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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llein Apr 07. 2019

음악은 여행의 장면을 색인한다

음악은 여행을 떠올리게 하는 강력한 촉매이다.

미키마우스가 그려진 담요를 두르고 있는 커플. 고기 비늘처럼 반짝 은빛 돗자리 위에 앉아 있는 가족. 드티를 입고 어깨를 잔뜩 움츠린   주머니에 손을  남자. 어스름한 늦은 가을 저녁. 바다가 보이는 광장 작은 무대 앞에는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무대에서는 허스키한 목소리 여가수가 공연을 하고 있었다. 그녀는 한곡이 끝나면 이야기를 했고, 이야기가 끝나면 다음 노래를 했다. 노래가 이어질수록 밤은 깊어졌고 공기는 쌀쌀지고 있었.  탓이었는지 그녀는 손이 굳어 기타를 치다   불안정한 음을 내고는 미안해하는 하는 표정을 짓곤 했다.


그녀의 마지막 노래는 ‘행복한 여행자라는 노래였다. 시력이 좋은  눈과 튼튼한  다리로 언제든  어디라도 떠날  있다는 흥겨운 노래였다. 추워지는 날씨에 그녀는 빠른 템포에 호응하도록 사람들을 향해 몸짓을 유도했다. 러나 사람들은 웅크린 채 노래가 끝나 그녀가 마지막 인사를 기만을 기다리 있었다. 래는 점점 끝을 향했다. 사람들도 져왔던 물건을 챙기며 하나둘 자리를 정리. 그런데 그때  남자아이가 춤을 추기 시작했다. 아이 몸짓은 자연스럽고 진지했다. 아이돌 가수처럼 눈을 감고서도   있을 만큼 익숙하고  짜인 동작은 아니었다. 그러나 누구도 범접할  없을 진지함과 열정이 있었다. 노래하던 그녀가 아이에게 무대 앞으로 나오라고 손짓을 했다. 자리를 정리하던 관객들박수를 치며 아이를 향해  환호했다. 마무리되던 공연은 무르익는 축제처럼 흥이 나기 시작했다. 얼었던 손이 녹은  그녀도 힘차게 기타를 쳤다. 나야  노래 계속되었. 춤추는 아이도 노래하는 그녀도 그 둘을 바라보는 사람들도 노래  여행자처럼 행복해했다. 즐거워하는 사람들을 시기하듯 검은 바다에서 바람이 불어와 집요하게 목을 파고들었다. 그러나 춥지 않았다. 흥겨움만 있을 뿐이었다.


음악이 여행에서 효과를 발휘하는 순간은 여행의 주된 목적과 맞닿는 순간이 아닌 평범한 행위들이 일어나는 순간이다. 목적지를 찾지 못해 거리를 배회하거나, 무언가를 기다리거나, 차창 밖으로 특이할 것도 없는 풍경이 끊임없이 보일 때나,  딱딱한 아스팔트의 검은 열기를 피해 차가운 커피 한잔을 마시는 순간처럼 특별하지 않은 시간들을 보낼 때이다. 그 평범하고 지루하기까지 한 순간, 우리는 음악을 들으며 많은 것들을 목격한다. 힘에 부치지만 사랑하는 두 아이들을 양손 잡고 버스를 기다리는 엄마, 고동 껍질 같은 에서 밭을 매는 농부, 검은 타르 덩어리로 덮인 아스팔트를 뚫고 핀 노란 꽃, 메뉴는 무엇인지 테이크아웃은 할 것 인지 영수증은 필요한지를 수도 없이 물으면서도 웃음을 잃지 않는 카페 직원의 밝은 얼굴. 그 모습들을 보는 순간 음악은 배경이 되어 장면을 각인시킨다. 굳이 여행의 목적이 아니었기에 어느 곳의 상징적인 모습이라고 말하기도 뭣한 장면들이 음악을 통해 극적으로 마음에 남는 것이다.


밤 11시가 되어도 대낮처럼 밝은 백야가 펼쳐지는 아이슬란드를 여행할 때였다. 거대한 폭포 몇 개와 화산재가 덮인 서늘한 푸른빛이 나는 빙하를 보며 자연의 위대함을 느끼는 것은 불과 한 시간도 되지 않았다. 마취가 풀리듯 경외감이 가시자 아쿠레이리에서 숙소가 있는 레이캬비크로 돌아오는 길이 걱정되기 시작했다. 불의 나라 얼음의 나라라고 불릴 만큼 신비로운 나라지만, 북쪽 끝에서 남쪽 끝으로 되돌아가에는 기나긴 지루함이 기다리고 있었다.


숙소까지 가는 동안   있는 일은 이야기를 하는 것이었다. 끝없이 이어진 길을 차로 달리며 동료와 어릴 , 학창 시절, 군대를 지나 현재까지 지나오며 겪었던 일들을 이야기했다. 러나 이야기는 길고  길의 끝을 채우지 못했다. 이야깃거리가 끊기자 유일하게   있었던 것은 음악을 듣는 것이었다. 휴대폰 차 안 블루투스를 연결 음악을 켜자 김광석의 ‘서른 즈음 나오고, 30년을 뛰어넘 60 부부의 노래가 나왔다. 이승철의 '마이 러브' 나왔을  소리를 지르며 따라 했다. 에냐(Enya) ‘May it be’ 장한 아이슬란드 자연과 너무도  어울리는 음악이었다.


우리는 음악을 들으며 영화   장면처럼 장엄한 풍경을 뚫고 차를 몰았다.  12시를 넘을 즈음. 백야가 끝나고 해가 지려는  빨갛게 하늘이 물들기 시작했다. 세상은 온통 붉은빛이었고 급기야는 빨간 하늘에 홀려 어딘지도 모를 곳에 차를 세워 붉은 하늘을 보았다.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사랑한다는 멜로디가 노을을 보는 감정을 부추겼다.  순간 피곤하지 않았, 숙소 돌아가고 싶은 마음도 . 그보 노래 가사처럼 누구에게라도 사랑한다고 외치고 싶었다. 사춘기 처럼 사랑을 하고 싶었고 사랑을 하고 있는  같았다.



음악은 무심코 잊히는, 잊어도 상관없을 여행의 장면들을 색인한다. 소소한 장면에 삽입되어 단순했을 장면을 영화처럼 만들어 낸다. 사람들 모습, 자연 풍경, 시시각각 변하는 하늘, 도시  딱딱한 건물에 의미를 불어넣는다. 규칙도 없고 정해진 시나리오가 있는 것도 아니다. 세계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며 온갖 경험을  여행 전문가가 알려줄  있는 것도 아니다. 까나리와 아메리카노 사이에서 눈치를 보는 복불복 게임처럼 어느 장면에 어느 음악이 선택될지는 누구도   없다. 시간과 공간 속에서 음악만이 흐를 뿐이다.


음악은 여행의 기억을 떠올리게 하는 강력한 촉매이다. 음악과 함께 했던 여행이었다면 의도이지  여행의 기억은 언제 어디서든  오를  있다. 멜로디를 듣는 순간 여행 중 보고 느꼈던 것들과 감정들이 파노라마처럼 른다. 매일 지나는 거리, 카페, 버스 , 야근을 하고 집으로 돌아가는  안에서도 예고 없이 나타나 여행을 상기시. 어쩌면 내일 아침, 꼼짝도 할 수 없이 사람이 가득한 지하철 안 누군가의 휴대폰에서 마이 러브나 붉은 노을 멜로디 울린다면 나는 짝달싹 못할 틈에서 땀을 뻘뻘 흘리면서도 피식하고 웃으며 행복해할 것이다. 음악은 언제 어디서든 예고 없이 여행을 상기시킨다. 음악은 나만이 소유할  있는 것도, 영원히 사라  수도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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