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도 양준일은 있다
누군가의 다름을 이해하는 것은 자신을 위해서도 그래야만 한다.
보편은 쉽게 접할 수 있다. 일반적인 것이어서 거부감이 없다. 생소하지 않고 편하며 새로운 것을 창조하기 위해 많은 에너지를 쏟아붓지 않아도 된다. 보편 안에서 보편을 지키면 편하고 자유롭다. 평범하고 고요하며 너무 익숙해 때로는 정체가 보이지 않을 때도 있다. 그러나 보편의 테두리에서 벗어나면 보편은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낸다. 숨어 있던 차가운 얼굴로 다가와 특별함을 배척한다.
보편은 보편적이지 않은 것을 경멸하고 홀대한다. 가시를 품어 보편 하지 않은 사람들의 마음을 찌른다. 가시에 찔린 사람들은 아프고 괴롭다. 그러나 그들은 소수여서 외롭고 힘이 없다. 흘깃하는 상대의 시선에 대항할 수 없다. 그들이 아파할수록 보편은 보편의 진리가 영원하리라 확신한다. 그러나 보편은 모른다. 특별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의 생각이 그들의 세계에서는 보편이라는 것을. 세상에는 수많은 사람이 있고 그들의 생각이 늘 같을 수는 없다. 그래서 이 세상에는 보편 한 것은 없는 것일지도 모른다. 보편적이지 않은 보편에 30년 후 세상이 열광하는 것을 보면 말이다.
전주가 흐르고 그의 실루엣이 보였다. 춤추는 그의 몸짓은 자유로웠다. 30년 전 그는 보편에 속하지 않은 사람이었다. 보편은 그에게 날 선 시선을 보내 이 땅에 머물 수 없게 했다. 보편의 가시는 그를 우리의 기억 속에서 사라지게 했다. 보편적이지 않은 다름으로 인해 그는 꿈을 펼칠 수 없었다. 그리고 30년이 지나 우리 앞에 다시 나타났다.
계획이 있다면,
겸손한 아빠로서 남편으로서 살아가는 것.
- 가수 양준일.
그는 타국에서 서빙 일을 하고 있었다. 일을 하지 않으면 살고 있는 집의 월세를 내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는 돈을 벌기 위해 다시 먼 나라로 가야 했다. 그의 계획을 물었을 때 그의 대답은 거창하지 않았다. 그가 말한 계획에는 화려한 수식어도 멋지게 보이려는 가식도 없었다. 겸손, 아빠, 남편. 그의 대답은 30년 전 미소년 같았던 그의 모습처럼 순수했다. 그의 말에 반기를 들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 같았다. 그의 계획을 들으며 생각했다. 나는 타인의 다름을 얼마나 인정할 수 있을까? 나는 부끄러웠다.
세상에는 수많은 ‘나’가 있다. 그들 중에 나와 같은 사람은 없다. 나와 내가 아닌 그들과 갈등이 일어날 가능성은 항상 존재한다. 그러나 평생을 갈등 속에서 살 수는 없다. 그래서 우리는 타협을 한다. 타협의 전제조건은 나와 상대의 다름을 인정하는 것이다. 인정을 위해서는 다름의 이유를 알아야 한다. 타고난 성격, 살아온 환경, 남들과는 다른 경험 등으로 다름의 이유는 다양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보편 속에 갇혀 그 이유마저 인정하려 하지 않는다.
보편 속에서 살아가는 삶이지만 보편적이지 않은 누군가의 개성을 인정할 용기는 없는 것일까? 상대의 마음을 이해하기 위해 한 번쯤 생각해 볼 수는 없는 것일까? 누군가의 다름을 이해하는 것은 자신을 위해서도 그래야만 한다. 나를 바라보는 상대 또한 나를 보편적이지 않은 사람이라고 생각할 수 있기 때문이다. 외모가 똑같은 쌍둥이도 느끼고 생각하는 마음이 같지 않은 것처럼, 세상에는 무수한 사람들이 있고 그들 중 같은 사람은 아무도 없기 때문이다.
집으로 돌아가는 그의 모습을 상상해 보았다. 서글프고 안타까웠다. 쓸쓸하고 아쉬웠다. 그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떠나는 그에게 김윤아의 Going Home을 전해주고 싶었다. 그리고 30년 전 그처럼 다름으로 인해 소외받는 지금의 모든 양준일들에게 말해 주고 싶었다.
우리는 단지 내일의 일도 지금은 알 수가 없으니까
그저 너의 등을 감싸 안으며 다 잘될 거라고 말할 수밖에.
더 해줄 수 있는 일이 있을 것만 같아 초조해져
무거운 너의 어깨와 기나긴 하루하루가 안타까워.
내일은 정말 좋은 일이 너에게 생기면 좋겠어.
너에겐 자격이 있으니까.
이제 짐을 벗고 행복해지길,
나는 간절하게 소원해 본다.
- 김윤아 ‘Going Home’에서.
며칠 전 그에 대한 소식을 들었다. 다시 한국으로 돌아와 팬미팅을 한다는 소식이었다. 기쁘고 좋은 일이다. 그러나 이제야 그의 진가를 알아보는 세상이 씁쓸하기도 했다. 오늘도 세상 어딘가에는 30년 전의 양준일이 있을 것이다. 보편 속에 살고 있는 우리지만, 우리는 그들을 인정하고 다름을 이해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보편 속에서 특별함을 인정하는 것 또한 보편이 될 수 있는 것이다. 다름을 이해하지 못한 것을 30년이 지나서야 안타까워하고 후회하지 않기 위해, 그의 노래 리베카처럼 나와 다른 그들의 진실을 모른 체 지나가지 말기를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