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첫 번째 정규직-은행이야기
나는 지금 탯줄이 떨어진 지 한 달이 채 안 되는 아기를 보며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매일매일 내가 없으면 잠조차 혼자 자지 못하고, 기저귀도 혼자 갈지 못하는 핏덩이 아가를 보살피며 말 그대로 방콕 중이다.
지금 내게 주어진 직업은 ‘무직’이고 ‘주부’이며 ‘엄마’가 전부이다.
학창 시절 내내 반짝거렸고, 부모님의 기대를 한 몸에 받았었지만, 결국 나의 직업은 저 3가지로 귀결되었다.
물론 앞으로 나의 길은 나도 모른다.
그래도, 그렇게 내가 열심히 쌓은 ‘무엇’인가는
그저 드라마 로맨스는 별책부록에서 이나영이 찢어버린 학위증, 경력증명서와 같은 상태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내가 쌓아온 스펙으로 나는 이 아기를 키워낼 자신이 없다.
그래서 나의 29살 짧은 인생 소견으로 볼 때,
스펙으로는 어떤 국도 끓여 먹을 수 없다고 생각한다.
나는 소위 말하는 거의 모든 스펙을 다 가지고 있다.
대학시절 열심히 한 덕에 인턴만 4번, 공모전 입상경력, 동아리, 기자단, 전공자격증, 영어성적, 한국사, 대학원까지... 교환학생 빼고 없는 것이 없다.
그만큼 누구보다 치열하게 대학생활을 했고, 꿈과 목표를 찾고자 노력했다.
하루를 초단위로 사냐고 말하던 친구의 이야기가 생각난다. 그렇게 나는 나를 찾고자 최대한 많은 경험을 할 수 있는 환경에 나를 던졌다.
그런 노력 덕이었을까. 대학원 졸업도 전에 은행에 취직이 되었고, 연수원에 들어갔다.
그리고? 연수 끝나고 1달을 갓 넘기고 퇴사.
이유는 “손님을 응대하는 것이 나와 맞지 않아서”와 “전공을 살리는 일을 하고 싶어서”였다.
하지만, 가장 큰 이유는 소위 사람들이 말하는 안정적이고 든든한 직장을 가졌음에도, 평생을 걱정 없이 일할 수 있는 직장임에도, 나는 그 평생을 그 자리에 그 위치에서 그 일을 하면서 살아갈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인턴 때는 그래도 기한이 있었다.
이때까지만 열심히 직업’체험’을 하면 되는 것이었다. 인턴은 계약도 종신이 아니었기에 책임 또한 딱 계약기간까지 였다.
그러나, 졸업 후 내가 들어간 직장은 앞으로 ‘정년까지’를 보내는, ‘정년까지’라는 그 기간의 무게에 책임을 져야 하는 곳이었다.
그래서 나는 기한의 무게에 책임을 질 자신이 없어 그로부터 도망쳤다.
나의 첫 번째 정규직이었던 은행 일은 나의 생각과 기대와 많이 달랐다.
나는 부동산 투자(특히, PF; Project Financing) 업무에 관심이 있어, 향후 은행에서 PF 일을 하고 싶었고 은행에서 내가 원하는 업무를 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신입행원은 우선적으로 영업점 경험을 거쳐야 했기에 점포로 배치되었다. 점포에서 행원이 맡은 일은 수신, 여신, 외환 전부였다.
물론 여신(대출) 업무는 내가 하고자 했던 일과 유사한 부분이 있었지만, 내가 궁극적으로 원하는 일과는 많이 달랐다.
은행에서의 일과는 아래와 같았다.
- 새벽같이 출근하여 금고문을 오픈
- 점포의 영업목표 설정 및 간단한 회의를 진행
- 개점 전 고객응대 준비를 마친 후 9시에 오픈
- 9시~4시까지 고객응대(수신, 여신, 외환)
- 5시까지 잔여 고객 응대
- 5시 이후 시재 맞추고, 여신 관련 추가 업무, 고객관리 등 업무 수행
위와 같은 업무가 매일매일 반복되었다.
처음이야 돈을 만지는 일이었기에 매일매일 긴장의 연속으로 업무를 수행하였다.
하지만 결국 지속적인 동일 업무의 반복이었고, 나는 업무가 익숙해지자 바로 매너리즘에 빠지게 되었다.
은행에서, 특히 영업점에서의 나의 일은 사실 내 전공과도 내가 원하던 일과도 거리가 많이 멀었다.
하고 싶던 일도 아니었고, 해야 하는 당위성도, 이 일을 평생을 하고 싶다는 마음도 생기지 않았다.
(물론 배가 불러서였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너무나 쉽게 수습기간이 끝나기도 전에, 나는 은행에 사직서를 내려놓고 도망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