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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경 Jan 09. 2022

33,33,33,1

얼마 전, 회사 대표님께서 기록의 중요성에 관한 물음을 던진 적이 있었다. 기록하는 이유는 무엇이며, 한다면 이것이 왜 중요한지, 동시에 나한테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에 관한 물음. 그러게, 기록이 왜 중요하지? 사회적으로 성공을 이룬 사람들이 쓴 책이나 그들의 강연, 혹은 명언을 보면 기록의 중요성은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나야 워낙 사회적인 성공에는 그리 관심이 없는 사람이었‘던’지라(작년 초까지만 해도 그저 어떻게든 살겠지, 하던 사람이었다) 그런 이야기를 들어도 그저 시큰둥 넘어가곤 했다. 그러나 요즘은 기록이 ‘김일경’이라는 사람의 데이터를 저장하고, 이를 객관적으로 볼 수 있는 지표라는 것을 깨달은 이후로 기록을 보는 나의 시선은 완전히 달라지게 되었다.

      

감히 생각건대, ‘내가 누구인지 정의’한다는 것은 과거부터 현재까지 살아온 삶의 객관적 인식과 앞으로 살게 될 삶의 구체적인 계획이 합쳐졌을 때 비로소 실현할 수 있다. 내가 생각하는 기록의 중요성은 여기에서 나온다. 나의 역사를 기록함으로써 객관적인 태도를 보일 수 있고, 이를 토대로 나의 구체적인 미래를 계획할 수 있다는 것. 나를 정의하기 위해서는 ‘기록’이라는 원재료가 필요한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올해는 더욱 기록에 힘을 쏟을 예정이다. 정답을 (진심으로)깨닫는 순간만큼 행복한 것이 세상에 또 있을까! 모쪼록 이번 글에서는 신년이니만큼 기록 중 한 종류인 ‘계획 세우기’에 관한 이야기를 주로 하고자 한다.

     

2022 계획 테마는 ‘균형’이다. 나는 올해 세 개의 섹터로 나뉘어 삶을 쏟고자 하는데, 그것들의 수치가 33%, 33%, 33%로 균일하게 이루었으면 하는 목표가 있다. 지금부터는 33%를 이루고 있는 각각의 섹터를 소개하고자 한다.

    

33%

예술가로서의 나

사회에 나온 지 2년 차, 여전히 다양한 일을 하며 아등바등 살고 있지만 스스로 예술가라는 정체성을 잃지 않기 위한 노력을 올해에도 꾸준히 할 예정이다. 현재로서는 2월에 올릴 공연을 참여하고 있고, 모 아트레이블과 계약을 할 예정에 있다. 브런치와 인스타그램에 글을 쓰는 것은 올해도 꾸준히 하고자 한다. 가장 메인으로 세운 계획은 쭉 구상 해왔던 희곡을 완성하는 것이다.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예술을 하는 것은 더욱 힘들어지겠지만, 이를 포기할 순 없다. 삶의 이유는 늘 고난에서 나온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33%

회사원으로서의 나

일은 내 하루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동시에 나는 대부분을 차지하는 일 속에서 생기는 소중한 가치를 놓치고 싶지 않다. 이를 놓친다면, 나는 내 하루의 가치를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까? 나는 그 가치가 회사에서의 내 역할을 증명하는 것에서 발굴해낼 수 있다는 생각을 했다. 내가 정말 잘해서 증명하고, 인정받음으로써 내 말과 행동에 힘과 책임이 가중되는 한 해를 만들고 싶다. 물론, 부수적으로 따라오는 경제적 안정 역시 목적 중 하나라고 볼 수 있겠다.


33%

미래를 생각하는 것

나는 요즘 주식 공부에 푹 빠져있다. 단순 제태크를 하기 위한 것 이상으로 이 세계가 어느 트랜드의 기류를 타 어떤 모습으로 변모하게 되는지 분석하고, 관찰하고 예측하는 재미가 참으로 쏠쏠하다. 이런 주식 공부는 미래를 생각하는 습관을 지니게 해주는데, 이는 내 삶을 계속해서 순환하게 해준다. 우리는 미래를 계속 생각해야 한다. 생각하고 또 생각해서 삶을 순환해야 한다. 올해는 이런 생각하는 힘 자체를 기르는 데 집중하고 싶다. 그러다 보면 역시 부수적으로 따라오는 제태크도 잘할 수 있겠지(사실 이 부분은 제태크에 욕심이 더 가는 것이 솔직한 속내다. 뭐, 모로 가도 한양만 가면 되는 것 아니겠는가).   

  

그리고 1%

영원히 채울 수 없는 것

나는 가장 완벽한 조화란 99%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이 채우지 못한 1%야말로 다음 레벨을 꾀할 수 있는 핵심 원동력이기 때문이다. 세 가지의 섹터는 늘 달라질 수 있고, 전부 훌륭하게 해낼 가능성이 있겠으나 이를 다 완벽하게 해냈다고 하여 내가 정말 완성된 사람인가 하는 물음을 받는다면 글쎄, 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오히려 ‘완성된 사람’은 불완전함을 인정하고, 이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지 고민을 멈추지 않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의미로 이 1%는 영원히 채울 수 없다고 말할 수 있겠다. 완성된 사람이 되기 위해서, 영원히 나아가기 위해서, 어차피 우리는 유한한 존재이지만- 삶을 살아가는 동안엔, 완성된 사람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려고 사는 게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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