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마음 자리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Ollein Apr 16. 2022

봄바람

봄이 바람에 날린다.

초봄에 부는 바람은 애매하다. 봄인지 아닌지 생각하게 한다. 한낮 바람은 따스한데 저녁 바람은 쌀쌀하다. 아직 겨울의 흔적이 남아서다. 옷장 깊이 겨울옷 두기가 망설여진다. 


저녁 바람에 찬기가 사라지면 봄을 인정하게 된다. 나무는 꽃을 피운다. 뭉실거리며 이어진 하얀 꽃구름을 보며 사람들은 봄을 만끽한다. 봄이 온다는 것은 모두에게 좋은 일이다. 봄바람에 머리카락이 날려도 성가시지 않다.


체중이 늘었다. 작년 봄 옷이 비둔하다. 퇴근 후 걷기를 했다. 오랜만이어서  집중하며 다. 그러나 얼마 가지 않아 걸음을 멈추었다. 구름 같던 하얀 꽃들이 비처럼 날린다.  아래 떨어진  야광처럼 빛이 난다. 까만 밤길이 하얀 꽃길이 되었다.


봄바람에 날리는 꽃들을 보면 마음이 부끄러워진다. 언제부턴가 아름다운 것을  아름답다고 하지 못했다. 예쁜 것을 보아도 어루만져 주지 못했다. 아름다움 앞에 서면 두 손이 모아지며 의기소침했다. 감탄며 아름답다고 표현하고 싶지만 유별난 것 같 부끄러웠다. 이제부터는 말해야겠다. 때로는 아름다운 것 앞에 유난스러운 것도 좋다.


영화를 보았다. 이루지 못한 사랑 이야기이다. 영화를 보며 봄바람에 휩쓸려 가는 꽃처럼 내 마음도 영화 속으로 휩쓸려 갔다. 영화를 보는 내내 마음이 처음 사랑을 하는 마음 같았다. 오래전 좋아했던 사람을 떠올려 보았다. 기억나지 않다. 그보단 마음이 생각다. 사랑의 끝은 늘 슬프다. 그러나 간이 지나 면 사랑 모두 아름다운 것이 된다. 시간은 누군가의 모습보단 사랑하고 애틋했던 마음만 남게 한다. 봄바람 때문인지 영화 때문인지 모르겠다. 마음이 두근거린다. 


바다가 보고 싶다. 흐린 봄 바다 바람을 맞고 싶다. 땅거미 지듯 어둑한 봄 바다에 어오는 바람은 마음을 가만히 두지 않는다. 바다 냄새와 봄 냄새가 섞인 바람을 맞으면 누군가를 그리워해야 할 것 같다. 무엇을 향한 그리움인지는 알 수 없다. 형체가 없다. 만나고 싶은 것인지 그냥 남겨 놓고 싶은 것인지. 그래서일까? 바람 부는 봄 바다에 서면 마음이 시리기도 하고 저리기도 하다. 그러다 결국 마음이 싱숭생숭해진다. 하지만 그래도 좋다.  아프면 된다.


비가 내린다. 꽃이 떨어진다. 떨어진 꽃들이 비와 함께 날린다. 창문을 열었다. 부슬부슬 봄비 냄새가 다. 손님이 올 것 같다. 우산을 쓰고 빗속을 걸어 나를 향해 오는 사람이 있다면 나는 행복할 것이다. 그 갖고 온 봄비 냄새가  가득 차면 나는 그를 안아 줄 것이다. 그리고 말할 것이다.


"당신이 있는 봄을 기다리고 있었어요."


바람이 분다. 머리카락이 날린다. 람이 가시지 않다. 봄이 바람에 날다.

매거진의 이전글 다가오는 봄이 눅눅하지 않은 봄이면 좋겠습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