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과 감성 사이
일 하는 동안 글을 쓰는 이유
새벽 4시 30분. 모닝콜이 울린다. 모닝콜이 울리면 바로 일어나기는 힘들다. 얼마간을 뒤척이다 십 분 전 다섯 시가 되면 일어나 출근 준비를 하고 아침을 먹고 출근을 한다. 회사에 도착하면 아무도 없다. 불 꺼진 사무실은 공허한 공기가 가득하다. 분주했던 전날의 자취들이 리셋되어 있는 공간에 등을 켜고 커피를 준비하고 나면 남는 것은 다시 고요다. 고요 안에는 내가 있다. 하루 중 가장 좋아하는 시간이다.
고요 속에서 가장 먼저 하는 일은 책을 읽는 것이다. 책을 읽으면 마음이 차분해진다. 머릿속을 맴돌며 마음을 불편하게 하던 생각들이 하나둘씩 사라진다. 책 읽기가 끝나면 감성에 충실한다. 글을 써야 하기 때문이다. 새벽처럼 잔잔한 음악을 들으며 글을 쓰면 몰입도가 점점 높아진다. 방해 없는 시간이 계속 이어졌으면 좋겠다. 그러나 한 시간 반 남짓 시간이 지나면 사람들이 사무실에 도착하기 시작한다. 그들의 인기척에 아랑곳하지 않고 글을 쓰지만 업무 시작 시간이 점점 가까워온다. 글쓰기를 멈춰야 한다. 그러나 노래가 끝났지만 여운이 남아 마음을 추스르지 못하는 가수처럼 글로 쓰지 못한 감정들이 남아있다. 계속 감정들 속에 남아있고 싶다. 문장 몇 개를 더 쓴다.
업무가 시작되면 나의 감성 모드는 이성 모드로 전환된다. 하루 동안 처리할 업무를 파악한다. 급히 처리해야 할 업무를 끝내 놓으면 나머지 일들은 천천히 해도 된다. 조금 여유가 생기기 시작하면 아침에 써놓은 문장을 읽는다. 문장과 문장 속에 살을 붙여보지만 몰입이 잘 되지 않는다. 논문이나 보고서라면 증명된 정보나 시험 결과를 있는 그대로 써 내려가면 되지만 마음을 드러내야 할 글은 그럴 수 없다. 마음을 추스르고 집중한다. 문장이 떠 오른다. 문장은 연기 같다. 쉽게 사라져 잃어버리기 전에 남겨 놓아야 한다. 키보드 치는 소리가 분주하다.
늦은 밤에 글을 써보려고 했던 적이 있다. 피곤하고 졸리고 무엇보다도 머리가 맑지 않았다. 시험이 임박해 당일치기 공부를 하는 것처럼 힘이 들었다. 다음날 읽어보면 엉망이었다. 맥락 없이 많은 장면이 나오는 꿈속을 헤매며 쓴 것 같았다. 맑은 정신이 필요했다. 생각해낸 방법이 이른 아침에 글을 쓰는 것이었다. 효과가 좋았다. 처음에는 업무 중에는 글을 쓰지 않았다. 그러나 미완성의 글이 다음이 궁금하지 않냐며 유혹했다. 나는 유혹을 이길 수 없었다. 그 후 나는 회사에서 이성과 감성이 혼재했다. 업무에 집중할 때는 논리적이었고 글을 쓸 때는 감성적이었다.
업무 중 나의 글 쓰는 장면을 경영자나 상사가 본다면 허튼짓을 하고 있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렇다면 나의 변을 해본다. 업무 중 글을 쓰면 좋은 점이 있다. 업무는 힘들다. 자발적이지도 않고 신나지도 않다. 업무가 힘든 이유는 일을 처리할 수 있는 능력의 부재도 있지만 대부분은 사람과의 문제 때문이다. 누군가에게 차가운 말 한마디를 듣거나. 실수를 하거나, 혹은 누군가를 불쾌하게 만드는 자신의 말에 대한 죄책감처럼, 대부분은 사람과의 관계이다. 그 결과로 마음은 상처를 입고 여운은 오래간다. 마음이 이성적이어야 하나 그렇지 못하고 부정적이 된다. 이때 잠깐의 글쓰기는 마음을 괴롭히는 감정을 잃어버리게 한다. 하루 중 단 몇 분이라도 내가 좋아하는 일에 집중한다는 것은 좋은 일이다. 외롭고 짜증 나고 울화가 치밀어 오를 때 잠깐이라도 글을 쓰면 본연의 나에게 집중할 수 있다.
사람들은 하루의 대부분을 직장에서 보낸다. 하루 종일 이성적이고 냉철해야 한다. 매 순간이 메마르고 경직되고 획일적이다. 피곤할 수밖에 없다. 그 시간 속에서 틈을 비집고 간간히 감성적인 일을 하면 경직된 마음이 풀린다. 업무는 이성적이고 논리적이어야 하지만 글쓰기는 이성과 감성이 적절히 섞여야 한다. 이성은 감성을 채우고, 감성은 이성을 채운다. 일도 잘하고, 좋아하는 글도 쓰고 싶다. 그래서 나는 이성과 감성이 혼재되어 일을 하는 동안에도 글을 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