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 올지 모를 끝을 두려워하며 나아질 수 있다는 희망 없이 병상을 바라보는 것은 고통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생은 고귀한 것이어서 포기란 있을 수 없다. 그러므로 생의 한가운데 있는 이들이 삶과 죽음의 경계에 있는 이에게 해야 할 일은 생의 끈을 놓치지 않도록 힘을 부어주는 것이다. 비록 눈을 마주칠 수 없어 마음으로 외치는 기원 말고는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이 없다 해도 우리는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해야 한다.
병상의 아버지를 바라보며 끝이 다가온다는 것을 알면서도 끝이 오지 말기를 간절히 빌었다. 기계에 의지해 가뿐 숨을 쉬는 당신에게 사랑한다 말했고 고맙다 말했고 죄송하다 말했다. 그러자 당신은 한 줄기 눈물로 답을 주시었고 당신의 성실함만큼 일분일초 고통을 이기시며 생을 이어 가셨다. 그리고 나의 당신, 나의 아버지는 당신이 태어나신 날 우리들 곁을 떠나셨다. 온기가 사라져 가는 당신의 손을 잡고 있는 동안 당신과 함께했던 지난날들이 떠올랐다. 하루만 지나도 수염이 자라 면도를 하던 나를 보며 당신과 똑같다 하시며 흐뭇이 웃으셨던 모습. 평생을 이어온 당신의 습관처럼 작은 수첩에 펜으로 꾹꾹 눌러쓰며 꼼꼼히 메모하는 나에게 당신 최고의 칭찬인 착하다고 말씀하시던 모습이.
몇 날 며칠 당신을 애도했던 시간은 아무 기억도 나지 않는 깊은 꿈을 꾸고 난 것처럼 허무하게 흘러갔다. 당신이 땅으로 돌아가시던 날 하늘과 대지는 하염없이 맑고 선명했다. 지평선 위로 솟아 오른 나무는 당신의 말동무가 되기에 충분했고, 눈 앞에 펼쳐진 바다는 당신의 마음을 달래줄 만큼 파랬다. 당신이 잠드신 자리에 하얀 꽃이 뿌려질 때 어린아이 같은 우리의 눈물도 함께 담았다.
아버지께 마지막 절을 하고 돌아갈 즈음 우리의 몸과 코끝에는 따스한 봄볕과 바람이 맴돌았다. 우리는 당신이 우리를 위해 만들어 주신 봄이라 하며 슬픈 웃음을 지었다. 당신은 여전히 우리들 곁에서 우리 모두를 보살피고 계셨던 것이다. 그날 우리는 봄 볕처럼 따스했던 당신을 영원히 가슴 안의 가슴에 담았다.
사랑하는 당신.
언제 일지는 모르겠습니다. 어디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오로지 신만이 알 것입니다. 그러나 믿고 싶습니다. 이생이 아닌 또 다른 생이 있다면 저 또한 언젠가 그곳으로 갈 것이니 분명 당신을 다시 볼 수 있을 것이라고. 그 염원을 담아 당신께 약속을 전합니다.
당신께 전하는 약속
더 이상 마주 할 수 없는 당신의 부재로
어제 같은 오늘이 아니어 눈물이 흐르고
그대의 향기와 자취가 생각나
가슴이 내려앉도록 그립더라도
이 생이 아닌 또 다른 생이 있다고 신께서 말씀해 주신다면
나 또한 언젠가는 그곳에 갈 것이니
먼 훗날 그대를 다시 볼 수 있을 것입니다.
다시 만날 기약을 예약해 두고라도
당신을 위한 또 하나의 바람이 있다면
당신이 계신 그곳은
당신이 기억하시는 이생의 가장 아름다웠던 곳보다
더 좋은 곳이길 바랍니다.
당신이 태어나시고, 당신이 떠나신 봄입니다.
볕도 바람도 당신의 마음처럼 따스합니다.
그러나 당신의 무(無)는
여전히 가슴 시린 쓸쓸함을 찾아오게 하는군요.
당신께 약속을 전합니다.
당신과의 이별이 거부할 수 없는 운명이며
여기까지가 이생에서의 당신과 저와의 인연이기에
이제 그만 손을 놓으라 신께서 말씀하신다면
인연은 운명이 되고, 운명은 또 다른 인연이 되어
어느 생, 어느 세상에선가
당신과 다시 만날 수 있을 것이라고.
그날까지 저는 당신을 기억하고 사랑하겠습니다.
- 당신의 아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