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마음 자리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Ollein Jul 09. 2019

글이 끝나는 순간은 언제일까?

조바심은 늘 틈을 노린다.

제안서 작성은 힘들다. ‘관계자 외 출입금지’ 경고가 붙은 회의실에 갇혀 밤낮없이 글을 써야 한다. 몸과 마음도 지친다. 과제에 선정되기 위해 단기간 동안 온 정신을 쏟다 보니 몸의 진이 모두 빠진다. 작성이 끝나고 나면 작성했던 사람들 중 몇은 몸살이 나기도 한다.

제안서 팀을 꾸려 작성한다. 팀원은 기술, 사업전략, 예산 등 분야별 담당자로 구성되며, 작성 분량은 보통 수 십에서 수백 페이지이다. 때로는 국방과제처럼 규모가 큰 경우 천 페이지 넘는 본문과 별첨자료들까지 합해져 한 질의 책처럼 되기도 한다. 작성 전 과제 책임자와 팀원들은 작성 스케줄을 세우고 목차와 템플릿을 정한다. 작성이 시작되면 담당자들은 자신이 담당한 분야를 작성한다. 작성이 끝나고 문서가 취합되면 과제 개요와 목표, 연차별 개발 내용, 사업 전략, 예산 등 목차 별 내용을 검토한다. 읽고 고치기를 반복하여 1차 내부 검토가 끝나면 다시 검토를  하는데 이때는 작성에 참여하지 않았던 사람들이 검토한다. 그들 중에는 제안서 내용에 대해 전문 지식을 갖고 있는 사람도 있고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다. 그리고 만약 부서에 신입사원이 있다면 꼭 포함시킨다.

검토가 끝나면 담당자들은 회신을 받다. 결과는 참담하다. 탈자와 오타는 기본이, 애매모호한 내용, 하나의 목표인데도 앞과 뒤에 적힌 내용이 다르거나, 어순이 뒤죽박죽 되어버린 이상한 문장, 잘못된 그림, 표, 단위, 수치 등이 가득하다. 작성자들은 검토 의뢰한 후에도 또다시 검토를 하지만 그리 많은 오류를 잡아내지는 못한다. 반면 작성에 참여하지 않았던 사람들은 많은 오류를 잡아낸다. 그중 신입사원은 가장 많은 양 찾아낸다. 사람들은 아직 직장 때 묻지 않은 맑은 영혼이어서 그렇다고 농담처럼 말하지만, 사실 틀린 말이 아니다.

한 번쯤은 경험해 보았을 것이다. 자신은 완벽하다고 생각했던 글이나 보고서에서 상사나 동료처럼 내가 아닌 다른 누군가가 단 몇 초 만에 오류를 잡아내는 것을. 자신 또한 다른 사람의 문서를 보고는 단박에 오류를 잡아내었던 경험을. 이처럼 자신이 작성한 글의 오류를 잘 찾아내지 못하는 것은 글을 읽는 눈과 내용을 인지하는 머리가 겉 놀아서이다. 반복된 쓰기와 읽기로 익숙해진 각인된 내용 으로 읽느껴야 할 의미보다 앞서 잘못된 문장도 정상것으로 흘려버리는 것이다. 대부분 이 같은 마음 안에는 조급함이 있다. 급한 마음은 객관적인 눈보다 머릿속에 각인된 내용을 앞서게 한다. 읽을수록 틀린 곳이 없어 보이도록 마법을 부는 것이다.



이제는 제안서를 쓰지 않는다. 검토만 하는 사람이 되었다. 그런데도 쓰고 읽고 고치는 일은 계속한다. 글을 쓰기 때문이다. 글쓰기는 제안서를 쓸 때와는 다르다. 사람들에게 봐달라고 할 수가 없다. 맑은 영혼을 가진 신입사원도 없다. 내 마음을 쓰기에 내가 쓰고 내가 읽고 내가 고친다. 마음에 들 때까지 스스로 어르고 질책하고 부추긴다. 나는 책을 쓰는 작가도, 칼럼을 쓰는 사람도 아니다. 그래서 글에 기한이 정해져 있지 않다. 그런데 글이 다듬어질수록 조급함이 생긴다. 읽고 고치고를 수도 없이 반복한다. 문장을 지우거나 바꾸기도 하고 문단을 통째로 이쪽저쪽으로 옮기기도 한다. 그럴수록 마음은 늘 앞서간다. 결국 ‘이만하면’에 도취되어 글을 발행한다.


며칠 후. 발행한 글을 읽는다. 이 이상하다. 얼굴이 화끈거린다. 처음 한글을 배우는 외국인이 쓴 것 같은 이상한 문장, 억지스러운 표현, 시도 때도 없이 나타나는 현란한 수식어구, 남발하는 접속사, 오락가락하는 시제, 틀린 글자. 창피하다. 내가 쓴 글이지만 뭐 이런 글이 있나 싶다. 발행된 글을 고쳐 다시 발행하지만 못 미더워 한번 더 읽고 또 고 발행한다. 그 뒤로도 재 발행 반복된다. 발행을 취소하고 싶지만 그럴 수는 없다. 못난 글을 너그럽게 이해하고 라이킷을 눌러준 독자들에게 미안해서이다.

글을 발행하고 나서도 글을 고치는 경우가 많았다.(지금도 그렇다.) 조바심이 큰 글일수록 더욱 많이 고쳤다. 각인된 의 흐름이 아닌 눈으로 읽힌 내용의 흐름이 필요했다. 작성하지 않은 사람이 제안서를 검토했던 것처럼 제3의 눈이 필요했다. 글이 되었다 싶으면 잠깐 혹은 한동안 글을 보지 않았다. 대신 책을 읽거나 다른 글을 쓰거나 일에 몰두하거나 영화를 보았다. 발행하고 싶은 욕구를 참고 글의 익숙함을 지워다. '이만하면'이라는 달콤함 믿지 않았다. 며칠 후 다시 글을 보았다. 내가 쓴 글인데도 낯설게 느껴졌다.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수정을 했다. 징검다리 건너 듯 띄엄띄엄 글을 수정하다 보니 조금씩 글이 되어가는 것 같았다. 객관적인 마음을 가진 독자의 눈이 되어 나의 글을 읽고 만족하는 순간. 그때가 글이 끝나는 순간이었다.

글 쓰기에서 읽고 고치기를 반복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조바심과 끊임없는 읽기와 수정의 반복은 냉철해야 할 마음을 흐리게 한다. 조급한 마음으로 읽고 쓰기를 반복하다 보면 눈으로 읽어 느끼는 글이 아닌 이미 알고 있는 글로 읽게 된다. 글을 읽는 독자의 눈으로 문장을 읽어야 하는데, 마침표를 보기도 전에 각인된 의미가 앞서 오류와 색함을 읽지 못하는 것이다.

그런데도 조바심은 집요하다. 얼마 전 오랜만에 글을 쓰다 보니 마음이 앞섰다. 서두르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조바심이 났다. 정을 끊고 소원하며 지낼 몇 날을 기다리기가 힘들었다. ‘이만하면’의 유혹을 이기지 못하고 글을 발행했다. 며칠 후 거의 반을 고쳤다. 그 뒤로도 몇 번을 더 고쳤다. 알고도 당한 것에 후회했다. 한번 입에 대면 계속 손이 가는 젤리의 달콤함처럼, 글을 쓰고 누군가 나의 글을 읽어준다는 것은 매력적이다. 조바심은 늘 그 틈을 노린다. 아는데도 힘들다. 경계해야 할 적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글은 모든 사람이 쓸 수 있는 것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