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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미의 colorful life Sep 24. 2021

14평 투룸에 2개의 로봇청소기

나의 훌륭한 반려 가전

이 세상에는 두 가지 종류의 사람이 있다. 설거지를 좋아하는 사람과 요리를 좋아하는 사람.


설거지를 좋아하는 사람은 요리를 안 좋아하고 요리를 좋아하는 사람은 설거지를 안 좋아한다. 논리 없는 양분법적 세계이고 개똥철학이지만 은근 정확한 것도 같다. 


마치 오이 liker는 당근 hater이고 당근 liker는 오이 hater라고 세상 사람들을 양분하는 것처럼 단순하고 명료한 세계관이다.  


어쨌거나 이 세계관 속에서 나는 당근 liker이자 오이 hater이고, 요리 liker이자 청소 hater이다. 워낙 청소에 재주도 취미도 없어서 청소하는 게 고역이었다. 부자가 되면 정기적으로 가사도우미를 고용하느라 다짐한다.




방 세 개의 아름답고 넓은 집에 이사 온 후 로봇청소기 입양을 심각하게 고민했다. 로봇청소기의 효능이야 어느 정도 알고 있었지만 4~50만 원에 달하는 소형 가전을 구입하는 건 주변 사람의 조언을 구할 만큼 고민되는 일이다. 투룸에 혼자 살면서 로봇청소기를 가지고 있는 회사 후배에게 ‘살까요 말까요' '살말살말’ 조언을 구했다. 후배의 대답은 단호했다.     


"꼭 사세요. 교양 있는 현대인이라면 필수품입니다." 

    

현대인까지나? 결혼한 지 얼마 안 된 신혼이면서 역시 로봇청소기를 가지고 있는 또 다른 회사 후배에게 조언을 구했다. 대답은 더욱 단호했다.      


"강추예요. 제 인생은 로봇청소기를 사기 전과 사고 난 후로 나눌 수 있을 것 같아요.”    

  

아니 BC와 AD, 기원전 후처럼 인생을 나누는 분기점으로 쓰일 정도의 가전이라니. 점점 사는 쪽으로 마음이 기울었다.


어떤 나라 어떤 브랜드의 청소기를 살지 폭풍 검색이 시작되었다. 미국으로 중국으로, 한국으로 대륙을 오갔다. 헤파필터의 정의와 물청소 여부와 AS 가부, 가격까지 비교했다. 로봇청소기와 관련된 논문을 작성하기 1분 전에 중국 브랜드의 로봇청소기를 사들였다. 중국의 브랜드명과 님이라는 일본어 ‘사마’를 조합하여 다소 동북아 대통합스러운 치사마로 명명했다. 판매사에서 준 눈 모양 스티커도 붙였다.      




마침내 손에 얻게 된 치사마의 성능은 현대문명이 낳은 기적이었다. 후배들의 말은 전혀 과장이 아니고 Fact 그 자체였다.


치사마는 영리한 친구였다. 집안을 요리조리 살피더니 집안 여지도를 만들어냈다. 치사마가 만들어낸 지도가 우선은 내가 그린 지도보다는 훌륭했다. 흔들의자 등 청소하기 곤란한 구역을 청소 금지구역으로 설정해두면 그곳을 피해 청소를 했다. 물청소, 파워 청소, 저소음 모드 등 가지고 있는 기술도 대단했다.


치사마는 성실한 친구였다. 침대 아래라고 주저하는 법이 없었다. 한번 청소를 시작하면 요령을 피우지 않고 집안 전체를 청소했다. 치사마는 격일로 저녁 5시 내가 퇴근하기 전에 집안 구석구석을 닦는다. 구석구석 내 손이 닿지 않고 시간의 흔적처럼 쌓인 먼지를 흡입한다. 우습게 들릴 수도 있지만 회사에서도 앱으로 열 일하는 치사마의 우직한 움직임을 확인하면 기분이 좋았다.


치사마는 겸손한 였다. 청소 전에는 '청소는 언제나 즐거워'라고 파이팅 넘치게 의지를 다졌다. 청소를 끝내면 공치사도 하나 없이 원래 자리로 돌아가 다음 청소를 위해 충전을 한다. 힘을 모은다.


처음엔 의구심 어린 얼굴로 미심쩍게 청소하는 것을 지켜보던 엄마도 금방 치사마의 팬이 되었다. 엄마는 청소하는 치사마의 뒤꽁무니를 쫓아다니며 길을 터주었다.


본가로 내려간 엄마는 가끔 치사마는 요즘도 열일을 하고 있냐며 안부를 묻기도 했다. 그리하여 치사마는 이름 없는 가전에서 반려 가전이자 일종의 가족이 되었다.




이후 회사에서 물걸레 전용 청소기를 가족의 날 기념 선물로 줘서 이제 로봇청소기는 2개가 되었다. 이제는 방 세 개짜리 아파트에서 14평 남짓 투룸으로 이사했지만 청소기들은 시간과 에너지를 아껴주는 좋은 친구들이다.


덕분에 싫어하는 집안일을 하지 않으며 아낀 시간과 에너지는 고요한 휴식에 쓰인다. 지금 확인해보니 2년 동안 559번의 청소를 244시간의 시간을 아껴주었다.


사람들은 눈이 달리거나 인공지능 기능이 있어 말을 거는 인공지능 가전을 그렇지 않은 가전보다 A/S 할 확률이 높다고 한다. 말하는 압력밥솥 쿠쿠에게 '고마워'라고 감사 인사하는 외숙모처럼 말이다. 엄마는 치사마가 고장 날 때를 대비해 치사마 전용 적금을 들라신다. 매사가 야단스런 엄마의 농담이 깃든 진담이다.


치사마, 앞으로도 나의 집을 부탁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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