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은 떠남으로 시작해떠남으로 끝을 맺는다. 두 개의 떠남중에는 떠남으로써 놓아두어야 할 것이 있고, 돌아가기 위한 떠남으로써 다시 마주해야 할 것이 있다. 모든 것을 놓아두고 떠날 때는 체념과 방치가 불러오는 미안함과 홀가분함이 섞인 묘한 쾌감이 있다. 그러나 다시 돌아와 마주 해야 할 순간은 두렵고 아쉽다. 여행은 서로 다른 감정이 있는 두 개의 떠남과 떠남 사이에 있다. 그 사이에서 우리는 힘을 얻고 다시 일상으로 떠남으로써 간직해야 할 것들을 얻는다. 그것들은 되도록 이면 행복했던 순간들이어야 한다. 그러고 보면 여행은 인생의 축소판 같은 것이다. 누군가 생을 떠나는 순간 다른 어딘가에서는 생명이 태어나 새로운 생의 이야기를 만들어 가는 것처럼.떠나가고 떠나옴으로써 일생 같은 한 편의 이야기를 만들어 가는 것이다.
다음날공항으로 가며 버스 차창 밖으로내가 머물던 흔적들을 보았다. 가뿐 숨을 몰아 쉬며 오르던 언덕과잠시 쉬어 가던 벤치, 숙소로 돌아오기 위해 버스를 기다리던 정류장. 작은 동산을 오르며 무엇을 보았고 어떤 생각을 했으며 정상에 머무르며 들었던 내 마음이 떠올랐다. 버스가 천천히 가기를 바랐다. 그러나 얄밉게도 버스는쏜살같이 달렸다.흘러가버린 어제, 그제의 시간들처럼.
공항은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수속을 마치고 비행기와 연결된 게이트 앞 의자에 앉아 음악을 들었다. 떠나오던 날의 나처럼 내 앞의 펜스 너머로 방금 비행기에서 내린 사람들이 줄 지어 지나가고 있었다. 설렘이 가득한 표정으로 걸어가는 그들 속에 내가 있다면 공항을 나와 몇 번 버스를 타고 어디로 갈 것이며, 내일과 모레는 무엇을 할 것인지를 상상했다. 그러나 상상은 길지 않았다. 다음날부터 해야 할 일들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잠시후비행기탑승안내가들렸다. 방송에서나오는목소리는다음날부터시작될일상처럼낮고일정하며냉정하고평범했다. 안내가반복될수록탑승게이트앞에는일상으로복귀하라는명령을따르듯사람들이줄을서고 있었다. 아쉬움과의무감이섞인이러지도저러지도못한마음들이모인줄.그긴줄위에나는묵직한삶이기다리고 있는곳으로떠나기위해차례를기다리고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