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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llein Oct 25. 2022

기다림은 소중한 기억이 되고

정류장에는 나무 의자가 있었다.

정류장은 성냥갑처럼 네모났다. 그란 창 영원히 그 자리에 있을 것처럼 거미가 미동 없이 웅크리고 있었다. 그 광경이 너무 무료해 보버스가 서지 않는 정류장 아닌 생각했다. 그러나 의심은 확신으로 이어지지 않았다. 한쪽 벽에 손 글씨로 써 놓은 버스 시간표가 붙어있었다. 아침과 저녁에는 삼십 분 간격이었고 한낮에는 한 시간 간격 이기도  한 시간 반 이기도 했다. 버스를 타기 위해서는 한참을 기다려야 했다. 갈증이 났다. 매점이 있는지 주변을 두리번거지만 물을 살만한 곳이 없다. 지루한 기다림만 있을 뿐이었다.


정류장에는 나무로 만들어진 의자가 있었다. 의자는 누군가가 쉴 새 없이 닦아 낸 듯 반들반들 빛이 났다. 팽팽하고 보드랍던 손이 쭈글쭈글 주름 가득한 손으로 되어버 세월 동안 외할머니 손때가 묻 반짝이는 외갓집 마루 같았다. 의자에 앉아 바닥을 만졌다. 촉이 맨들맨들다. 솜씨 좋은 목수라 해도 만들지 못할 것 같은 감촉이었다. 양손을 다리와 의자 사이에 끼우고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며 바닥 문질다. 러자 마음이  버스가 오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의심과 초조함이 사라졌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 의자에 앉았을까? 의자 위에 있었을 기다림들을 생각했다. 어떤 기다림은 일초가 한 시간 같아 초조하고 설레었을 것이다. 어떤 기다림은 끝을 알 수 없어 막연하고 고통스러웠을 것이다. 의자는 기다리는 사람들을 위해 유일한 친구가 되었을 것이다.


기다림엔 머무름이 있다. 머무름은 몸이 아닌 마음이 머무는 것이다. 몸은 움직일지언정 마음 흐름이 한 곳에 정지해 있어 더디고 초조하다. 그래서 기다림은 늘 외면받는다. 어느 누구라도 빽빽이 적힌 여행 계획에 기다림이란 항목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듬성듬성 도착하는 버스를 기다리고, 연착된 비행기를 기다리고, 어느 유명인이 먹었다는 긴 막대기에 말린 핫도그를 먹기 위해 줄을 서서 기다리는 것처럼 계획도 지명도 형체도 없지만 늘 여행 한 부분이 되곤 한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기다림을 외면한다. 그러나 기다림 안에는 상념이 있다. 기다림의 시간 동안 나누었던 누군가와의 말 한마디, 무심히 들었던 생각, 의미 없어 보였던 풍경, 심지어는 아무 생각 없이 멍하니 보내던 시간들마저 헛된 시간이 아닌 것이다.


차 소리가 났다. 거미줄이 쳐진 동그란 창 너머로 버스가 보였다. 무료한 한낮이어서 잠시 게으름을 피워도 되었을 것인데 버스는 제시간에 맞추어 정류장에 멈추었다. 버스에 오르기 전 의자를 보았다. 의자는 여전히 또 다른 기다림을 맞이할 누군가를 위해 빛을 내고 있었다.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근사한 풍경을 보았던 것도, 맛있는 음식을 먹었던 것도 아닌데 기다림은 짧았다. 기다림 끝에서 느끼는 감정은 외갓집을 떠나던 날 빛이 나는 마루 위에서 손을 흔들어주시던 할머니를 보던 마음 같았다. 동그란 창, 웅크린 거미, 누군가 써놓은 버스 시간표. 그리고 반짝이며 윤이나는 의자. 내 기다림의 풍경이 되어준 무심했던 모든 장면들이 마음 한 곳에 남겨 이별이 되고 있었다. 점점 내 마음 안으로 들어와 소중해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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