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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llein Jan 30. 2021

눈이 내리지 않아도 일찍 일어나야 할 이유

예정에 없던 올해의 각오가 생겼다.

팔순인 엄마의 낙은 멸치 국물이 일품인 국숫집에서 잔치국수 한 그릇을 드시기 위해 바깥바람을 쐬는 것이었다. 그러나 가끔의 외출이었지만 바이러스 때문에 그마저 못하시고 집안에만 계시는 모습이 안쓰러웠다. 더욱이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로는 많이 우울해하셔 걱정이 되었다. 그러셨던 엄마가 요즘 새로운 낙이 생기셨다. 그것은 임영웅 가수의 노래를 듣는 것이다. 우연히 TV에서 그의 노래를 듣게 된 후 엄마는 그가 나오는 방송을 보시며 하루를 보내신다. 얼마 전에는 그의 사진으로 휴대폰 배경화면을 설정해드렸고 그의 노래 몇 곡도 휴대폰에 저장해 오른쪽으로 뾰족한 세모를 누르면 노래가 나온다는 것도 알려 드렸다. 엄마는 그가 노래를 할 때마다 노래 제목을 수첩에 적어 놓으신다. 그중에는 김광석 노래도 있고 이문세 노래도 있다. 그들은 내가 좋아하는 가수들 이기도 하다. 이미자와 패티김부터 김광석 이문세까지. 어느 누구의 노래든 그의 목소리로 노래가 나오면 마음에 울림이 전해지고 감성이 솟는다. 얼마 전 ‘외로운 사람들’이라는 노래를 부를 땐 하마터면 눈물이 나올 뻔했다.


이름을 밝히지 않고 노래 경연을 하는 프로에서 63호 30호 가수를 보았다. 그들을 보며 기타를 배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악기를 다루어 본 적이 없어서인지 주문 후 하루 만에 도착한 기타는 어색했다. 유튜브 강사는 하루만 연습하면 한곡을 칠 수 있다고 했다. 그러나 나는 그렇지 못했다. 코드를 정확히 잡기 위해선 하나의 줄만 눌러야 했지만 손가락이 굽혀지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손 끝은 잔뜩 힘이 들어가 아팠다. 세상에는 쉬운 일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포기할 생각은 없었다. 기타 연습을 하지 않을 때도 손이 얼얼하고 욱신거렸지만 기분이 좋았다. 좋아하는 일이 생겼다는 것과 시간을 허무하게 보내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힘들고 고통스러운데 재미가 있어 멈출 수 없다는 것은 참 좋은 일다.


눈이 내리면 평소에는 한가했던 지하 주차장이 차 들 가득하다. 내 차는 지상 주차장에서 밤새 내린 눈에 묻혀 있다. 지상 주차장에 차를 대는 이유는 지하 주차장에서는 번거로운 일이 많아서이다. 가로 주차한 차를 밀거나 사이드 브레이크가 채워져 있을 땐 차 주인에게 전화를 해야 한다. 그렇게라도 차를 뺄 수 있으면 다행이다. 때로는 연락처가 남겨있지 않아 오도 가도 못해 출근이 늦어지는 경우도 있다. 몇 번 그런 일을 겪은 후로는 눈이 내린다는 예보가 나오면 지상에 주차를 한다. 차를 지상에 두면 다음날 꽁꽁 언 차를 운전해야 한다. 반면 차를 밀지도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지 않아도 된다. 그리고 좋은 것이 또 있다. 그것은 눈을 치우는 일이다. 귀찮은 일일 텐데 왜?라고 하겠지만 몇 번 눈을 치우고 나서 느낀 점은 차에 쌓인 눈을 치우는 것은 꽤나 매력적인 일이라는 것이다.


눈을 치우기 위해서는 우선 차를 깨우기 위해 시동을 걸고 히터를 켠다. 그다음은 지붕과 트렁크 위, 앞, 뒤, 옆 창문에 쌓인 눈을 치운다. 그 사이 차 안은 따뜻한 공기로 가득 찬다. 눈을 모두 치우고 나면 마지막으로 와이퍼를 닦아주고 옷에 묻은 눈을 털어낸다. 그다음은 운전석에 앉아 음악을 틀고 눈이 녹아 방울방울 물이 맺힌 창 너머로 하얀 세상을 바라본다. 차 안에서 바라본 하얀 눈으로 덮인 세상은 훈훈한 차 안처럼 따스해 보인다. 눈을 치우느라 바삐 움직인 몸은 한바탕 눈싸움을 한 것처럼 개운하다. 잠시 후 핸들을 꽉 잡고 조심스럽게 차를 움직여 하얀 눈이 쌓인 도로 위를 조심조심 달린다. 와이퍼를 한번 움직여 줄 때마다 세상이 더욱 하얗게 선명해진다. 흘러나오는 음악이 좋다. 오랜만인 것 같다. 행복이라는 단어가 떠오른 것이.        


새해가 왔나 싶었는데 어느새 일월이 끝나가고 있다. 늦은 감이 있지만 일 년을 위한 각오를 생각해 본다. 별다른 것이 없다. 뉴스에서는 줄어들던 확진자가 다시 늘어나고 있다고 했다. 곧 백신 접종도 시작할 거라고 했다. 그렇다 해도 힘든 나날이 언제 끝날지 장담할 수는 없을 것이다. 아마도 앞으로도 힘든 날들이 계속될 것 같다. 그러나 생각해 보면 지금 이전에도 삶은 늘 힘들었다. 가늘고 힘없는 외나무다리를 건너는 것처럼 모든 순간이 위태로웠다. 너무 힘이 들 땐 내일이 오지 않을 것처럼 암울하기도 했다. 그러나 어김없이 내일은 오늘이 되고 또다시 무수히 많은 내일을 위해 지금을 살아가고 있다. 삶은 쉽게 무너지지 않는다. 넘어지고 쓰러지고 지치는 것이 삶이지만 또다시 일어나게 하는 것도 삶이다. 못된 바이러스가 있는 지금도 삶의 일 부분일 뿐이다. 늘 그랬던 것처럼 버텨내고 극복할 수 있을 것이다.


얼마 전 엄마는 63호 가수와 30호 가수도 알게 되셨다. 엄마는 63호 가수가 좋다고 하셨고 나는 30호 가수가 좋다고 했다. 그들의 경연을 보며 각자 좋아하는 가수를 칭찬했고 상대 가수에게는 유치스러울 만큼 시기 섞인 혹평을 했다. 그 바람에 엄마와 나는 서로 다른 팬심으로 대립 구조가 되었다. 그러나 갈등은 오래가지 않았다. 임영웅 가수 때문이다. TV에서 그가 노래를 부르면 온 집안을 정신없이 뛰어다니며 놀던 아이들이 뽀로로를 보기 위해 TV 앞에 조용히 앉아있는 것처럼 엄마와 나는 TV 앞에 앉아 그의 노래를 듣는다. 그사이 63호 가수와 30호 가수는 사라지고 없다. 대신 임영웅 가수의 노래가 끝나면 엄마와 나는 그의 칭찬을 주고받는다. 그것은 화해이며 평온이기도 하다.


곧 사라질 일월의 시간들이 멀건 허공에서 둥둥 떠다닌다. 엄마는 임영웅 가수를 여전히 좋아하신다. 나도 그를 이전보다 더욱 열렬히 좋아하게 되었다. 그리고 눈이 오지 않아도 나의 차는 여전히 지상 주차장에 있다. 꽁꽁 언 차를 녹이기 위해 매일 아침 시동을 걸고 운전석에 앉아 임영 가수의 노래를 듣는다. 오늘이라는 삶 속에서 시련이 다가와도 버티어 낼 수 있다는 신념을 마음에 새긴다. 그리고 차 안이 훈훈해지면 비로소 나의 하루는 시작된다. 행여 우울한 하루가 될지라도 아침이 되면 나는 또 차가운 차를 덥히고 마음을 울리는 음악을 들으며 각오를 다질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앞으로도 계속 일찍 일어나야 할 것 같다. 모닝콜 시간을 이십 분 앞당겨 놓아야 하겠다. 올해 나의 각오가 생긴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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