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 곳으로 떠나기로 했다. 소풍을 앞둔 아이처럼 설레었다. 그러나 떠나지 못했다. 대신 하루짜리 여행을 가기로 했다. 동이 트기 전 짐이라 할 것도 없는배낭을 메고 기차역에 갔다. 잠이 덜 깬 역은 새벽 가로등이 뿜어대는 축축한 빛 속에 고요히 묻혀있었다. 내키지 않았다. 다시 집으로 돌아가 이불속으로 들어갈까 생각했다. 그러나 망설임은 기차가 도착하는 신호가 울리기 전까지만 이었다.플랫폼에 도착하며 기차가 몰고 온바람이 나의 등을 밀었다.나는 마지못해 떠 밀리듯 기차에 올랐다. 깜깜한 세상을 달리던 기차가 검은 터널을 지나는 것을 알 수 있었던 건 세상이 푸르스름하게 변하기 시작할 때였다. 날이 밝자 때 묻지 않은 햇살이 쏟아졌다. 새것 같은 싱싱한 햇살이 여행을 포기하려 했던 마음을 슬그머니 사라지게 했다. 간사하게도 낯선 곳으로 떠나는 것은 그 자체만으로도 좋은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기차가 터널 안으로 들어가자 검은 창 너머에 나를 바라보는 내가 보였다. 나는 나를 바라보는 나에게 말했다. 마음먹은 대로 되지 않는 것. 어쩌면 그것이 진짜 세상의 이치 일지도 모른다고.
군산에도착하면어디를가야할지무엇을 할지 계획이없었다. 군산을검색했다. 오랫동안줄을서야안으로들어갈수있는빵집과 중국음식점에대한이야기뿐이었다. 별수없었다. 발길닿는대로걸을수밖에. 몇개의역을지나도착한군산역은시내에서 떨어져있었다. 버스를기다리는남자에게시내까지걸어가려하는데어느방향으로가야하는지물었다. 걸어서간다는말에남자는당황한듯보였지만, 걸어갈것인지의아해하는기색을보이지않으려애쓰며 친절히 길을알려주었다.시내까지걷는 것은 당황하던 남자의 모습만큼 힘들지않았다. 사람들이많은곳에서는그들처럼 관광객이되었고, 관광객 없는 평범한 일상이 있는 곳에서는 그곳에 사는 사람들 속에서 낯선 이방인이 되었다. 길을 헤매기도 하고 방향을 몰라 두리번거리기도 했다. 어디로 가고 있는지 몰라같은 곳을 다시 가기도 했다. 그러나 당황스럽지는 않았다. 목적지를 정해둔 것이 아니었기에 길을 잃을 이유가 없었다.
늦은오후. 좁은골목길을지나 도착한 신호등이 필요 없을 만큼 아담한사거리에는음반가게가있었다. 아직도이런곳이있나싶어 하며아주먼나라에처음도착한사람처럼호기심가득한표정으로가게안을두리번거렸다. 촘촘히꽂혀있는LP와 CD 음반은과거의기억을고스란히 생각나게했다. 그곳에서 한동안 시간여행을 한 후밖으로 나왔을땐낮게어둠이깔려있었다. 돌아가야할 때라는 생각이들었다. 어느방향으로가야할지몰라 두리번거리는데살랑하고 바람이불었다.냄새가났다. 냄새는포근한비누냄새나세련된향수냄새 같은 것이아니었다. 그것은인위적으로는만들수없는타닥거리는구들장이 있는 아궁이불에밥이지어지며내는저녁밥냄새였다. 집으로가기 위해기차를기다리며 다시새벽으로돌아가 하루를 여행한 이곳으로 오는기차를탔으면좋겠다고생각했다. 그러나 상상은 현실이 될 수 없었다. 나는 집으로 가는 기차를 탔다.흐릿한가로등빛이있는역으로 돌아왔을 때 내마음은쓸쓸하기도 하고슬프기도 하고사랑을하는것같기도했다. 그리고 며칠후나는짧은글을썼다. 좋아하는사람에게고백하듯 하루짜리 여행에 대하여.
군산.
작지만 깨끗하니 알록달록 이쁘면서 과거를 잘 정돈하여 놓은 도시.
다녀온 지 몇 날이 지났는데 문득문득 생각나는 게 그곳에서의 삶도 궁금한 것이 하루로는 너무 짧았다는 생각이 드네.
나도 몰랐네.
군산이 이리 마음에 남을지는...
- 2014.10.05.
우리는 매일스친다. 너무도 많이 스쳐잃어버리고흘려버리기일쑤다. 그러나그중에는꾹힘주어도장을찍은것처럼선명하게마음에남아잊히지않는것이있다. 내키지않아 하며떠난여행이었지만나도모르게 정이 들어 잔잔히 스치던감정들과이름모를거리에서맡았던냄새,살갗에닿았던차갑지않은선선함 같은 것들.그감정이무어냐묻는다면 그날 그곳을 떠나며 느꼈던 것처럼 그것은사랑일수 있고그리움일수 있고슬픔일수도있을 것이다.
그날의기억을떠올리며생각했다. 지난기억은꼭그리워해야만하는것이아닐수도있다는것을. 비록 지금은 그곳으로 떠날 수 없을지라도 세상이사라지지않는한아름다웠던기억은언젠가는꼭이루어질희망이될수도있다는것을. 그희망은살아갈힘이되고의미가되어 삶을 이어갈 또다른희망을만들수도있다는것을. 그래서 오늘그리워만 했던 몇해전 짧은여행이내마음어디인가에서 나와, 희망이되어버렸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