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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llein Feb 26. 2019

여행의 시작과 끝엔 떠남이 있다

여행은 떠남에서 떠남으로 이어진 인생의 축소판이다.

사람들 자리에서 일어나 짐을 챙기기 시작했다. 비행기가 완전히 멈출 때까지 자리에서 기다려 달라는 안내가 다. 그러나 좁은 통로에는 이미 밖으로 나가려 서있는 사람들 빼곡했다. 잠시  비행기 문이 열리자 도를 지나 출구로 가는 통로가 나왔다. 벽과 팬스 사이로  통로 사람들은 걸음을 재촉했다. 앞사람을 따라 통로 중간을 지날즈음 펜스 너머로 람들이 보였다. 그들은 어딘가로 떠나기 위해 비행기를 기다리는 사람들이었다. 대부분은 자에 앉아 무료하게 TV 보거나 이어폰을 귀에 꽂은  스마트폰을 보고 있었다. 들을 보며 내가 그들 속에 없다는 것에 안도했다.  또한 그들처럼 여행이 끝나 떠나야  것이지만 방금 비행기에서 내린 이상 여행을 마치고 떠나야 한다는 사실을 미리 걱정할 필요는 없었다.


첫날은 다음날도 있고 그다음 날도 있어 든든했다. 둘째  아침엔 오늘과 내일이 있으니 괜찮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저녁이 되어 거무스레한 어둠이 몰려 떠나야 한다는 사실이 의식되었다. 다음날은 다른 날들보다 일찍 일어나 계획했던 곳을 여행했다.  일정  너무 지쳐 엇을 어야 할지 고민 없이 숙소 근처 음으로 보이는 식당에 들어. 배가 채워지자 나른. 등만 붙이면 어디서든 잠이   같았다. 그러나 바로 숙소로 가지 않았다. 대신 목적 없이 도시를 배회했다. 다음날 떠나는 것이 아쉬워서였다.


도시는 작았다. 같은 곳을 여러 번  때도 있었고 낯선 곳을 지날 때도 있었다. 시간이 수록 점점 길과 건물 익숙해지기 시작했다. 앳된 남녀 커플이 어느 식당 위치를 물어보았을   도시에 아주 오래 살았던 사람처럼 길을 알려주었다. 거침없이 길을 알려주는 모습에 커플은 완전히 나를 의지하고 신뢰하는  같았다. 안도 설렘이 가득한   다음날이면 떠나야 한다는 사실 서글프게 했다. 떠난다는 것은  슬픈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마음만 먹는 다면 며칠 후라도,  ,  년이 지나서라도 다시   있을 이다. 하지만 미래의 가능성은 위안이 되지 . 떠나왔으니 돌아가기 위해  다시 떠나야 한다는 사실 눈물  만큼 슬퍼할  아닐 것이다. 그러나 싫은  사실이었다.  



목표를 이루고자 하는  일상 원동력이 된다. 하지만  마음이  하루하루의 삶을 신명 나게 하지는 못한다. 매일 아침 거울  나를 보며 나는 누구이며  사는 것일까?라는 생각이 떠오르곤 하지만 일상에 쫓겨 지나쳐 버리기 일쑤이다. 하지만 잡념 같은  물음엔 묵직한 진지함이 담겨 있다. 삶의 이유라는 원초적인 물음이 무의식 중에  오른다는 것은 지루한 일상이라 해도 하루하루가 쌓여 만들어진 생은 결코 가볍지 않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다.  반복되는 일상이지만  안에 있는 현실은 숨도 쉬기 어려울 만큼 치밀하게 우리를 지배한다. 그래서 우리는  지배를 벗어나기 위해 여행을 택한다. 내가 속하지  곳으로 떠남으로써 지배당하지 않는 시간을 보장받는 것이다.


여행은 떠남으로 시작 떠남으로 끝을 맺는다. 두 개의 떠남 중에는 떠남으로써 놓아두어야 할 것이 있고, 돌아가기 위한 떠남으로써 다시 마주해야 할 것이 있다. 모든 것을 놓아두고 떠날 때는 체념과 방치가 불러오는 미안함과 홀가분함이 섞인 묘한 쾌감이 있다. 러나 다시 돌아와 마주 해야 할 순간 두렵고 아쉽다. 여행은 서로 다른 감정이 있는 두 개의 떠남과 떠남 사이에 있다. 그 사이에서 우리는 힘을 얻고 다시 일상으로 떠남으로써 간직해야 할 것들을 얻는다. 그것들은 되도록 이면 행복했던 순간들이어야 다. 그러고 보면 여행은 인생의 축소판 같은 것이다. 누군가 생을 떠나는 순간 다른 어딘가에서는 생명이 태어나 새로운 생의 이야기를 만들어 가는 것처럼. 떠나가고 떠나옴으로써 일생 같은 한 편의 이야기를 만들어 가는 것이다.


숙소로 돌아오 주변 익숙해졌다는 것을 알았다. 낯설지 않은 공기. 어색하지 않은 바람의 리듬. 어디든 시선을 던져도 눈에 익는 풍경. 살아보라면 당장이라도 세간을 꾸려 살아   있을  같은 . 모든  몸과 마음에 배어드려 하니 여행이 끝나고 있었다. 하루를  머물겠냐고 묻는다면 일초의 망설임도 없이 그러겠다고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냉정하다. 잠시라는 단서를 붙이고 떠나 왔기에 회귀하듯 점으로 돌아가야 한다. 아가기  해야 하지만 자꾸만 주위를 두리번거린다. 너무 평범하여 기억의 순위 어져 있던 작은 것들까지 마음에 담고 싶어서였다.



다음날 으로 가며 버스 차창 밖으로 내가 머물던 흔적들을 보았다. 가뿐 숨을 몰아 쉬며 오르던 언덕과 잠시 쉬어 가던 벤치, 숙소로 돌아오기 위해 버스를 기다리던 정류장. 작은 동산을 오르며 무엇을 보았고 어떤 생각을 했으며 정상 머무르며 들었던 내 마음이 떠올랐다. 스가 천히 가기를 바랐다. 그러나 얄밉게도 버스는 쏜살같이 달렸다. 흘러버린 어제, 그제의 시간들처럼. 


공항은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수속을 마치고 비행기와 연결된 게이트 앞 의자에 앉아 음악을 들었다. 떠나오던 날의 나처럼 내 앞의 펜스 너머로 금 비행기에서 내린 사람들이 줄 지어 지나가고 있었다. 설렘이 가득한 표정으로 걸어가는 그들 속에 내가 있다면 공항을 나와 몇 번 버스를 타고 어디로 갈 것이며, 내일 모레는 무엇을 할 것인지를 상상했다. 그러나 상상은 길지 않았다. 다음날부터 해야 할 일들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잠시  비행기 탑승 안내가 들렸다. 방송에서 나오는 목소리는 음날부터 시작될 일상처럼 낮고 일정하며 냉정하고 평범. 안내가 반복될수록 탑승 게이트 앞에는 일상으로 복귀하라는 명령을 따르  사람들  있었. 쉬움과 의무감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마음들이 모인 .    위에 나는 묵직한 삶이 다리고 있 곳으로 떠나기 위해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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