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밤엔 이상한 꿈을 꾼 것 같았다. 무언가 반복되는 이야기였는데, 그것은 실로 별것 아닌 일이었다. 평소 내가 꾸는 꿈은 근심에서 파생되어 나온 것들이 나의 목을 졸라 힘들게 하는 것이 대부분이지만, 지난밤은 달랐다. 그럴 때 이상하다고 느끼는 것이다. 별것이 아니라 함은 뜬금없이, 혹은 나와 상관이 거의 없다시피 한 사람이 그날의 주인공이 되거나, 별 신경 쓰지 않았던 사건이나 어떤 노래 같은 것이 계속 반복되는 것을 뜻한다. 아무튼, 그런 꿈을 꾸고 난 뒤의 아침은 서서히 일어나는 것도 아니고, 그저 작동 시간이 설정된 로봇처럼 벌떡 일어나게 된다. 그러면 상쾌하지는 않음과 동시에 기분이 나쁘지도 않고, 그 중간도 아닌 다른 결의 이상한 기운이 나를 맴돈다.
혼자 여행을 오게 되었다. 아침에 눈을 뜨니 낯선 공기가 나를 반긴다. 낯선 침대의 촉감과 차가운 온도. 여행에 왔다고 자각하기까진 오래 걸리지 않았지만, 동시에 오래 걸렸다. 여행을 자주 가지 않는 나는 가게 된다면 주로 바다를 갔다. 아니면 친구들과 일 년에 한 번 하계휴가로 가는 계곡을 가거나. 그런데, 근래 딱히 일상이 변하거나 더 복잡해지지 않았음에도 나는 허무를 느끼고 말았다. 그 허무를 어떻게든 넘겨내고 싶어서 내린 교과서적인 답으로 여행에 와버린 것이다. 괜한 서러운 마음에 와버린 이곳은 자주 갔던 바다도, 계곡도 아닌 인적 드문 산림 속이다.
허무에 관한 이야기가 나온 김에… 사실 허무란 것은 내가 편해야만 오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편하다는 것은 두 가지 측면에서 이야기할 수 있다. ‘더는 이룰 것은 없다.’라고 느끼는 모든 것을 취한 자와 ‘아무것도 이룰 수 없다.’라고 말하는 아무것도 손에 쥐지 못한 자. 만족에서 오는 편안함과 모든 것을 놔버린 미련 없는 편안함. 우리는 애석하게도 세 가지 자세를 취할 수밖에 없는 운명을 타고난 것이다. 만족하거나, 불만족하거나. 아니면 만족하면서 불만족하거나. 그런 의미에서 이 세 가지의 만족, 즉 모든 것은 허무로 귀결되는 이 사실을 부정할 수 없다. 나는 그 낙인과도 같은 진리를 잠시나마 잊고자 응급조치(?)식의 여행을 와버린 것인데, 좋은 방법이었을까 생각하다가 그런 고민도 색다른 공기와 풍경에 금방 날아 가버리고 말았다. 그런 걸 보면, 여행은 망각하기에 참 좋은 특성이 있다.
완전한 하루가 시작되기 전이었다. 모든 나무가 붉고 노란 옷으로 갈아입는 가을, 나는 숙소에서 나와 얇은 카디건을 몸에 두르고 잔뜩 움츠린 채 산책을 시작했다. 아침 공기가 코를 강하게 찔러 크게 들이마시지 못하는 것이 못내 아쉬웠다. 내가 사는 도시는 이런 공기를 맡을 수 없다는 마음은 덤으로. 하늘은 물을 잔뜩 탄 남색의 모습, 분명히 밝아졌음에도 불구하고 초승달은 선명히 걸려있었다.
나는 하염없이 걸었다. 굵은 흙을 지르밟으며 어떨 땐 이미 할 일을 끝낸 낙엽을 밟으며, 높고 낮은 나무를 지나 어느새 누군가가 만든 건 아니었을까 싶은 연못에 도착했다. 나는 적당히 연못이 잘 보이는 곳에 터를 잡고 엉덩이를 뉘었다. 오랜 시간 이곳에 있었던 연못인 것 같았다. 곳곳엔 수련이 아침이슬을 머금고 보란 듯이 그 작은 몸을 피우고 있었고 가장자리에 있는 돌에는 이끼가 자라고 있었다. 얕은 연못이었을 것이다. 아니면 매우 맑은 물의 연못이었을 것이다. 연못의 바닥엔 그간 어떻게 빠졌는지 영문을 알 수 없는 나뭇가지와 죽은 잎들이 깔려 있었다. 적지 않은 양이 쌓여있는 잎들과 어느 것은 누워있고, 잎에 감싸져 있기도 하면서 뾰족한 자태를 자랑이라도 하는 듯 하늘을 향해 솟아있는 나뭇가지들도 보였다.
어딘가에서 바람을 탄 죽은 잎이 연못에 떨어졌다. 잎은 나룻배처럼 연못 위에 둥둥 떠 있었다. 그러다 물을 머금은 잎이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바닥으로 점점, 오목한 부분에 물을 채우더니 꼬르륵 가라앉고야 말았다. 그렇게 연못엔 정적이 찾아왔다. 뜬금없게도 나는 그 광경 앞에서 영문 모를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잎아, 그 안에서는 새들의 지저귐도 듣지 말고 모진 바람의 풍파도 겪지 말아라. 때가 되어서 연못의 진흙이 너를 덮으면 그곳에는 아무것도 없을 것이다. 그러면 그때는 네가 편하게 눈을 감을 수 있겠지. 끝이라 생각했겠지만, 고통의 연속인 네가 나는 너무 가엾다.
이렇게 예상할 수 없는 게 인생이다.
나는 수북이 쌓인 잎 더미가 보이지 않을 정도로 눈앞이 뿌옇게 되자 고개를 떨어뜨리고 홀린 듯 자리에서 일어나고야 말았다. 그리고 숙소로 돌아갔다.
체크아웃 시간보다 일찍 나왔다. 오늘도 변함없는 하루가 시작되는 것이다. 현관 앞에서 꽤 무게가 있는 짐 가방을 어깨에 멘다. 내 얼굴엔 가을볕이 내리쬐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