막노래는 ‘행복한여행자’라는노래였다. 시력이좋은두눈과튼튼한두다리로언제든그어디라도떠날수있다는흥겨운노래였다. 추워지는 날씨에 그녀는빠른템포에호응하도록사람들을 향해 몸짓을유도했다. 그러나 사람들은더욱 몸을 웅크린 채노래가끝나고그녀가마지막인사를하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노래는 점점 끝을 향했다. 사람들도가져왔던 물건을 챙기며 하나둘자리를정리했다. 그런데그때한남자아이가춤을추기시작했다. 아이몸짓은자연스럽고진지했다. 아이돌가수처럼눈을감고서도출수있을만큼익숙하고잘짜인동작은아니었다. 그러나누구도범접할수없을진지함과열정이있었다. 노래하던그녀가아이에게무대앞으로나오라고 손짓을 했다.자리를 정리하던 관객들도 박수를치며아이를 향해 환호했다. 마무리되던공연은무르익는축제처럼흥이나기시작했다. 얼었던손이녹은듯그녀도힘차게기타를쳤다. 끝나야할노래도계속되었다. 춤추는아이도노래하는그녀도그 둘을 바라보는 사람들도노래속여행자처럼행복해했다. 즐거워하는사람들을시기하듯검은바다에서바람이불어와집요하게목을파고들었다. 그러나춥지않았다. 흥겨움만있을뿐이었다.
음악이 여행에서 효과를 발휘하는 순간은 여행의 주된 목적과 맞닿는 순간이 아닌 평범한 행위들이 일어나는 순간이다. 목적지를 찾지 못해 거리를 배회하거나, 무언가를 기다리거나, 차창 밖으로 특이할 것도 없는 풍경이 끊임없이 보일 때거나, 딱딱한 아스팔트의 검은 열기를 피해 차가운 커피 한잔을 마시는 순간처럼 특별하지 않은 시간들을 보낼 때이다. 그 평범하고 지루하기까지 한 순간, 우리는 음악을 들으며 많은 것들을 목격한다. 힘에 부치지만 사랑하는 두 아이들을 양손에 잡고 버스를 기다리는 엄마, 고동 껍질 같은 땅에서 밭을 매는 농부, 검은 타르 덩어리로 덮인 아스팔트를 뚫고 핀 노란 꽃, 메뉴는 무엇인지 테이크아웃은 할 것 인지 영수증은 필요한지를 수도 없이 물으면서도 웃음을 잃지 않는 카페 직원의 밝은 얼굴. 그 모습들을 보는 순간 음악은 배경이 되어 장면을 각인시킨다. 굳이 여행의 목적이 아니었기에 어느 곳의 상징적인 모습이라고 말하기도 뭣한 장면들이 음악을 통해 극적으로 마음에 남는 것이다.
밤 11시가 되어도 대낮처럼 밝은 백야가 펼쳐지는 아이슬란드를 여행할 때였다. 거대한 폭포 몇 개와 화산재가 덮인 서늘한 푸른빛이 나는 빙하를 보며 자연의 위대함을 느끼는 것은불과 한 시간도 되지 않았다. 마취가 풀리듯 경외감이 가시자 아쿠레이리에서 숙소가 있는 레이캬비크로 돌아오는 길이 걱정되기 시작했다. 불의 나라 얼음의 나라라고 불릴 만큼 신비로운 나라지만, 북쪽 끝에서 남쪽 끝으로 되돌아가는 길에는 기나긴 지루함이 기다리고 있었다.
음악은여행의기억을떠올리게하는강력한촉매이다. 음악과함께했던여행이었다면의도적이지 않아도여행의기억은언제어디서든떠오를수있다. 멜로디를듣는순간여행 중 보고느꼈던것들과감정들이파노라마처럼흐른다.매일지나는거리, 카페, 버스안, 야근을하고집으로돌아가는차안에서도예고 없이나타나여행을상기시킨다. 어쩌면 내일 아침, 꼼짝도 할 수 없이 사람이 가득한 지하철 안 누군가의 휴대폰에서마이러브나붉은노을멜로디가울린다면나는옴짝달싹 못할 틈에서땀을뻘뻘흘리면서도피식하고웃으며행복해할것이다. 음악은 언제어디서든예고 없이 여행을 상기시킨다. 음악은나만이소유할수있는것도, 영원히사라질수도없는것이기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