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의 남편은 그와똑같은 넥타이를 하고 있었다. 그의 아내는 그녀와 똑같은 가방을 들고 있었다. 그녀와 그는 식사를 했다.그녀는 그의 아내에 대해 물었다. 그는 그녀의 남편에 대해 물었다. 그녀와 그는 자신들의 남편과 아내가 만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녀와 그는 그들의 남편과 아내의 관계의 시작이 궁금했다. 그는 그녀가 일하는 회사로 전화를 걸었다. 그녀는 그의 전화를 받지 않았다. 그러나 그녀는 그의 전화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들은 감정이 일었다. 그들은 조심스러웠다. 솟아나는 감정이 지금 막 상처받은 그들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것이었다. 감정을 인정한다면 그들은 어떻게 되는 것일까?
시간이 흐를수록 은밀히 피어오르는 감정을 막을 수 없었다. 선명해진 감정이 심장을 삭혔다. 감정은 완전히 마음을 잠식했다. 망설임은 의미 없는 내면의 싸움이 되었다. 그녀와 그는 서로를 생각했다. 마음이 상대로 가득 찼다.
누가 먼저 마음을 흔들었을까? 그들에게는 의미 없는 질문이었다. 상대가 자신에게로 향하는 눈빛을 의식적으로 피하려 해도 그럴 수 없었다. 마주 선 그녀와 그가 서로를 향해 조금만 보폭을 내딛는다면 그들은 깊은 사랑에 빠져 헤어날 수 없을 것이다. 어쩌면 그녀의 남편과 그의 아내인 ‘그들’보다 더욱 격렬히 사랑할지도 모른다. 그녀와 그는 갈등한다. 그들은 결국 보폭을 띄지 않는다.
그 : "당신이 올 줄 몰랐어요."
그녀 : "우린 ‘그들’과 다르니까요."
그녀와 그는감정을 몸으로 말하지 않았다. 절제가 쌓일수록 늘어나는 것은 그리움이었다. 그리움은 사랑이었으며 그녀와 그가 나누는 말과 눈빛과 시선, 간결한 무표정은 상대와 함께 있고 싶다는 의미였다. 그가 있는 곳으로 가는 그녀의 마음은 애타고 분주하다. 그럼에도 당신이 올 줄 몰랐다는 그의 말에 그녀는 우리는 ‘그들’과 다르다고 말한다. 그녀와 그의 대화는 슬픈 절제이며 차오르는 눈물의 고통이었다. 또한 서로를 갈망한다는신호이기도 했다.
그녀와 그를 보며 마음이 울렁거렸다. 그들의 사랑이 오래도록이어지기를 바랐다. 그러나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기 마련. 문제는 시작과 끝의 길이. 그녀와 그에게 주어진 길이는 짧았다. 그들은 그 사실을 모른 체 이별연습을 한다. 그녀의 상대는 그. 그의 역할은 그녀의 남편. 그녀의 물음에 그는여자가 있다고 인정한다. 그녀는 그의 단호한 인정에 아무 말을 할 수 없다. 그녀는 너무 속상하다. 그녀가 그에게 기대어 눈물을 흘린다. 그는 그녀를 안는다.
“ 그 : 괜찮아요?
그녀 : 이렇게 속상할 줄 몰랐어요.
그 : 그냥 해본 거예요. 진짜가 아니라고요.
남편은 인정하지 않을 거예요.
괜찮아요. 걱정 말아요.”
그녀와 그가 가까워질수록 사람들 시선이 그들을 향한다. 비 내리던 날. 그는 떠난다고 말한다. 이유는 그녀를 좋아하게 되어서라고. 그녀는 마음이 무너진다. 그녀는 그가 자신을 좋아하게 될 줄 몰랐다고 한다. 그녀가 그에게 안겨 눈물을 쏟는다. 그는 그녀를 달랜다.
"울지 말아요. 바보같이 왜 그래요. 진짜도 아닌데."
그와 그녀가 택시를 탄다. 그날은 그녀와 그가 함께 하는 마지막 날이었다.
그가 그녀에게 싱가포르에 함께 가자고 한다. 그녀는 답이 없다. 그는 떠난다. 시간이 흐른 후 그녀와 그는 그와 그녀를 찾는다. 그들은 엇갈린다. 시간이 흘러 그녀 곁에는 귀여운 남자아이가 있고 그는 혼자이다. 그는오래된 사원에서 기둥 구멍에 입을 대고 자신의 비밀 이야기를 담는다. 이야기가 끝나고 그는 진흙으로 구멍을 막는다. 그녀와 그, 그와 그녀의 이야기는 그렇게 기둥 안에 담겨 피어오르지 못한다.허전했다. 그들이 만났던 것, 그들이 이별했던 것. 무엇이 잘못된 것일까? 아니 잘못된 것이라고 말할 수는 있는 것인가? 그녀와 그에게 남은 것은 무엇인가?
웅장한 배경, 많은 인물, 많은 대사가 없어도 오래도록 가슴에 남는 영화가 있다. 그것은 영화 속 인물과 이야기, 영화를 보는 사람이 하나가 되어서이다. 그들과 그들을 보는 사람들 모두 사랑에 빠진다. 영화 속 남자는 영화를 보는 남자이며, 영화 속 여자는 영화를 보는 여자이다. 영화 속 남자를 사랑하는 이는 영화를 보는 여자이며, 영화 속 여자를 사랑하는 이는 영화를 보는 남자이다.
그녀와 그의 이야기처럼 우리는 누군가를 사랑하고 그리워하고 아파한다. 그것이 영화가 끝나도 여운이 남아 자꾸자꾸 되돌려 보는 이유다. 반복해 보면 식상해져 더는 가슴이 울렁거리지 않을 것 같지만 그것은 착각이다. 영화를 볼수록 그녀와 그의 사랑이 더욱 그립다.
지난번 그들의 이야기를 본 것이 마지막일 거라 생각했다. 그러나 나는 다시 그들의 이야기가 궁금하다. 영화가 시작된다. 나는 집중한다. 하나하나의 짧은 표정과 말과 시선들이 모여 만들어내는 감정들. 망설임. 사랑. 이별. 그리고 아쉬움. 영화 속 그녀와 그에게는 많은 일이 일어난다. 나는 아플 것을 알면서도 또다시 그들의 '화양연화' 속으로 빠져든다. 그녀와 그, 그리고 우리들의 가장 아름답고 찬란했던 시절 속으로. 나도 모르게 시작되고 나도 모르게 끝나는 그 시절 속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