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있으면 되는 거니?”
어머니는 허리를 곧추세우고는 정면을 바라보고 있었다. 올곧은 모습 때문이었을까 목소리엔 긴장감이 서려 있었다. 뭔들 편하게 있는 것이 좋다고 말했다. 어차피 사진으로 찍어서 그림으로 옮길 생각이니까 크게 고생하실 필요도 없다는 말과 함께. 나는 카메라 삼각대의 다리를 펼치기 시작했다. 곧이어 카메라의 조리갯값을 설정하기 위해 시선을 아래로 돌렸다.
“나는 그게 이해가 안 된다. 그림을 어떻게 사진으로 보고 그린다는 건지 원.”
그의 퉁명스러운 음성이 작게 들렸다. 오랜만에 보는 아버지. 아버지는 한평생 식품을 도매로 받아 소매로 납품하는 일을 하셨다. 그는 내가 눈을 뜨기 전에 출근하고 잠들 때 퇴근했던 사람이었다. 하는 만큼 번다는 직업 특성상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긴 했지만. 그나마 한 달에 네 번 있었던 휴일엔 그의 눈은 항상 티브이 속 야구 중계에 향해 있거나 감고 있었다. 이 패턴은 내가 아주 어렸을 때부터 미술을 배운다고 출가하기 전까지 계속되었으니, 사실상 나는 나를 세상과 마주하게 해준 은인과 어색한 사이라고 할 수 있다.
나는 어색한 웃음을 짓는다. 카메라 세팅을 마친 후 어머니를 바라보았다. 여전히 굳어있는 모습의 그녀를 보면서 연신 ‘편하게 하세요, 편하게’라는 말만 되풀이했다. 편하게 하란 말을 듣고 진짜 편해진다면 세상은 이렇게 발전 못 했을 거라는 얄궂은 농담이 아버지의 입에서 삐져나왔다. 긴장으로 가득 찼던 이곳이 농담 덕(?)에 실금이 생겨 그 틈 사이로 공기가 들어오는 것 같았다. 어머니가 숨을 쉬기 시작했다. 그녀는 그제야 미소를 머금고 다소곳한 자세를 취했다.
아버지는 잡지를 보고 있었다. 아마도 여행 잡지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표지에는 몇 가지 종류의 식물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는데, 식물도감이라고 하기에는 잡지 특유의 자유분방한 느낌이 가득했다. 더해서 그 ‘자유분방’함은 왠지 모르게 여행의 냄새를 풍기고 있었다.
나는 그의 눈이 보고 싶었다. 고개를 푹 숙이는 그가 무엇을 읽고 있는지 궁금해졌다. 그리고 문득 아버지의 시선이 무엇을 바라보고 있는지를 궁금해했었는가에 대한 의문이 생겼다. 그것은 참으로 연관 없는 의문이었으나 동시에 내 뒤통수를 둔기로다가 강하게 내려치는 것 같았다. 말했듯이 나는 조금 과장해서 평생 아버지의 눈을 제대로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의 눈동자 색은 타고난 관찰하는 성미 덕에 알고 있을지언정 그것이 무엇을 말하고 싶은지, 어디를 향하는지는 아무것도 몰랐다. 무지를 넘어서 알고 싶은 욕구마저도 들지 않았다.
나는 그런 숙연한 사실에 어디인가론 침묵하고 있지만, 동시에 아무렇지 않은 척 카메라 셔터를 눌러대고 있었다. 잡지 넘기는 소리, 카메라의 렌즈가 감았다가 뜨는 소리, 아주 미세하게 셋 중 누군가 침을 꼴깍 삼키는 소리가 이곳의 실금 사이로 새어 나왔다.
“감사합니다. 고생하셨어요. 오랜만에 오셨는데, 제 작업실도 구경하시고 점심도 하러 가시죠. 요 앞에 괜찮은 식당이 있어서요.”
나는 다리가 긴 카메라를 가로질러 어머니와 아버지에게 한 차례씩 시선을 주며 운을 띄웠다. 아버지는 잡지를 덮고 자리에서 일어나 그대로 주방으로 향했다. 찬장에서 유리컵을 꺼내는 소리가 들렸다. 같은 방향을 바라보던 어머니와 눈이 마주쳤다. 어머니가 생긋 웃으며 말했다.
“네 아버지가 기대를 많이 했단다. 요 며칠간 그림은 어떻게 그려지는 건지 알아보기도 했고, 사실주의가 어쩌니 인상파가 어쩌니 여기 오기 전에 어찌나 이야기하던지, 오랜만에 보는 모습에 나도 기분이 좋아지더구나. 그리고 저 꽃, 내가 사 온 거 아니란다.”
나는 거울 옆, 생기 있게 피어있는 꽃들을 바라보았다. 그 꽃은 어머니가 빈손으로 오기 좀 그랬다고 하시면서 들고 온 선물이었다. 그녀의 말을 끝으로 우리는 꽃을 바라보다가 ‘뭐해, 얼른 밥 먹으러 가야지.’라는 다소 날이 서 있는 소리에 시선을 돌렸다. 그 소리는 물을 마시고 거실로 돌아온 아버지가 한 말이었다. 나는 정면으로 서 있는 아버지의 눈을 바라보았다. 창가의 햇빛을 받아 더욱 선명한 푸른빛의 눈동자. 그의 눈동자는 나에게 향해 있었다.
나는 좋다는 말과 함께 그들을 데리고 현관으로 향했다. 그리고 현관문을 열었다. 어머니가 먼저 나서고 뒤이어 아버지가 나갔다. 나는 문을 닫으며 아버지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그간 내가 보지 못했던 백발의 머리와 빛바랜 어깨, 그리고 스쳐 지나간 푸른 눈에서 존재하고 있었던 것을 보았다. 먼저 나선 어머니는 그 풍경을 바라보고 있었다. 가을, 햇살에 기분이 좋아지는 어느 오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