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을 이루며 사는 사람들
우리의 꿈은 어디에 있는 것일까?
정년을 앞둔 부장님은 작년부터 중요한 프로젝트를 진행하셨다. 성공적으로 끝난다면 임원으로 승진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그러나 결과가 좋지 않았다. 개발은 지연되었고 기대했던 매출은 일어나지 못했다. 십이월 마지막 날. 부장님은 구겨진 바지와 체크무늬 재킷, 앞코가 조금 거칠어진 낮고 평평한 구두를 신고 좀 전까지 일을 하다 온 모습으로 퇴사 인사를 하셨다. 앞으로의 계획은 당분간 없다고 하셨다. 그러나 가족을 위해, 아직 더 일할 수 있는 자신을 위해 하루라도 빨리 새로운 일을 찾을 것이라고 했다. 나는 부장님께 건강하시라 하며 마지막 인사를 했다. 사무실을 나온 부장님은 삼십 년간 수도 없이 오고 갔을 복도를 걸어 마지막 문을 향해 가셨다. 부장님의 뒷모습을 보며 나는 소망했다. 부장님의 굽은 등이 꼿꼿이 세워질 수 있도록 밝은 인생이 펼쳐 지기를.
새해 출근 첫날. 시무식에서 회사 대표는 작년처럼 올해도 주변 상황이 좋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그렇다 해도 올해 계획한 목표를 달성해야 한다고 했다. 당부를 한다고 했지만 명령조였으며 듣는 나도 별다른 각오가 들지 않았다. 회사 대표의 말보다는 몇몇 사람들이 보이지 않는 것이 눈에 띄었다. 그들 중에는 스스로 결정에 의해 이직을 한 사람이 있었고, 어쩔 수 없이 정년이 되어 떠난 사람도 있었다. 퇴직 이유로 보면 희비가 갈리는 결과 같지만, 사실 그들은 승자도 패자도 없었다. 모두가 다른 상황, 다른 생각, 다른 일을 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이지만, 분명한 것은 모두가 자신의 생을 열심히 살고 있다는 것이었다. 어떤 이는 새로운 직장에 적응하며 살아갈 것이고, 어떤 이는 지금까지와는 다른 일을 하며 새로운 인생을 살아갈 것이다. 또한 그들의 부재를 보며 남아있는 이들은 자신에게도 언젠가는 일어날 일이라 생각하면서도 지금의 일이 중요하기에 어제의 일을 이어가며 살아갈 것이다.
새로운 해가 되었으니 삼일을 넘기지 못할지라도 작은 결심이라도 해야 했지만 그럴 수 없었다. 작년까지 진행되던 일이 마음에 남아서였다. 회사일과 개인일을 구분해야 하지만 대쪽 가르듯 감정을 나눌 수는 없었다. 시무식을 끝내고 프로젝트 진행 회의를 했다. 회의가 끝나니 피곤이 몰려왔다. 신경을 곤두세우고 끊임없이 말을 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회의를 마치고 자리로 돌아오니 총천연의 곡선들이 모여 기이한 모형들이 만들어내는 화면보호기가 모니터 속을 날아다니고 있었다. 자유롭게 보이지만 결국 사각의 틀 밖으로는 나갈 수 없는 그것들을 멍하니 보다 메일을 확인했다. 몇 개의 새해 인사 메일을 확인하고 인터넷을 여니 수많은 글들이 있었다. 그중에는 퇴사에 대한 글들도 있었다. 좋은 직장을 포기하고 퇴사한 이유가 무엇인지, 어떻게 퇴사 준비를 해야 하는지, 언제 즈음 퇴사를 해야 하며, 퇴사 후에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같은 것들이었다. 직장인이라면 퇴사, 혹은 지금 내가 가고 있는 길이 맞는지 생각해 보지 않은 사람이 없을 것이다. 나도 그렇다. 아주 자주. 그러나 늘 망설인다. 새로운 길을 선택함으로써 포기해야 할 것들과 그 결과로 다가오는 현실을 생각하며 방황하기 때문이다.
퇴사는 단순히 회사를 그만둔다는 의미는 아닐 것이다. 현재보다 좀 더 발전적이고 자신의 미래를 위한 일을 하고 싶다는 의미 일 것이다. 그중에는 자신의 꿈과 연관된 것도 있다. 누구에게나 꿈은 있다. 꿈을 이루면 그보다 좋은 일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꿈을 이루기 위해서는 어려움과 시련이 따른다. 꿈을 위해 행동하는 순간 상상으로만 염려했던 모든 것이 현실이 된다. 그중에는 일상적인 생활을 유지하기 위한 것을 포기해야 할 수도 있다. 쉽게 꿈을 이루기 위한 행동을 시도하지 못하는 이유다. 반면 어느 누군가는 꿈을 위해 행동한다. 꼼꼼히 준비하고 용기를 내어 꿈을 향해 달려간다. 사람들은 그런 그를 부러워한다. 그러나 누가 옳은가는 누구도 판단할 수 없다. 결과는 끝이 되어야만 알 수 있다. 그렇다면 끝은 언제인 걸까? 그것은 세상과 이별하는 순간일 것이다. 경험해 본 적 없지만 그때를 생각해 본다면 그 순간 가장 소중한 것은 살아있는 동안 보았던 모든 순간들일 것이다. 생의 시간들은 삶이었으며, 생을 떠나는 순간 삶은 꿈이 될 것이다. 애석하게도 생의 시간들은 물처럼 바람처럼 흘러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그래서 생은 소중하며 생은 꿈이 된다. 어떤 삶을 살든, 살아 숨 쉬는 지금 이 순간을 열심히 살아가는 것이 우리의 꿈인 것이다.
오후에 영업팀 신입사원이 인사를 왔다. 꼿꼿한 등, 빛 나는 밝은 얼굴. 자신감과 기대가 섞인 목소리. 반듯하고 단정한 외모. 그의 자신감 넘치는 밝은 얼굴이 부러웠다. 그의 모습은 새로운 출발을 의미했다. 그에게 이 회사에 있는 동안 능력을 쌓아 미래에 좋은 기회를 만드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그도 자신의 미래를 위해 노력하고 일도 열심히 하겠다고 했다. 그는 인생이라는 꿈을 이루며 열심히 생을 살아가는 청년이었다.
입사 인사를 마치고 신입사원이 떠난 사무실은 여느 때처럼 분주했다. 퇴근 시간이 가까워 오고 있었지만, 사람들은 여느 때처럼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그들은 가족, 아이들, 여행, 업무보고, 성과, 퇴사 같은 단어들을 떠올리다가도 한 달의 노동을 보상받아 가족이 행복하면 그것으로 되었다고 위로하는 사람들이다. 모습도 생각도 다르지만 현실에서 방황하다가도 일에 몰두하는 그 순간만큼은 충실히 하는 사람들이었다. 해가 바뀌었다. 그러나 특별한 것은 없었다. 모든 것은 여전했다. 꿈이 될 생을 열심히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을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