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장이 있던 자리는 깜깜했다. 리모델링을 하는 것은 아닐까 생각했지만, 누군가의 핸드폰 번호와 ‘임대문의’라고 적힌 현수막이 보였다. 집기들은 '급박함'이라는 제목으로 꾸며놓은 조형물처럼 널브러져 있었다. ‘야반도주’라는 말이 떠올랐지만 그건 아닐 것이다. 야심한 밤, 아무도 모르게 사라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사라진 맥도날드를 보고 있는 사람은 나 만이 아니었다. 엄마 손을 잡고 있는 아이. 헐렁한 운동복을 입고 있는 소녀. 퇴근을 하던 남자. 그리고 나. 마스크를 쓴 채 사람들은 거친 숨을 쉬며 20여 년 동안 변함없던 일상이 사라진 장면을 보고 있었다. 온갖 궁금증이 떠올랐지만 확실한 것은 모든 것은 현실이라는 것과 돌이킬 수 없는 사실이라는 것이었다. 바람이 불었다. 가을을 흉내 내듯 살랑거렸지만 덥고 습한 불쾌한 바람이었다. 그러나 그보다 더 참을 수 없었던 건, 크고 휑한 공허함과 이유를 알 수 없는 배신감이 섞인 허전함이었다.
모든 것은 소멸된다. 모두가 아는 사실이다. 그런데도 막상 소멸의 순간과 맞닥 트리면 허전하고 슬프다. 너무 일상적이고 평범한 것이 사라졌을 때는 더욱 그렇다. 우리들 주변에 있는 것들은 우리의 감성을 만든다. 너무 당연하고 자연스러워 의식하지 못할 뿐, 살아 있는 것이든, 생명이 없는 것이든 우리는 우리도 모르게 그것들과 공존하며 함께 살아간다. 길을 걸을 때도 차를 타고 지날 때도 늘 있던 것이 보이고 그 자리에 있어야 우리는 안정을 찾는다. 타지에서 집으로 돌아왔을 때 모든 것이 내 기억 속 상태 그대로 있어야 내가 살던 동네 내가 살아가던 세상 같아 안도하는 것이다.
어느 전문가가 말했다. 코로나가 없던 2019년 같은 일상을 맞기 위해서는 5년이 걸린다고. 또 누군가는 영영 돌아올 수 없다고 했다. 정말 그렇게 될는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확실한 건 당장 예전의 일상 같은 삶처럼 살기 힘들다는 것이다. 사라진 맥도날드의 흔적을 보며 허전한 마음이 들었던 것처럼, 코로나 시대 우리는 무심히 보냈던 일상의 소중함을 알게 되었다. 여행을 좋아했던 나는 여행의 이유를 일상이 지루해서라고 했다. 그런데 지금은 그 지루했던 일상이 가장 소중한 것이 되었다. 매일 똑같은 삶 같아서 아무 맛도 안 나는 바람 든 무 같다며 뭐 이런 삶이 삶인가 투덜대며 보내던 일상이었지만, 어느 날 사라지고 나니 그 지루한 삶이 가장 행복한 삶이었음을 느끼는 것이다.
여름이 가고 코 안으로 찬 공기가 들이치는 가을이 오면 하고 싶고 기대했던것이있다. 아침일찍일어나헐렁한옷을입고하는둥마는둥산책을하고햇살이드는창가에서맥모닝세트를먹는것이었다.그러나올가을에는할수없을것같다. 걸어서도갈수있던맥도날드는사라지고코로나는여전하다. 그러나낙담하지는않을것이다. 삶은꽤나길며그안에는수많은테마의삶들이있다. 나는지금 "사라진일상을기다리며"라는테마의한가운데있을뿐이다.
빨리 코로나가 사라졌으면 좋겠다. 해피엔딩으로 끝나는 영화의 마지막 장면처럼, 모든 사람들이 "몇 년 후"라는 자막과 함께 수많은 인파가 있는 거리에서 웃음 짓는 주인공이 되었으면 좋겠다. 그러기 위해 우리는 한순간 사라져 버린 영화 속 "몇 년 후"라는 시간을 현실 속에서 고스란히 살아내야 한다. "몇 년 후"라는 자막이 나오기 전까지 무슨 일이 일어날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렇지만 그렇다 해도 우리는 우리의 일상을 되찾아야 한다. 마스크 없는 일상이 또다시 지겨운 일상이 될지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