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를 걷고 있는지 알 수 없었다. 이른 아침 시작된 행군은 멈추지 않았다. 밤이 되자 걷는 것은 더 이상 나의 의지가 아니었다. 할 수 있는 건 같은 일을 반복하는 기계처럼 앞사람이 디뎠던 자리를 영혼 없이 딛는 것이었다. 도로 위 차들이 부릅뜬 부엉이 눈처럼 빛을 쏘아대며 달렸다. 그 빛들을 보며 생각했다. 저 빛 속으로 뛰어든다면 걸음을 멈출 수 있겠지.
꿈을 꾸었다. 잃어버릴 만하면 꾸는 군대 꿈이었다. 시작하면 끊을 수 없는 것이 군대 이야기다. 그중에는 군대를 다시 가는 꿈을 꾸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그럴 일도 없을 텐데 사람들은 꿈이었다는 사실에 진심으로 안도하며 가슴을 쓸어내린다. 이야기를 듣던 사람들도 머리를 가로저으며 세상에서 제일 끔찍한 꿈이라고 한다. 그러나 나는 머리를 가로저을 수 없다. 군 시절 걷는 것은 지겨운 것이었다. 전역을 하고서도 걷는 것을 싫어했다. 그러나 얼마 후 나는 걷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 되었다. 생각해보면 그 시절 행군을 하며 보았던 건 맹렬히 달려오는 두 개의 헤드라이트만은 아니었다.
어둠이 오기 전 붉은빛을 내던 해. 밤 그림자를 만들어 주던 달. 걸어도 걸어도 한 자리에서 빛나던 콧대 높은 별. 그것들은 고통 속에서 항상 내 걸음의 속도에 맞춰 함께 흐르는 것들이었다. 소리도 있었다. 이름 모를 벌레들이 내는 소리와 내 몸에 부딪혀 내는 빗 방울이 내는 소리. 겨울에는 칼처럼 뾰족한 바람 소리와 뽀득거리는 찰진 눈의 소리도 들려주었다. 고통에 가려 눈치 채지 못했지만 그것들은 나도 모르게 은은히 내 마음에 침범했다. 이유를 알 것 같았다. 힘들고 지긋지긋하다 했던 그때의 기억들이 자꾸 떠 올랐던 이유를.
세상이 무서운 열병에 걸렸다. 10년 넘게 다닌 헬스장을 다닐 수 없게 되었다. 대신 퇴근 후 집 주변을 걷는다. 걷다 보면 사람들을 만나곤 한다. 그중에는 다리가 불편해 보이는 남자와 그를 따르며 걷는 여자도 있다. 남자는 최선을 다해 걸음을 딛고 여자는 마음을 다해 부축한다. 걸음의 속도가 다른 사람과 함께 걷는 것은 상대의 보폭에 자신의 발을 맞춘다는 의미. 그것은 서로의 배려이며 상대를 알고 싶다는 마음. 그 마음을 품고 걷다 보면 둘만의 적당한 보폭이 만들어질 것이며, 그러다 상대가 좋아지면 부러 늦게 걸음을 떼고, 그다음엔 손을 잡겠지. 그리고는 결국 멈춰서 애틋한 마음으로 나란히 서로의 발을 보고 그와 그의 주위의 것들을 눈에 담겠지.
걷는 것은 꽤나 낭만적인 일이다. 빠르면 볼 수 없을 것들을 속속들이 볼 수 있다. 우리는 늘 낭만을 꿈꾸지만 일상 속에서 낭만을 누려 본 적이 있었던가? 정갈하고 편리한 이국의 리조트에서 누리는 낭만이 아닌, 어슬렁 걷다 울타리에 핀 장미를 보고는 그 빨간빛이 생각나 뒤돌아 보게 하는 낭만을.
나에게 걷는 것은 낭만을 느낄 수 있는 가장 원초적인 방법이다. 훅하고 들어와 마음을 건드리는 한방을 맞아도, 매일 저녁 묵직하고 딱딱한 돌덩이 같은 상념들을 안고 집으로 돌아와도, 다행인 것은 걸을 수 있어서다. 걷는 동안 정해진 속도는 없다. 장소는 나의 집 근처면 되고 주변을, 세상을 바라볼 수 있을 속도이면 된다. 걸으면 느낄 수 있다. 악몽으로 절대 나타날 수 없을 내 보폭으로 이어진 길이만큼의 낭만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