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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llein Aug 21. 2019

엄마가 집밥을 지으면, 나는 고등어를 굽는다

육개장이 끓는 동안, 나는 엄마의 집밥을 짓는다.

때가 묻어 반들반들 윤이 나는 기둥목에 테이프감긴 파리채가 걸려있었. 기 아래 만 고무줄묶은 다란 썬파워 건전지 등에 붙은 라디오에서 악이 나오고 있었. 음악은 매미 소리에 묻혀 또렷이 들리지 않았 귀를 쫑긋 세우고 싶지 않았다. 무언가에 집중한다 간신히 잠든 아이가  몇 분도 지나지 않아 깨었 때 허망함처럼,  여름에 순응하겠다 심한 마음 허무하게 흐트러질 것 아서였다. 라디오 소리는 유히 여름 위해 그저 한가 장식이면 되었다.


시원함을 포기하고 름은 연히 무더운 것이라 인정하며 모든 것을 내려놓으면 한 여름 오후는 의외로 여유롭다. 오래전 어느 해 여름도 그랬다. 점심이 지난 오후. 엄마와 나는 외갓집 마루에 누워 뭉게구름을 보고 있었다. 엄마는 어릴 적 생각이 난다고 다. 장마가 끝나고 무더위가 절정에 이를 즈음이면 외할머니는 육개장을 끓이셨다고 했다. 외할아버지가 장에서 고기를 사 오시면 외할머니는 커다란 솥에 물을 붓고 고기를 넣어 육수를 내었다고 했다. 외할머니 곁에서 일을 돕던 엄마는 물에 불려놓은 봄에  산 고사리와 밭에서 뽑아온 대파, 토란 줄거리를 다듬었다고 했다. 이 끓어 솥뚜껑이 들썩거리 김이 오르 릿한 냄새가  구수한 냄새가 나기 시작하 본격적으로 육수가 우러나는 것이라고 했다. 참을 끓여 육수가  할머니는 고기를  바가지에 찬물을 담아 놓고 손을 적시며 거운 고기를 찢었다고 했다. 먹기 좋은 크기만큼 결대로 찢어진 고기가 수북쌓이면 외할머니는 엄마가 다듬어 놓은 재료들 고기를 섞어 양념을 넣 버무려 끓는 육수에 넣었다고 했다. 세게 넌출 대던 대파가 숨이 죽 고사리가 물렁해 모든 재료가 어우러지면 외할머니는 당신의 비법으로 간을 맞추었다고 했다. 감칠맛 우러날 만큼 끓고 나면 온 식구가 둘러앉을 넓은 상이 펼쳐졌고 커다란 대접에 식구수만큼 육개장이 담겼다고 했다. 온 가족이 앉아 엄마의 할머니이신 외증조할머니께서 수저를 드시면 식사는 시작되었, 외갓집 가족들은 뻘뻘 땀을 흘리며 얼큰하고 시원한 육개장을 먹었고 했다. 육개장을 먹는 날은 지금으로 말하면 온 가족이 함께 외식을 하는 날 같았다고 했다. 그런데 즐거워해야 할 그 자리에 함께 하지 못하는 이가 있었다. 그 사람은 바로 엄마였다.


맏딸이었던 엄마는 할아버지 외할머니를 도와 집안일 밭일 논일을 다고 했다. 무더운 여름 고된 하기 위해서는 잘 먹어야 했지만 모두 그랬던 것처럼 그 시절에는 먹을 것이 풍족하지 않았다고 했다. 게다가 엄마는 천성적으로 고기 누린내를 싫어했다. 얼마나 민감했는지 양념을 아무리 많이 넣어도 고기를 입에 대는 순간 일반 사람은 느끼지 못할 미세한 누린내 알아다고 했다. 래서 육개장 같은 고기 요리를 먹는 날이면 엄마의 반찬은 변변치 않았다. 할아버지는 그런 엄마를 가엽게 여 고기를 사 오실 때면  자반고등어를  사 오셨고, 식구들이 뜨거운 육개장을 먹는 동안 엄마가 빨간 불씨에 구운 고등어드셨다고 했다. 리고 그렇게 온 식구가 밥을 먹던 곳이 엄마와 내가 누워있는 마루고 했다. 엄마는 뭉개 구름이 가득한 여름날. 한 손에는 고기를, 다른 한 손에는 자반고등어를 들고 문을 열고 들어 오시던 외할아버지 모습 눈에 선하다고 했다.


언제부터였는지 기억나지 않다. 엄마는 여름 더위가 절정 이를 때면 육개장을 끓이다. 리가 시작되면 소 지를 물에 담가 핏물을 빼어 이 담긴 커다란 냄비에  육수를 내기 시작다. 그러는 사이 전날 물에 담가 놓은 고사리를 씻고 매끄러운 하얀 살이 보이도록 대파를 다듬고 토란 줄 껍질을 벗겨 다. 토란 줄는 예전에는 흔했지만 지금은 구하기 힘들어 넣을 때도 있고 넣지 않을 때도 있다. 고추기름은 내지 않는다. 외할머니가 하셨던 것처럼 담백한 맛을 내기 위해서이다. 육수 끓기 시작하 불순물을 걷어 누린내가 사라 구수한 냄새가 나면 고기를 꺼내 양은 양재기에 넣어 결대로 찢어낸다. 마 곁에서 잔 심부름을 하던 나도 지만 너무 뜨거워 고기 들었놓았다 한다. 반면 엄마는 맨손으로도 무럭무럭 김이 나는 뜨거운 고기를 잘도 찢어내신다. 찢고기는 간장, 소금, 마늘, 후추 등을 넣어  참기름을 넣고 깨를 뿌려 마무리한다. 쳐진 고기를 한 점 먹어보면  맛이 일품이다.


갖은양념에 무쳐진 재료들 육수 넣고 끓이기 시작하면 집안은 육개장 냄새 가득하다. 이때 간을 맞추기 위해 넣어야 할 것이 있다. 까나리 액젓이다. 유명 외식 사업가백종원 씨가 국이나 탕에 까나리 액젓을 넣어 간을 맞춘다고 했을 때 사람들이 신기해하는 것을 보고는 엄마는 외할머니가 알려 주 비법이었는데 이제 세상 사람들이 모두 알게 되었다며 조금 아쉬워하는 눈치셨다. 엄마는 예전부터 국, 탕, 잔치국수 육수 등에 까나리 액젓을 넣으셨다. 육개장도 예외 아니다. 까나리 액 간을 하고 한소끔 끓여 주면 육개장은 완성된다.


식탁에 모인 가족들이 뜨거운 육개장에 밥을 말아먹 모습을 보며 엄마는 흐뭇해하신다. 엄시나 육개장을 드시지 못한다. 러나 엄마는 식구들과 식사를 함께 하지 못하는 외톨이가 아니다. 그 옛날 외할아버지가 엄마를 위해 고등어를 사 오셨던 것처럼 엄마가 육개장을 끓이면 나는 고등어를 굽는다. 엄마의 어린 시절 빨간 불씨는 아니지만 푸른 선명한 싱싱하고 통통한 배가 갈린 생 고등어에 굵은소금을 툭툭 뿌려 레인지 오븐에 굽는다.


고등어만 있으면 서운하. 그래서 준비하는 것이 있다. 미역국이다. 불린 미역을 들기름에 살짝 볶아 머리를 떼어내고 내장을 뺀 굵은 멸치와 마른 새우, 다시마, 파뿌리를 넣고 우린 육수로 끓인 미역국이다. 바지락 살이나 홍합살을 넣어도 좋지만 어머니는 아무것도 들어가지 않은 맑은 맨 장국이 좋다고 하신다. 간은 조선간장과 까나리 액젓으로 한다. 반찬은 지난 가을 금에 여놓은 무를 채 썰어 차가운 물을 붓고 쪽파를 송송 썰어 넣은 무 장아찌 냉국이다. 이 모든 것이 차려지면 엄마의 밥상이 완성된다.



음식은 생존을 위한 기본 수단이다. 본능적으로 우선순위를 정다면 하루 일과 중 가장 신경 써야 할 것이다. 그러나 실은 렇지 못하다. 식사는 에 밀려 뒷전이  대충 하는 것이 되었 그래서 간단 빠르게 조리하 먹는 음식이 졌다. 을 먹을 때도 일을 생각하며 시간에  먹다 보니 나도 모르게 잘 먹었다는 말이 나오기가 힘들다. 배는 부르지만 공허할 뿐이다.


결국 허무한 배부름의 반복은 윗배에서 아랫배 깊숙한 곳까지 든든하게 채워줄 음식을 그리워하다. 그것은 본능이며 그 욕구를 채워 줄 것 집밥이다. 집밥은 허기진 배와 마음을 든든하게 다. 집밥 입에 넣는 순간 방황을 끝낸 여행자가 집으로 돌아온 것처럼 원초적인 유대감을 불러와 포근히 정착된 느낌을 준다. 집밥을 먹는 동안은 단한 삶 다. 어떻게 살아왔는지 어떻게 살아갈지 같은 어려운 질문지 않는다. 왜 이제 돌아왔냐며 원망도 하지 않는다. 위로와 안도 줄 뿐이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엄마의 엄마가, 엄마의 엄마의 엄마가  세상에 없는 것처럼 집밥 영원할 수 없다. 시간이  족의 부재가 늘어갈수록 집밥은 모두가 그리워하는 것이 되어 간다.


고기 앞에서 엄마는 늘 외톨이였다. 모임에서도 결혼식 피로연에서도 가족 외식에서도 고기는 우리에게는 맛있는 음식이지만 엄마에게는 먹기 힘든 음식이었다. 음식을 만드실 때도 마찬가지였다. 갖가지 양념과 재료를 넣어 고기 요리를 하셨지만 정작 엄마는 드시지 못했다. 그럴 때마다 엄마는 외할머니가 해주셨던 집밥이 생각났을 것이다. 비록 외할머니가 지어주신 맛은 아닐지라도 엄마에게 집밥을 어 주고 싶었다. 래서 엄마가 가족을 위해 육개장을 끓이실 때, 고등어를 굽다. 


뭉게구름이 가득한 무더운 여름. 얼큰하고 담백한 육개장이 끓는 우리 집 부엌 한쪽에선 짭조름한 고등어가 구워다. 탁이 차려지면 식구들은 마주 앉은 엄마를 생각하, 엄마는 우리를 생각하고 엄마의 엄마를 생각하며 을 먹는다. 모두가 밥을 먹는 시간이 영원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지만 우리 모두 그럴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래서 한 끼의 밥으든든해지는 마음을 먼 훗날까지 잊지 않기 위해 한 숟가락, 한 젓가락 엄마에게 감사하는 마음으로 식사를 한다. 단순히 배고픔을 채우는 것이 아닌 마음이 허기지지 않 그립고 그리워할 엄마의 집밥 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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