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 셋과 지구별 여행 중
20대의 나는 혼자 하는 여행을 좋아했다. 한 달 동안 친구와 함께 떠났던 유럽 배낭여행에서도, 3일 중에 하루는 혼자 다니고 숙소에서 친구와 만났다. 같이 간 친구도 나와 비슷한 성향이었기에 우린 한 달이라는 긴 여행을 무탈하게 마칠 수 있었다. 캐나다, 멕시코, 대만, 터키, 제주도, 여수, 통영 등을 혼자 다녔다. 친구와 함께 갈 때도 있었지만, 여행을 거듭하면서 나는 혼자 떠나는 게 더 잘 맞는다는 것을 알았다.
주변 친구들은 내가 체력도 좋고 여행도 좋아하는 사람으로 알고 있지만, 사실 나는 여행을 좋아하는 사람은 아니다. 그럼에도 왜 그렇게 여행을 다녔냐고 묻는다면, 그당시 내가 읽었던 책들의 영향 때문일 것이다. 내가 읽은 책 속의 작가들은 여행을 통해 새로운 세상을 만났고, 여행을 통해 인생을 깨닫고, 자신을 찾았다고 했다. 내가 그런 책들만 골라봤을지도 모르겠다. 만약 여행의 무용에 관한 책을 봤다면 여행을 떠나지 않았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한다.
"여행을 가서 나를 찾을 거야!"
그런 허무맹랑한 다짐으로 20대 초중반에 여행을 떠났다. 하지만 그렇게 몇 번의 여행 후 깨달은 건, 여행을 간다고 해서 나를 찾을 수 있는 건 아니라는 사실이었다. 파랑새를 찾기 위해 멀리까지 헤맸지만, 결국 파랑새는 우리 집 마당에 있었다는 옛이야기처럼, 나는 내 안의 나를 찾겠다고 수천 킬로미터를 떠돌아다녔다.
나 자신을 찾으려고 떠난 여행에서 나는 나를 데리고 다니며 물었다.
'뭘 먹을까? 어디 갈까? 이제 뭐 하고 싶어?'
수많은 선택지 앞에서 나에게 질문을 던지고, 우여곡절을 통해 나의 취향을 발견하고, 내가 잘못 내린 선택을 복기하고 수정해 나가며 나는 나로서 성장했다.
낯선 공항에 도착해서 숙소까지 찾아가는 여정, 아침에 숙소에 나왔을 때 보이는 낯선 거리와 사람들, 어디로 가야 할지 몰라 머뭇거리던 순간들, 막막함. 오늘은 무얼 해야 하지? 여행지에서 설레일 순간들이 나에게는 막막하게 다가왔다. 예측되지 않는 상황에서 나는 위축됐다. 그래도 여기까지 온 나의 시간과 노력이 아까워 몸이 힘들어도, 날씨가 궂어도 꾸역꾸역 밖으로 나가서 저녁이 되면 돌아왔다. 막막했던 하루를 채우고 돌아오면 뿌듯했다. 하루 이틀이 지나면서 점점 그곳에 익숙해졌고, 그럭저럭 잘 다닐 수 있게 됐다. 나중에 심리검사를 해보니 나는 완전한 ‘계획형 인간’이었다. 요즘은 스마트폰으로 실시간 정보도 얻을 수 있지만 내가 혼자 여행을 다녔던 시절에는 종이지도와 운을 가지고 불확실함에 몸을 맡기며 여행을 다녀야 했으니 불안할 수 밖에 없었다.
옆에 대화할 사람이 없다는 건, 그 말들을 나에게 건다는 것이다. 나는 여행하는 동안 나에게 끊임없이 말을 걸었고 그 순간과 생각들이 나를 만들어주었다. 그 당시에는 스마트폰도, 인터넷도 하기 쉽지 않은 환경이었기에 가능했던 일이었다. 지금이라면...혼자 여행을 가도 나에게 말 걸 시간이 있었을까? 매 순간 핸드폰으로 정보를 찾고, 예약하고, 친구와 가족들에게 연락하느라 바빴을 것 같다.
이번 치앙마이 여행에서 내가 꼭 하고 싶었던 건 나 혼자만의 시간 가지기였다! 이틀에 한 번은 아이들이 깨기 전에 혼자 산책을 하거나 카페에 가서 커피를 마셔야겠다고 다짐했다.
아이들과 해외여행은 6번째지만 한 번도 혼자 있었던 적이 없다. 그렇게 혼자 여행을 좋아했었는데 10년 동안 혼자 여행을 다녀본 적도 없다. 그래서 남편에게 나 혼자 나가겠다고 말하니 처음에는 나를 이해하지 못했다. 그렇지만 이번에는 꼭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고 싶었다.
그렇게 나는 이른 아침에 혼자 되었다. 단 2시간의 자유 시간이었지만 숙소 앞에서 보는 낯선 거리, 새벽의 서늘한 공기, 부지런히 어딘가로 향하는 현지인들의 모습들을 보자 20년 전 내 안에 있던 여행자가 깨어났다. 정해진 곳은 없었다. 게다가 그 순간 내 스마트폰은 데이터가 되지 않는 고철 덩어리였다. 인터넷이 되지 않는 스마트폰을 들고 있자니 당황하고 불안했지만, 예전에는 스마트폰 없이 잘만 다녔었는 걸. 그 고철 덩어리는 가방에 넣었다. 20년 전에 느꼈던 기분으로. 마음은 위축됐지만 티 내지 않으려고 어깨를 쭉 펴고 씩씩하게 걸었다. 그 모습은 20년 전 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