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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아지와 고양이와 코끼리

아이 셋과 지구별 여행 중

by 오로시

치앙마이에는 유독 개와 고양이들을 자주 마주친다. 제법 체격도 좋고 건강해 보이는 아이들이다. 길거리에서 마주친 강아지들이나 사원에서 본 덩치 큰 개들도 사람들은 사람들 틈을 자연스럽게 오가며, 피곤하면 아무 데서나 몸을 뉘고 낮잠을 잔다. 따뜻한 기후 덕분에 얼어 죽는 동물도 없겠지만, 사람들의 성향이 온화한 나라에서는 동물들도 순한 것 같다. 살상을 금지하는 태국의 종교인 불교도 영향을 주었을 것이다.

15년 전에 푸켓에서 코끼리 쇼를 본 적이 있다. 예전에는 코끼리 등에 사람이 올라타 트레킹을 하거나 훈련된 쇼를 보는 일이 흔한 일이었다. 그 과정에서 얼마나 많은 조련과 학대가 있었을지는 보지 않아도 알 수 있다. 그 당시에는 아무 생각 없이 코끼리 쇼를 봤지만, 요즘은 동물을 학대하는 공연이나 체험은 점점 사라지고 있다.



이제는 코끼리를 자연으로 돌려보내 보호하는 시설들이 생겨나고 있다. 치앙마이에서 우리가 방문한 곳도 그런 보호소 중 하나였다. 산속에 있어 이동이 쉽지 않았기에 투어 프로그램을 신청했다. 아이들이 어려 잘 따라갈 수 있을지 걱정됐지만 투어 업체에서 괜찮다고 해서 가기로 했다. 호텔 앞으로 픽업 차량이 오고, 약 한 시간 정도 산속을 달려 도착한 곳이 바로 코끼리 보호소였다. 도착하자마자 활동복으로 갈아입고, 본격적인 체험이 시작되었다.

보호소에서 설명을 해주는 가이드는 20대 초반의 밝고 씩씩한 대학생이었다. 여행 관련 학과에 재학 중이며, 이곳에서 인턴 중이라고 했다. 본격적으로 활동에 시작하기에 앞서 가이드가 코끼리에 대해 간단히 설명을 해준다. 수컷 코끼리는 혼자 생활하고, 암컷은 무리를 이루며 지낸다고 한다. 암컷 무리의 우두머리는 가장 나이가 많은 '할머니 코끼리'라고. 암컷과 수컷은 번식기 동안만 숲에서 만나 교미하고, 임신 기간은 무려 2년이다. 10달을 품고 있어도 힘든데 2년이라니... 아기 코끼리를 품고 있을 어미 코끼리를 생각하니, 내 마음이 괜히 짠했다. 우리가 방문한 보호소에도 임신 1년째인 코끼리가 있었다. 뱃속의 아기 코끼리가 태동하는 것을 보기도 했다. 그 예비 엄마 코끼리에게 마음이 쓰여 먹이를 줄 때 그 코끼리에게 더 주게 됐다. 코끼리는 초식동물이지만 소, 사슴처럼 되새김질하지 않기 때문에 소화 효율이 낮다. 코끼리는 섭취한 것의 약 40%만 소화가 가능해서 하루 종일 많은 양의 식물을 먹어야 한다.

우리의 첫 번째 활동은 코끼리 소화제 만들기였다! 가이드가 재료를 하나씩 소개했는데, 사람도 먹을 수 있는 재료들이었다. (가이드는 재료를 설명해 주면서 직접 먹었다)각설탕, 바나나, 생강, 풀 같은 재료를 절구에 넣고 찧은 후, 대나무 껍질에 싸면 완성이다. 쉬워 보였지만 각설탕 크기가 크고 잘 부서지지 않아 쉽지 않았다. 우리가 만든 소화제와 함께 풀, 바나나, 수박, 사탕수수가 담긴 음식통을 들고 코끼리들에게 갔다. 코끼리들은 지붕이 있는 그늘진 공간에서 여유롭게 지내고 있었다.


음식을 앞에 내밀면 코끼리들이 코로 받아 간다. 음식을 들고 '봄봄!'하고 말하면서 직접 입에 넣어줄 수 있다고 했지만, 코끼리에게 너무 가까이 가려니 겁이 났다. (코끼리는 똑똑한 동물이라서 훈련을 통해 간단한 명령을 이해하고 수행한다고 한다.) 가까이 가지 않아도 코끼리는 능숙하게 코로 음식을 집어 들었다. 코끼리의 코는 정말 신기했다. 정교한 손처럼 정밀하게 움직이며 아주 작은 풀 같은 것들도 잘 집어들었다. 코끝의 근육으로 감싸서 입에 쏙 넣었다. 동요 가사처럼 코끼리는 코가 손이었다. 가끔 코에서 나오는 숨결이 손이나 얼굴에 닿기도 했는데, 그럴 때면 간지러우면서도 우리 모두 이 지구에서 함께 살아가는 존재구나...라는 것이 느낄 수 있었다.


이렇게 먹이를 주면서 친해진 코끼리 함께 들판으로 나가 진흙 마사지를 했다. 들판에는 무릎 정도 깊이의 지름 3m 정도 되는 진흙 구덩이 몇 군데가 있었다. 그 진흙을 퍼서 코끼리 몸에 붙여 살살 펴준다. 코끼리가 정말 좋아하는진 모르겠지만, 가만히 있는 걸 보면 싫지는 않은 듯했다. 코끼리의 피부는 거칠고 철심 같은 빳빳한 검정 털이 듬성듬성 나 있었다. 가이드는 운이 좋으면 코끼리 똥 싸는 걸 볼 수 있다고 했고, 우린 웃고 넘겼지만, 그 말은 곧 현실이 되었다. 진흙을 손으로 만지고 있는데 코끼리의 항문이 벌어지면서 똥이 나왔다. 똥의 크기는 어마어마했다. 양손의 주먹을 쥐고 합친 정도의 크기였다. 오줌은 수도꼭지를 최대로 틀었을 때보다 더 세차게 10초 정도 쏟아졌다. 정말 놀라운 광경이었다. 다만 문제는 우리가 지름 3미터 정도 되는 진흙탕 안에 함께 있다는 사실이었다. 수영장에서 누군가 똥과 오줌을 쌌다면 들어가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작은 구덩이 안에 함께 있었다. 하지만 이미 벌어진 일, 코끼리 똥은 섬유질이 많아 종이를 만들 수 있을 정도고, 배설도.... 지극히 자연스러운 생명 활동이다. 그건 코끼리의 잘못이 아니다.

나는 자포자기한 심정으로 묵묵히 진흙을 바르고 마사지를 계속했다. 씻으면 되지. 그리고 언제 또 이런 경험을 하겠어. 여행의 좋은 점은, 감당하기 힘든 일을 겪을 때도 나중에는 웃으며 추억할 수 있을 거라는 걸 안다는 거다. 힘든 일도 하나의 에피소드로 간주하면 그럭저럭 넘어갈 수 있다.


마지막 활동은 계곡에서 코끼리를 씻겨주는 일이었다. 바가지로 물을 퍼 담아 코끼리에게 끼얹으며 샤워를 시켜주었다. 물을 좋아하는 첫째 아이는 제일 먼저 나서서 코끼리와 신나게 물놀이했다. 코끼리도 같이 놀자는 듯이 우리에게 코로 물을 뿌렸다. 코끼리는 코로 물을 뿌리며 관심을 표현하고, 스트레스를 해소한다고 한다.

어른인 나도 가까이에서 코끼리에게 먹이를 주고 진흙 마사지를 해주고, 계곡에서 물놀이하며 감정을 나눴던 시간이 아주 특별했지만, 아이들에게도 평생 기억에 남을 경험이었을 것이다. 반나절을 보낸 코끼리와 헤어지려니 무척 아쉬웠다. 시간을 나누고 나면, 그 존재는 수많은 코끼리 중의 한 마리가 아니다. 이 세상의 유일한 코끼리가 되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그 생명체가 안전하기를 그리고 행복하기를 바라게 된다.

누군가는 이런 보호소도 상업적으로 운영되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 말도 맞다. 하지만 코끼리를 보호하는 데는 돈이 필요하다. 먹이도 필요하고, 건강을 돌보며 관리할 인력도 필요하니까. 가장 좋은 건 자연 속에서 사는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인간의 손에 길들여지고 다친 그들이 완전히 자연으로 돌아가긴 어렵다. 그래서 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은, 함께 살아가는 방식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하고 조심스레 다가가는 것 아닐까.



며칠 뒤, 빠이에서 맞이한 이른 아침, 탁발하는 스님들 곁을 조용히 따르는 강아지들을 보았다. 탁발은 스님이 이른 아침, 마을 사람들로부터 음식을 시주 받으며 하루를 시작하는 불교 전통 의식이다. 사원 곳곳에는 크고 온순한 개들이 어슬렁거렸다. 그들은 사람을 피하지 않았고, 두려워하지도 않았다. 그 평화로운 풍경 속에서 나는 느꼈다. 말이 통하지 않아도 마음이 닿는 방법이 있다는걸, 동물들을 통해 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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