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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미의 colorful life Mar 24. 2022

남은 피자는 필요 없습니다

자취생 아니고 독거인의 식사

옆 부서에서 피자를 돌렸다.



3~4시경 회사에서 단체포상받은 옆 부서가 피자를 이웃 부서에 돌렸다. 테이블에 오손도손 모여 서서 피자와 콜라를 먹고 나서 피자가 몇 조각 남았다. 누군가가 이야기한다.


"자취생 누구야? 자취생은 집에 가면 먹을 것 없잖아. 집에 가져가."


끼니를 못 챙길 것을 우려해 챙겨주는 말인 것을 안다. 하지만 대학교 입학을 위해 상경하면서 시작된 독립생활이 어느덧 10년을 훌쩍 넘어가는데 자취생이라니! '자취'와 '학생'의 합성어이던가. 이제는 지인 중에 박사와 교수님이 있는 정도의 연배에 이르렀는데 자취생은 너무 젊은 호칭이다. 지나가는 식으로 답한다.


"자취생 아니고 독거인이라고 불러주세요. 이제 혼자 산지가 십수 년이 지났습니다."






피자는 감사하지만



웃자고 한 예능에 다큐로 대답하고 남은 피자는 묵묵히 챙긴다. 물론 챙겨준 사람으로서는 혼자 사는 사람은 끼니 해결이 어려울 것이라는 생각에 마음 써 준 것이다. '자취생'이라는 워딩도 혼자 사는 사람을 의례 그렇게 불러왔으니 그런 거고. 하지만 나이와 독립 경력과 관계없이 혼자 사는 젊은이를 뜻하는 '자취생'혼자 사는 삶은 불완전하고 어리고 어리숙하고 아직 결혼하기 전의 미완의 삶이라는 함의가 담겨있다.


하지만 우려와 달리 잘 먹고 잘 산다. 4인 가족의 식사처럼 풍성하지는 않지만 탄 단지(탄수화물 단백질 지방) 맞춰서 삼시 세끼 잘 먹고 제철 과일 때맞춰 사 먹고 지낸다. 영양제도 남부럽지 않게 먹는다. 독거인은 잘 먹고 잘 살고 있다. 물론 남은 피자는 감사합니다.


 




오늘 저녁 뭐해? 자취생은 집에 가도 할 일 없잖아



퇴근 전 분위기를 보아하니 급 번개 회식이 진행 중인 것 같다. 눈치 챙기고 가방을 쓱 싼 다음 자연스럽게 퇴근하려는 찰나 주최자가 말을 건넨다.


"오늘 저녁 뭐해? 자취생은 집에 가도 할 일 없잖아."


할 일이 많다. 일주일에 2번 이상은 운동을 하고, 동네 친구들과의 약속이나 은행, 동사무소, 세탁소 픽업, 관리소 문의, 택배 반품 등 개인적인 잡무도 있다. 함께 처리하는 동거인이 없기 때문에 혼자의 삶은 꽤 분주하다.


이렇듯 혼자의 라이프스타일은 전후 사정없이 위로나 보살핌의 대상이 되거나 여럿의 라이프스타일에 비해 덜 중요하지 않은 것으로 종종 취급받는다.






기혼자의 기념일 속에서



기혼자들의 기념일은 종종 존중받는다. 큰 아이의 입학식, 작은 아이의 돌잔치, 결혼기념일, 시아버지의 생일. 장모님의 장례식. 회사에서는 경조금을 지급하고 회사 동료들은 근태에 대해서 Excuse를 해 준다. 기혼자들의 라이프스타일은 공식적으로 인정받고 있다.


나 또한 친구의 결혼식, 선배의 돌잔치, 상사 장모님의 장례식 속에서 헤매다 혼자를 위한 기념식은 없나 생각해보게 되었다.






독거인은 자신을 잘 챙기자


사회에서 혼자의 라이프 스타일이 공식적으로 존중받지 못할지라도  언젠가 1인 가구가 지배적으로 늘어난다면 '자취생'을 대체할 만한 심박한 단어가 공공연히 사용될 것이다. 그 전까지만이라도 우리는 자기 자신을 잘 챙기고 보살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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