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연둣빛 나무를 보러 가기로 했다
우리는 시작해야 한다.
누군가 열병에 걸렸다고 했다. 일상은 잠시 미루어졌다. 그러나 사람들은 얼마 지나지 않아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다시 예전처럼 돌아갈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열병에 걸린 사람은 점점 늘어갔다. 보류는 기약 없는 멈춤이 되어 버렸다. 십 년 넘도록 다니던 운동을 갈 수 없었다. 글을 쓰기 위해 카페에도 갈 수 없었다.
사람들은 하루 종일 열병에 대해 이야기했다. 불안하고 두려웠다. 괜히 몸이 쳐지고 목이 아픈 것 같았다. 열도 나는 것 같았다. 내 몸을 의심하고 가족을 걱정했다. 그러나 나의 몸은 정상이었다. 나는 몸이 아픈 것이 아니라 마음이 아픈 것이었다. 하지 못할 것도 도달하지 못할 것도 없을 것처럼 당당하던 세상은 열병에 무너졌다. 예전 같은 일상이 돌아오리라 기약할 수 없었다. 어떤 이는 영원히 돌아오지 못할 수 있을 거라고 했다. 잠자리에 누우면 수많은 생각들이 떠올랐다. 대부분은 불길하고 우울한 생각들이었다. 쉽게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아버지가 입원하셨다. 중환자실에 계신 아버지를 보며 좋아지실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상태는 나아지지 않았다. 오그라든 꽈리 껍질처럼 바싹 마른 세상이 비에 젖어 물 비린내가 진동하던 밤. 아버지는 세상을 떠나셨다. 아버지와 마지막으로 했던 이야기를 떠올려 보았다. 언제 어떤 이야기를 했는지 기억나지 않았다. 기억나는 것은 아버지의 목소리 뿐이었다. 힘없고 약해 무어라 하는지 잘 들리지 않았던 목소리. 그 목소리에 아파했던 마음만이 떠올랐다.
아버지를 영원히 볼 수 없다는 것은 슬픈 일이었다. 시간이라는 약에 의존해 씻어 보려 했지만 슬픔은 시간이 지날수록 더해갔다. 누군가의 농담에 웃다가도, 밥 한술을 입에 물고 젓가락을 들어 반찬을 집다가도 무언가도 아닌 무엇인지도 모를 것을 초점 없이 바라보았다. 그럴 때마다 어릴 적 집을 잃었을 때의 내 마음이 떠올랐다. 낯선 곳에 홀로 남은 나는 믿고 의지해야 할 사람이 없다는 것이 무서웠다. 작은 내가 느꼈던 공포처럼 나는 세상에서 가장 강력한 힘에 끌려 땅속으로 가라앉듯 막연하고 먹먹했다.
달력을 한 장 넘겼다. 커다랗게 써진 숫자 옆에 꽃이 그려져 있었다. 봄 꽃이었다. 해마다 봄이 되면 하얀 꽃을 피우던 집 뒤 나무가 생각났다. 뒷 베란다로 가보았다. 나무는 여전히 그 자리에 있었다. 그러나 이미 꽃은 지고 가지에는 연한 연둣빛 순들이 나 있었다. 가까이서 순들을 보고 싶었다. 그러나 나는 나무에 다가갈 수 없었다. 나는 어딘가에 멈춰 있었다. 두텁고 무거운 옷을 입고 있는 나는, 봄이 아니었다.
열병은 사라질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내 마음처럼 세상도 어딘가에 멈춰 있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곤 회사와 집을 오가는 것과 글을 쓰는 것이었다. 새벽에 일어나 아버지를 생각하며 글을 썼다. 글은 오롯이 나의 능력으로 아버지를 기억할 최선의 방법이었다. 점처럼 작은 아버지와의 기억들은 슬픔과 섞여 글이 되어갔다. 한 자 한 자 써 내려간 문장들은 아버지에 대한 나의 마지막 진심이었다. 글이 완성되어 갈수록 글은 내 마음을 위로했다. 영원히 사라지지는 않을 테지만, 시간으로만 치유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던 슬픈 마음이 차분해지고 있었다. 서서히 마음에 평온이 찾아왔다. 다행히 열병도 조금씩 누그러들고 있었다.
예전처럼 돌아가지 못할 것이다. 아버지가 존재했던 세상과 매일 똑 같이 반복되던 일상은 그리움과 동경이 되었다. 아버지는 나의 삶에 커다란 버팀목이었다. 지루한 일상은 영원할 것 같았다. 그러나 이제는 그 모든 것을 그리워해야 한다. 그리고 이제는 나 스스로가 버텨내야 한다. 열병 때문에 가득한 마음의 불안도 이겨내야 한다.
하고 싶지 않아도 해야 하며 인정하고 싶지 않아도 인정해야 하는 것이 삶이다. 못마땅하고 온몸에 힘이 들어가 아프고 마음에 상처를 받아도 살아야 하는 것이 삶이다. 지금 이 순간도 그 삶의 한 부분이다. 주저앉을 수는 없다. 하루 종일 말뚝에 매인 염소처럼 허전하고 답답하고 반복되는 일상이 될지라도, 그래서 별다를 것 없어 뻔한 삶이라 할지라도 시작해야 한다. 버팀목이 사라진 세상을 살아가기 위해, 열병을 이겨내기 위해, 가슴에는 그리움을 품고 사고는 이성적으로 하여 나 또한 누군가의 버팀목이 되어 얇은 습자지 같은 경계를 넘어서는 유혹을 견뎌내야 한다.
햇볕이 따스하고 따스한 바람이 부는 날. 아버지 사십구재를 지냈다. 우리 가족들은 아버지가 좋은 곳으로 가시기를 기원했다. 집으로 돌아와서는 무겁고 두툼한 옷을 정리했다. 옷장에는 가벼운 봄옷을 걸어 놓았다. 저녁에는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다음날에는 일찍 일어나 하얀 마스크를 쓰고 연둣빛 새싹이 가득한 나무를 보러 가기로 했다. 나는 그렇게 시작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