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적한 산길을 걷다 새소리에 고요를 느낀 적이 있다. 싱그러운 새소리는 고요의 정점을 찍어 마음을 잔잔하게 했다. 고요는 소리가 없을 때만 느끼는 것이 아니었다.
나에게 하루가 고요할 것인지는 그날의 첫마디로 결정된다. 첫 말의 억양이 높을 때는 무언가로 인해 만족스럽지 못해 불만이 가득한 때이다. 누가 말을 걸어오든 마음이 전투태세여서 말의 톤이 높아진다. 상대도 고요할 수 없다. 결과는 비난과 불만의 토로뿐이다. 그렇게 시작된 하루는 엉망이 되어버린다.
마음이 고요하지 못하면 일이 손에 잡히지 않는다. 다가오는 것들이 모두 부정적으로 느껴진다. 늘 고요하고 싶지만 고요하기 위해서는 고요가 필요하다. 그래서 고요하지 않으면 잠시 말을 하지 않고 상대의 말을 경청한다. 눈을 감고 내 마음이 무엇 때문에 삐뚤어졌는지 생각한다. 생각 속에서 부끄러운 마음이 들면 반성한다. 그러면 고요해진다. 고요는 고요를 가져다준다.
고요를 유지하기 위해 조심해야 할 것 중 하나는 무리 지어 말하는 사람들이다. 사람들은 전날 있었던 일이나 누군가에게 전해 들은 이야기를 한다. 무리에서는 여러 사람의 말이 조합되어 하나의 새로운 사실이 만들어진다. 결과가 왜곡되어도 그들은 저마다의 지분이 있어 반기를 들 수 없다. 몇 번 그들의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자칫하면 그들의 말에 내 지분이 들어갈 뻔했다. 그러나 유혹을 이기고 나는 참아냈다. 고요하고 싶어서였다. 고요는 나에게 의미 없고, 근거 없는 말을 하지 않는 것이 좋다고 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코어가 튼튼한 운동선수처럼 고요를 유지해야 할 힘을 길러야 한다.
힘을 기르는 방법 중 하나는 소리이다. 고요를 위해 내가 좋아하는 소리는 절간 처마 밑에 달려있는 풍경 소리이다. 풍경 소리는 규칙적이지 않다. 바람 때문이다. 바람이 불면 소리는 공기를 뚫고 세상에 퍼진다. 소리는 신이 들려주는 선물처럼 마음을 맑게 한다. 잔잔한 여운이 끝나면 다시 소리가 들리기까지 고요가 다가온다. 이때 조바심을 내지 말아야 한다. 풍경이 흔들려 언제 소리가 울릴지 모른다. 그때는 소리를 기다리지 말고 소리가 오기 전까지 흐르는 고요 속에 나를 맡기면 된다. 얼마의 고요가 흘렀는지 모를 시간이 지나면 바람에 풍경이 흔들린다. 그러면 나는 고요와 소리가 만난 세상에서 진정한 고요에 빠져든다.
고요를 느끼기 위한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다. 명상을 하거나 길을 걷거나 책을 읽거나. 나는 책을 읽기 위해 이른 아침을 선택했다. 동트기 전 새벽 회사에 도착하면 아무도 없다. 사무실은 조용하다. 책을 꺼내 고요 속에서 글을 읽는다. 때로는 쓰기도 한다. 이때는 하지 않는 것이 있다. SNS와 인터넷을 하지 않는 것이다.
시간이 흐르면 고요는 출근하는 사람들의 발자국 소리에 서서히 깨어난다. 발자국 소리가 많아질수록 점점 고요는 사라진다. 그러나 나는 고요를 잃지 않기 위해 집중한다. 커피를 들고 옹기종기 모여 이야기하는 사람들의 시선이 나를 유혹한다. 그러나 나는 꿋꿋하다. 나에게는 고요를 위해 버틸 힘이 있다. 여전히 나는 고요하다. 내 하루의 준비가 끝나는 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