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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llein Jul 14. 2018

거부할 수 없는 것들

거부할 수 없는 것들을 아는 순간, 우리는 슬퍼하고 미안해하고 후회한다.

비가 내렸다. 온통 세상을 축축하고 기분 나쁘게 하는 비였다. 거실걸을 때마다 실내화 바닥에서 찌걱찌걱 소리가 났다. 여름이 빨리 갔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알고 있다. 바라고 바랄수록 여름은 더욱 덥고 더욱 습하고 더욱 꿉꿉하 나를 들게 할 것이라는 것을. 원하는 속도보다 더욱 천천히 지나갈 것이라는 것을. 래 바라 순간은 짧고, 원치 않 순간은 긴 법이니까.


한의원은 5층에 있었다. 건물에 주차장이 없어 공영주차장에 주차를 해야 했다.

"엄마. 주차하고 얼른 올 테니 잠시만 계세요"
허리가 불편하신 엄마를 한의원이 있는 건물 앞에 내려드렸다. 주차를 하고 나오니 비가 그쳐 있었다. 서둘러 엄마가 있는 곳으로 가고 있는데 휴대폰 전단을 한 아름 들고 있는 청년이 말했다.

"아버님. 새로 나온 휴대폰 보고 가세요"

순간 나는 흠칫 놀랐다. 아버님? 나에게 한 말이 아닐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주에는 유모차를 고 가는 아기 엄마와 태권도 도복을 입은 아이, 양복을 입고 행인들에게 신을 믿어야 한다며 성경구절을 외치는 아저씨. 그리고 나.


청년이 말한 아버님은 내가 확실했다. '어느 정도 나이가 되어 결혼을 하고 학교에 다니는 아이가 있는 가정을 돌보고 책임져야 할 남자' 아주 짧은 시간 즉흥적으로 떠오른 아버님이라는 범위에 내가 포함되는지 생각했다. 결혼도 하지 않았고 아이도 없는데. 그러나 나이는 자신 없다. 충분히 아버님이라 불리고도 남을 나이니까.

손우산을 들고 엄마를 내려드린 곳으로 갔다. 런데 엄마가 없었다. 이곳저곳 찾았다. 그때 어딘가에서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엄마였다. 내가 오기를 기다리시다 서 있기 힘드셨는지 엘리베이터 옆 후미진 계단에 앉아 계셨다. 마는 몸을 웅크리지 않았는데도 작은 아이 같았다. 야위고 힘없는 할머니가 계단에 앉아 나를 는 모습이 아이가 엄마를 기다리는 모습 같았다. 엄마의 모습이 낯설었다. 엄마를 찾았다는 안도감이 아닌 슬픔이 느껴졌다.


누군가의 엄마에게는 할머니라 불렀어도 나의 엄마는 할머니가 아닐 줄 알았다. 팔팔 사이즈의 넉넉한 옷을 입던 엄마였고 꽃과 화초를 사랑했고 튀김과 떡볶이를 좋아하는 엄마였다. 미안하고 죄송했다. 아버님이라 불려도 될 만큼 커버린 나는 아직도 아이였고 할머니라 해도 이상하지 않을 엄마는 그 아이를 위한 엄마라고 생각했던 마음이.


거부할 수 없는 것들이 있다. 세월이 그렇고 세월 따라 변하는 계절과 우리들의 모습이 그렇다. 돈이 많아도 힘이 세도 능력이 뛰어나도 마음대로 되돌릴 수도 멈추게 할 수도 없다. 하염없이 하루하루를 보낸다는 것은 슬프고 애석한 일이다. 그러나 사람에게는 망각하고 외면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 우리는 매일 그 능력의 힘을 빌린다. 하지만 어느 순간 그 능력도 소용이 없어지는 순간이 온다. 망각과 외면 속에서 차곡차곡 쌓인 거부할 수 없는 커다란 덩어리를 접하게 될 때이다. 슬퍼하고 미안해하고 후회하며.


마트에서 장을 보았다. 고구마를 썰고 새우를 소금물에 담가 손질했다. 둥그런 웍에 식용유를 부어 적당히 달궜다. 뽀글뽀글 방울이 올라오는 기름에 가루를 묻힌 고구마와 새우를 담그니 맑은 기름이 파르르 물방울 꽃을 피우며 올라왔다. 맛있게 튀겨지는 소리를 내며 고구마와 새우가 노릇하게 익다. 거실에 계셨던 엄마는 어느덧 주방에 와 계다. 엄마는 힘든데 웬 튀김이냐며 뭐라 하시면서도 설레는 표정으로 말하셨다.

"우리 아들 힘들어서 어째"

나는 방금 건진 튀김을 입으로 불어 엄마 입에 넣어드다.

"맛있.  잘 먹을게 아들"

엄마도 튀김 하나를 내 입에 넣어 주다. 또 슬다. 조금 덜 슬프고 덜 미안할 줄 알았는데.


다음에는 꽃을 선물해 드려야겠다고 생각했다. 엄마는 비싼데 왜 사 왔냐며 뭐라 하실 거면서도 이쁜 화병에 정성스레 꽃을 꽂으실 것이다. 러면 나는 꽃을 보고  웃으시며 좋아하시는 엄마보며 또 슬프고 미안해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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