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MK Aug 31. 2023

이민 9년 차, 캐나다에서 살면 자연스럽게 영어가 늘까

영어실력과 이민생활에 대한 착각


처음 캐나다 땅을 밟았을 때를 기억한다. 2014년 8월 말, 여름이 막 끝나가고 가을이 찾아오는 무렵에, 달랑 수하물 캐리어 2개를 들고 캘거리 공항에 도착했다. 캐나다행 비행기를 기다리던 인천공항에서는 주위에 한국말만 들렸는데 여기 캘거리 공항에서는 들리는 모든 게 영어였다. 커피를 들고 서로 웃으며 이야기하는 흑인 공항 직원들, 여행 중인지 피곤해 보이는 가운데 아이들과 영어로 대화하는 백인 아버지, 유창한 영어로 대화하는 동양인 커플. 나도 저들처럼 캐나다에 오래 살면 유창한 영어를 할 수 있다고 생각하며 학생비자가 든 파일을 꼭 쥔 채 공항밖을 나온 기억이 난다. 


어느덧 캐나다 온 지 9년이 되었다. 예전 한국에 살았을 때 미국, 캐나다 영주권자라고 하면 모두 원어민처럼 말하는 줄 알았다. 미국과 영국 고등학교에 2-3년만 보내고 온 친구 2명이 있었는데 그들의 영어는 발음도 표현력도 원어민 수준에 가까웠기 때문이다. 군대에서도 캐나다 대학 중인 동기들이 있었는데 그들의 영어 모두 훌륭했다. 하지만 지금 내 영어 실력을 돌이켜 보면 그들의 영어만큼이나 유창하지 않다고 느낀다. 영어권 국가에서 산지 3년도 안된 친구들의 영어 실력이 유창하면, 캐나다에서 9년 살고 있는 나의 영어는 그들보다 3배는 더 뛰어나야 하는데, 부끄러운 말이지만 오히려 거기에도 못 미치는 수준인 것 같다.


이민 9년 차, 나의 영어실력은 어떨까


나의 영어실력이 사는 기간에 비례할 줄 알았다. 하지만 나의 경험상 영어는 그렇게 쉽게 늘지 않았다. 영어를 4 영역으로 나누자면 듣기, 읽기, 쓰기 그리고 문법이 있는데 주관적으로 평가한 나의 영어실력 향상 정도는 아래와 같다.


리스닝

지난 9년 동안 제일 많이 늘었던 영역인 것 같다. 커피를 주문하는 것에서부터 인터넷 설치, 그리고 어린이집이 어떻게 운영되고 정부 보조금 혜택 등 이런 내용들을 오해하지 않고 잘 이해하려면 귀를 쫑긋 세우고 잘 들어야 한다. 그렇게 하기를 2-3년 정도 하다 보니 이제 웬만한 일상생활 영어는 잘 들렸다. 업종마다 쓰는 표현들이 비슷비슷하고, 한국에서 영어를 배울 때는 전혀 몰랐지만 캐나다 사람들만 쓰는 일상표현들을 많이 들으니 익숙해졌다. 아마 대다수의 이민자들도 나와 비슷한 생각이지 않을까 싶다. 그래도 아직까지는 많이 부족하다. 실제로 대화하는 것보다 전화로 듣는 영어, 전문적인 단어가 많이 들어가 있는 표현들, 익숙하지 않은 악센트가 있는 영어, 어려운 내용을 담고 있는 영화를 이해하는 것은 쉽지 않은 것 같다.


스피킹


리스닝 보다 향상되는 속도가 늦었다. 대신 매일 접하는 구어 표현들은 빠르게 배우게 된다. 이를테면 학교에서 배운 “you’re welcome” 대신 “No worries”를 많이 쓰게 되고 “Thank you” 대신 “Cheers”를 쓴다. 스피킹과 함께 향상되는 건 근거 없는 자신감이다


예전에는 나의 영어가 완벽하지 않아서 많이 위축되고 피하는 느낌이었다면 지금은 내 문법과 발음이 안 좋다 라도 내가 지금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나조차 이해할 수 없지만 계속 말을 할 수 있는 일종의 편안함이라고 할까? 


스피킹도 리스닝처럼 어느 정도 자연스럽게 느는 것 같다. 우리가 이국땅에서 먹고 살 정도의 필수 기본영어까지는 말이다. 향상되기까지 많이 힘들고 고난이 있을 수 있지만 빨리 그 터널에서 나오기 위해 우리의 스피킹도 향상될 수밖에 없는 것 같다. 음식을 시켰는데 다른 게 나오거나, 갑자기 인터넷 요금이 많이 나와서 따져야 할 때, 집주인과 불합리한 일로 내 권리를 주장할 때 우리의 스피킹은 급속히 향상된다.


그리고 얼마나 부끄럽 없이 영어를 많이 말하는지에 따라서 발전 속도가 다른 것 같다. 나는 쑥스러움이 많고 내향적이며 말이 정말 없는 INFJ이다. 여기 왔을 때 처음에는 너무 빨리 말해서 무슨 말을 하는지 몰라서, 대략 눈치로 듣다가 익숙한 단어 몇 개가 들리면 스스로 문맥을 창조했다. 상대방이 "do you understand what I'm saying?" 하면 나는 곧 "yeah, yeah" 하고 어색한 미소를 지었지만, 상대방의 말을 이어갈 수가 없었다. 테니스를 치는 것과 같이 말을 주고받는 게 아닌 내가 하는 영어는 거의 야구에 가까웠다. 상대방이 공을 던지면 받는 나는 그 공을 잡는 포수였고 그 공은 계속 글로브에 있었다. 그래서 그만큼 많은 사람들과 대화하지 못했고 발전속도도 많이 더딘 것 같다. 기본적인 의사소통은 할 수 있지만 일을 하는 데 있어 전문적인 표현을 요하거나 나의 생각을 정리해서 회의에 발표를 해야 할 때면 아직까지 대본을 쓰고 그것을 읽는 것이 더 편하고 도움을 준다. 원어민처럼 바로 자기 생각을 간단명료하게 말하는 것은 많이 어려운 것 같다.


즉, 영어 때문에 내가 괴로운 상황과 더불어 부끄럽 없이 영어로 말하기 좋아하는 성격은 스피킹의 발전에 큰 도움을 주는 것 같다.


라이팅

이 분야는 오히려 한국에서 학생일 때 더 잘했던 것 같다. 예전에 잘 알던 단어들은 지금은 생소한 단어가 되었고 예전에 문법을 신경 쓰면서 영작문을 했더라면 지금은 문법파괴 수준의 작문을 하고 있다. 오히려 그만큼 이 분야는 여기서 학생이거나  많은 서류들을 읽고 글을 쓰는 일을 하지 않는 이상 점점 퇴화되는 것 같다

나의 경우, 일하면서 보고서를 쓸 일도 없고 살면서 영어로 글을 써야 할 기회가 점점 작았다. 내 인생에서 라이팅의 최고 레벨은 아이엘츠 공부할 때가 아닌가 싶다. 

  

문법

한국에서 배웠던 영문법은 여기 오면 점점 파괴가 된다. 처음 놀랐던 것은 여기서 대학을 다닐 때 영어 문법 테스트를 했었는데 많은 원어민 학생들이 기준점에 못 미쳤서 다시 테스트를 봐야 했던 사실이다. 그 문법 테스트 수준은 아이엘츠나 고등학교에서 배운 문법 실력정도였는데도 말이다. 사실 문법자체를 아는 것은 그렇게 중요하지 않은 것 같다. 여기서 가장 헷갈리는 영어는 언제 전치사를 써야 할지 인데 어떨 때는 on을 쓰고,  off를 쓰고 또 이 2가지가 동시에 쓰일 때도 있어서 자연스럽게 체득하는 게 문법 자체를 공부하는 것보다 더 나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도 문법상 왜 인지 모르지만 '나는 사과를 먹는다'라고 말하지  '나는 사과가 먹는다'라고 말하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 그리고 9년간 살면서 느낀 것은 여기 사람들은 he, she 구분은 확실한데 are , is는 앞에 주어에 상관없이 자유롭게 쓰는 원어민도 많은 것 같다. 결국 우리의 영어도 살아가면서 문법상 완벽할 필요가 없다는 걸 느낀다.


결국 영어실력은 이민생활 기간이 아닌 불편한 정도에 따라 비례한다


결국 정말 중요한 사실은 우리의 영어는 우리 몸이 영어 때문에 불편하다고 느낄 때, 영어 때문에 스트레스받고 매일 생활이 잘 안 될 때 빨리 향상됨을 느꼈다. 이를테면 커피를 시키는데 내 주문을 못 알아들어서 창피함을 당한 경험이 있거나 남들은 다 알아듣는데 나만 영어를 못 알 들어서 소외되는 느낌을 받을 때 말이다. 이럴 때 우리의 몸은 더 긴장해서 그만큼 상대방이 말하는 하나하나에 집중해서 듣게 되고 말할 때도 신중히 말하게 된다. 영어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기 때문에 집에서 조금이라도 영어책을 더 보게 되고 사전을 검색하게 된다.


하지만 이 영어도 정체되는 순간이 있다 어느 정도 생활에 불편함이 없어졌다고 느끼는 그 순간, 영어로 스트레스받지 않고 내 발음과 표현이 부정확해도 전혀 부끄러울 게 없고 내가 원하는 메시지가 잘 전달된다고 느낄 때 영어 실력이 정체되는 것 같다. 매일 듣는 말, 하는 말이 비슷한 말이고 표현력은 늘지 않지만 살아가는데 지장이 없기에 우리 몸이 더 영어를 배워야 하는 필요를 모르기 때문이지 않을까?



결국 유창한 영어 실력은 이민생활에 도움이 되지만 이민 삶을 사는데 전부는 아니다


캐나다는 한국과는 다른 게 많은 이민자들이 살고 있는 나라며 그만큼 다양한 억양의 영어가 존재한다. 호주, 영국식 영어부터 인도, 필리핀식의 영어까지. 그리고 그들의 영어 실력도 제각각이지만 잘 살아간다. 여기 어려서 이민을 왔지만 우리가 생각한 만큼 영어가 뛰어나지 않은 사람들도 많으며 반대로 2-3년 밖에 되지 않았지만 영어를 유창하게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유창한 영어 실력이 이민 생활에 큰 도움을 주는 것은 사실이지만 뛰어난 영어실력 없이 잘 살고 있는 이민자들을 보면서 영어가 이민의 필수조건이 아님을 느끼게 된다. 처음 잘 안 되는 영어로 낯선 땅에 적응해야 하는 것이 힘든 일이지만 이런 고난이 있어야 영어도 자연스럽게 늘고, 우리가 이국땅에서 생활할 정도의 필수 영어는 이런 고난을 지나고 나면 어느 정도 늘게 된다. 그 이후 유창한 영어 실력은 자기 하기 나름인 것 같다.


영어는 중요하다. 하지만 영어 때문에 이민을 망설이는 분들에게, '내 영어 실력은 형편없어서 이민은 생각도 못하겠다'라고 생각하시는 분들도 이민의 조건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 볼 수 있는 글이 되었으면 좋겠다.


https://www.youtube.com/@duhwisanyang


매거진의 이전글 캐나다 이민 6년  - 오해와 진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