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류장은 성냥갑처럼 네모났다. 동그란 창에영원히 그 자리에 있을 것처럼거미가 미동 없이 웅크리고 있었다. 그 광경이너무 무료해 보여 혹시 버스가 서지 않는 정류장이 아닌가생각했다.그러나 의심은 확신으로 이어지지 않았다. 한쪽 벽에 손 글씨로 써 놓은 버스 시간표가 붙어있었다. 아침과 저녁에는 삼십 분 간격이었고 한낮에는 한 시간 간격 이기도 하다 한 시간 반 이기도 했다.버스를 타기 위해서는 한참을 기다려야 했다. 갈증이 났다. 매점이 있는지 주변을 두리번거렸지만 물을 살만한 곳이 없었다. 지루한 기다림만 있을 뿐이었다.
정류장에는 나무로 만들어진 의자가 있었다. 의자는 누군가가 쉴 새 없이 닦아 낸 듯 반들반들 빛이 났다. 팽팽하고 보드랍던 손이 쭈글쭈글주름 가득한 손으로 되어버릴 세월 동안 외할머니 손때가 묻은 반짝이는 외갓집 마루 같았다. 의자에 앉아 바닥을 만졌다. 감촉이 맨들맨들했다. 솜씨 좋은 목수라 해도 만들지 못할 것 같은 감촉이었다. 양손을 다리와 의자 사이에 끼우고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며 바닥을 문질렀다. 그러자 마음이 편지며 버스가 오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의심과 초조함이 사라졌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 의자에 앉았을까? 의자 위에 있었을 기다림들을 생각했다. 어떤 기다림은 일초가 한 시간 같아 초조하고 설레었을 것이다. 어떤 기다림은 끝을 알 수 없어 막연하고 고통스러웠을 것이다. 의자는기다리는 사람들을 위해 유일한 친구가 되었을 것이다.
기다림엔 머무름이 있다. 머무름은 몸이 아닌 마음이 머무는 것이다. 몸은 움직일지언정 마음의 흐름이 한 곳에 정지해 있어 더디고 초조하다. 그래서 기다림은 늘 외면받는다. 어느 누구라도 빽빽이 적힌 여행 계획에 기다림이란 항목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듬성듬성 도착하는 버스를 기다리고, 연착된 비행기를 기다리고, 어느 유명인이 먹었다는 긴 막대기에 말린 핫도그를 먹기 위해 줄을 서서 기다리는 것처럼계획도 지명도 형체도 없지만 늘 여행의 한 부분이 되곤 한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기다림을 외면한다. 그러나 기다림 안에는 상념이 있다. 기다림의 시간 동안 나누었던 누군가와의 말 한마디, 무심히 들었던 생각, 의미 없어 보였던 풍경, 심지어는 아무 생각 없이 멍하니 보내던 시간들마저헛된 시간이 아닌 것이다.
차 소리가 났다. 거미줄이 쳐진 동그란 창 너머로 버스가 보였다. 무료한 한낮이어서 잠시 게으름을 피워도 되었을 것인데 버스는 제시간에 맞추어 정류장에 멈추었다. 버스에 오르기 전 의자를 보았다. 의자는 여전히 또 다른 기다림을 맞이할 누군가를 위해 빛을 내고 있었다.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근사한 풍경을 보았던 것도, 맛있는 음식을 먹었던 것도 아닌데 기다림은 짧았다. 기다림 끝에서 느끼는 감정은 외갓집을 떠나던 날 빛이 나는 마루 위에서 손을 흔들어주시던 할머니를 보던 마음 같았다. 동그란 창, 웅크린 거미, 누군가 써놓은 버스 시간표. 그리고 반짝이며 윤이나는 의자. 내 기다림의 풍경이 되어준 무심했던 모든 장면들이 마음 한 곳에 남겨져 이별이 되고 있었다. 점점 내 마음 안으로 들어와 소중해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