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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llein May 21. 2021

불면

나는 잠이 들 수 있을까?

눈 언저리가 지끈거렸다. 무언가로 얻어맞은 것처럼 머리가 띵했다. 두통약 한 알을 먹었다. 아픔이 가시지 않았. 두통을 없애기 위해선 얼음이 가득 든 커피를 마셔야 했다. 비가 내리고 있었다. 여름 장맛비 같은 세찬 봄비였다. 커피를 사러 갈 엄두가 나지 않았다. 배달 앱을 켰다. 가장 큰 사이즈 커피를 선택하고 결제 창을 누르려다 잠시 머뭇했다. 대찬 빗속을 뚫고 커피를 배달해야 할 누군가에게 미안해서였다. 그러나 두통을 없애기 위해선 어쩔 수 없다.

먼 나라로 떠나는 날.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비행기 표를 받기 위해 창구로 갔다. 내가 건넨 예약표를 받아 든 직원은 한참 동안 모니터를 보았다. 직원은 예약자 명단에 내가 없다고 했다. 예약표에는 분명 도착지와 나의 이름이 있었다. 착오 일지 모르니 한 번 더 확인을 해 달라고 했다. 그러나 돌아온 대답은 이전과 같았다. 나는 오랫동안 기다렸던 여행이어서 이럴 수는 없다며 제차 확인을 요구했다. 그러나 직원은 거듭 내 이름이 없다고 했다. 절망적이었다. 잠시 후 내가 타야 할 비행기에 탑승하는 사람들이 보였다. 그들의 모습을 보며 나는 발을 동동 다. 결국 나는 떠날 수 없었다.

꿈을 꾸었다. 비행기를 타지 못하는 꿈이었다. 시계를 보았다. 열두 시가 넘어가고 있다. 열한 시 넘어서까지 깨어 있었으니 한 시간 정도 잠을 잔 것 같다. 눈을 감았다. 잠이 오지 않다. 커피 때문이다. 오후에 커피를 마시면 까지 정신이 말똥말똥하다. 따뜻한 우유를 마시거나 손을 포개어 가슴을 지그시 누르거나 자연에서 나오는 백색소음을 들어보지만 소용이 없다. 그래서 커피는 늘 오전에 마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후에 커피를 마신 이유는 두통 때문이다. 근래 들어 두통이 잦아졌다. 약을 먹어도 잘 듣지 않는다. 그럴 땐 차가운 커피를 마시면 좀 나아진다. 병원에 가봐야 하지만 당장 두통을 멈추기 위해선 어쩔 수가 없다.


잠이 들기 위해선 무언가를 해야 했지만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그저 홀로 누워 있을 뿐. 홀로 무언가를 하는 것을 싫어하지 않는다. 홀로 여행을 하고, 산책을 하고, 홀장을 보아 밥을 지어먹고. 그러나 홀로라서 좋지 않을 때도 있다. 새벽길을 걷다 수평선에서 떠오르는 붉은 해와 황금빛으로 물드는 바다 모습을 보며 누군가에게 저것 좀 보라며 말하고 싶을 때, 오랫동안 누군가의 자취가 없는 자동차 운전석 옆자리에 하나둘 잡동사니쌓여 갈 때, 그리고 지금처럼 잠이 오지 않을 때.


군가 있다면 어둠의 힘을 빌어 진심을 다해 두런두런 이야기를 하면 잠이 올 것 같았다. 휴대폰을 뒤적거렸다. 언제부터 있었는지 모를 라디오 어플이 보였다. 어플을 켜니 차분하고 소곤소곤하게 누군가 말을 한다. 음악이 흐른다. 어둠만 있는 . 내가 방송을 들을 것을 알고 있었던 듯 예전 무한 반복으로 들으며 좋아했던 음악이 나다. 음악이 끝나고 진행자가 사람들 사연을 읽는다. 밤새워 공장에서 일하는 사람. 야간 운전을 하는 택시기사. 누군가를 사랑하고, 누군가와 헤어지고, 누군가를 그리워 하기에 잠을 이룰 수 없는 사람. 그들의 이야기에 집중다. 소리 내지 않아도 라디오 속 그들과 진심을 다해 이야기하는 것처럼.


냄새가 났다. 살짝 열 문틈으로 들어온 가을 같은 냄새. 따스하기만 할 것 같았던 봄밤의 공기는 차갑고 신선했다. 라디오에서 소곤거리는 소리가 들다. 혼자인데 혼자가 아닌 것 같다. 불면이 두렵지 않다. 잠 못 이루는 사람들의 이야기. 가을을 닮은 찬 공기의 냄새. 모든 것을 이어가고 싶다. 그러나 좋은 것은 늘 빨리 사라진다. 점점 아득해진다. 다시 꿈을 꾸어야 할 것 같다. 먼 나라로 가기 위해 공항에 갈 것이고, 나의 이름과 내가 가야 할 곳이 적힌 표를 손에 들고 비행기에 오를 것이다. 비행기를 타지 못해 동동 발을 구르며 애처로워하지도 않을 것이다. 잠이 든다. 불면의 밤이 사라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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