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러스는 현실이다
코로나를 한 번에 날려 버리고 싶지만
급하게 집에서 나오다 마스크 쓰는 것을 깜박했다. 약속 때문에 차를 돌려 집에 돌아갈 수 없어 마스크 파는 곳을 찾았다. 약국이 보였다. 차에서 내려 약국을 향해 가는 동안 사람들의 시선이 느껴졌다. 그들에게 나는 위험한 사람이었다. 구입한 마스크를 쓰고 나서야 나는 안전한 사람이 될 수 있었다. 나로 인해 타인이, 타인으로 인해 내가. 어디서 어떻게. 원인도 모른 체. 복불복 같은 세상이다.
코로나가 시작되었을 당시 한 밤중에 참기 힘들 정도로 가슴이 뻐근하고 아파 응급실에 간 적이 있다. 접수절차는 조심스러웠다. 방역복을 입은 의사가 열 체크와 호흡기 질환이 있는지를 체크하는데 괜히 아프지도 않은 목이 아픈 것 같고 코 안도 이상한 것 같았다. 의사는 의심 증상은 없지만 가슴 통증이 있으니 엑스레이를 찍어 보자고 했다. 바이러스가 나의 폐를 하얗게 덮고 있으면 어떡하나 염려했지만, 눈에 보인 것은 선명한 갈비뼈 사진이었다. 의사는 나 같은 사람들이 많다고 했다. 걱정하지 말라는 말과 며칠분의 약을 들고 집으로 왔다. 의사가 처방해준 약은 소화제와 마음을 진정시켜주는 약이었다.
잠깐일 줄 알았다. 금방 좋아질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다 일 년이 넘어 새로운 계절이 오고야 말았다. 꽃이 피고 따스한 바람이 부니 마음이 느슨해진다. 그런데도 꼼짝 할 수밖에 없으니 답답하다. 가장 답답한 것은 십오 년 동안 한결같이 유지했던 체중이 늘어난 것이다. 유튜브를 보며 홈트레이닝을 해보지만 여의치가 않다. 며칠 열심히 하다가도 한번 거르면 그다음엔 하기가 싫다. 완전 의지박약이다.
그다음으로 답답한 것은 올레길을 못 걷는 것이다. 예전 같으면 봄이면 휴가를 내고 올레길을 걸었다. 요즘 제주는 관광객들이 붐빈다고 한다. 올레길 걷는 사람도 많다고 한다. 정 걷고 싶으면 그들처럼 위험을 감수하고 떠나면 될 것이다. 하지만 아직까지는 참으려 한다. 백신 접종이 되고 있으니 올 가을을 기대한다. 만약 그도 안 된다면 내년 봄에는 갈 수 있겠지.
힘들다. 모두 힘들다. 이럴 때는 무언가에 집중해야 한다. 사람들마다 각기 방법이 있겠지만 나는 글쓰기가 그중 하나이다. 얼마 전 '예스 24'에서 진행하는 '나도 작가다' 공모를 보았다. 매달 정해진 주제로 에세이를 쓰는 것이다. 공모해 볼 마음으로 글을 썼다. 일차로 마무리된 글을 읽어보니 글이 이상했다. 맥락 없고 뜬금없는 문장이 무슨 명언처럼 한껏 멋을 내고 있었다. 몇 번을 읽어 보았지만 분위기에 맞지 않는 헛 똑똑이 같았다. 전체적인 글 내용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결국 커서를 글 맨 앞에 갖다 놓고 마구 엔터키를 눌렀다. 키를 누를 때마다 글이 내려간다. 잠시 후 하얀 여백만 남아 버렸다.
회사 사람 중 대화를 할 때마다 주제가 엉뚱한 방향으로 흐르는 사람이 있다. 처음에는 생각이 많아서 그런가 보다 했다. 그런데 가만 보니 주제의 방향을 부여잡는 집중력이 부족한 것 같았다. 글도 마찬 가지인 것 같다. 글을 쓰다 보면 주제와 상관없는 억지 문장을 쓸 때가 있다. 이는 글의 일관성을 흐리게 한다. 버리기 아까워 어떻게든 살려보려고 주제와 연관되도록 써보지만 변명하고 수습하느라 글이 장황스럽고 정신이 없다. 이럴 때는 아무리 멋진 문장이라도 과감하게 지워야 한다.
봄이다. 사람들이 참고 억눌렸던 마음을 분출하며 봄을 따라간다. 나도 어디든 달려가고 싶다. 그러나 바이러스는 그 틈을 노린다. 사람들의 방심을 틈 타 야금야금 확진자를 늘려간다. 어쩌면 우리는 앞으로도 계속 무색, 무취, 무미인 바이러스와 공존하며 살아가야 할지도 모른다. 바이러스와의 공존은 곧 싸움이다. 싸움은 피 흘리며 싸우는 물리적 싸움이 아닌 철저한 심리적 싸움이다. 바이러스는 우리에게 가장 취약한 일상의 통제를 무기로 내세워 공격한다. 그 싸움에서 이기기 위해서는 절제하고 인내해야 한다. 글의 주제를 놓치지 않기 위해서는 마음을 꼭 부여잡아야 하는 것처럼 긴장을 늦춰서는 안 된다. 잘못된 글은 언제든 지울 수 있다. 아무리 멋진 문장이라도 글의 분위기를 흐린다면 지워버리면 된다. 그러나 바이러스는 현실이다. 그것들이 휩쓸고 지나간 결과는 되돌릴 수 없다. 한방에 날려버릴 delete 키도, 이전으로 되돌아갈 Ctrl+Z 키도 없다. 씁쓸하다. 그렇지만 어쩔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