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니까, 자판기 앞에서 칠백 원짜리 음료를 사 먹기 위해 겉옷 안주머니서 동전 지갑을 꺼냈을 때였다. 지갑은 할아버지 쌈짓돈 넣고 다니는 주머니처럼 생긴 동전 지갑이었다. 나는 희한하게도 주된 계산은 삼성페이로 하면서 동전 지갑은 꼭 들고 다녔다. 나름의 철칙이 있다면 그 안에는 절대 지폐를 넣지 않는 것이었다. 그러면 대부분 지갑은 동전을 가득 삼켜 두둑한 상태가 되어 있는데, 여리여리한 생김새와는 다르게 묵직한 무게가 매력적이다. 나는 그런 이질적이면서 완벽한 존재에게 매력을 느낀다. 거창하게 말한 듯하여 정정하자면, 얇은 책 종이를 빠르게 넘기다 피를 본다든지, 이게 1인분이 맞나 싶을 정도의 파스타면 뭉치를 먹었을 때 오는 포만감을 느낄 때라든지, 예상하지 못하는 나의 결핍과 결핍이라 생각하는 것들의 온전함을 보았을 때, 나는 순간 압도당하고, 호감을 느낀다. 그것은 삶 이곳저곳에 숨어있고, 나는 아무도 모르게 보물찾기를 하는 어린아이처럼 그것을 찾는다. 은밀하고도 의미 없게, 동시에 모든 의미가 되게.
동전 지갑의 지퍼를 열고 칠백 원을 찾기 위해 녀석의 뱃속을 휘젓는다. 도저히 오백 원의 행방을 찾을 수가 없어서 나는 백 원 일곱 개를 찾는 방향으로 작전을 변경한다. 동전을 고르는 엄지와 검지 뒤에 위태롭게 육백 원을 쥐고 있다가 아뿔싸, 손에 쥔 동전 모두를 바닥에 흩뿌리게 되었다. 나는 허둥지둥하며 구르는 동전을 바라본다. 허리를 잔뜩 구부려 백 원을 하나, 둘 찾는다. 그러다 멀지 않은 반대편에 있던 그 사람과 눈이 마주쳤다. 흡사 중등생의 몸과 어른의 얼굴을 가진 그 사람. 허리를 잔뜩 구부린 탓에, 그의 엉덩이가 머리보다 미세하게 더 높이 솟아있는 모습을 하고 있던 그 사람은 나를 보고 싱긋 웃고 있었다.
처음에는 나를 도와주기 위해 이만큼 허리를 구부리는 사람이 있나, 하는 마음에 감동하였지만, 눈에 보이던 동전을 다 줍고도, 내가 허리를 펴 감사 인사를 하려고 할 때도 그는 여전히 허리 굽은 그 모습을 유지하고 있었다. 순간, 아차 하는 마음이 생긴다. 그러자 중저음의 차분한 목소리가 땅을 타고 나에게 왔다.
“동전은 모두 잘 찾은 겁니까?”
나는 그의 물음에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고민에 빠졌다. 사람 얼굴 보고 대화를 나누는 건 상식이니까 그에 맞춰서 나도 허리를 구부려야 할까? 아니, 그랬다가 조롱했다며 불쾌해하면 어쩌지? 그럼 그냥 시선만 낮춰서 인사를 해야 할까? 아니야, 그건 너무 성의가 없잖아. 아, 그럼 음료수를 대접하면 되려나? 아니야, 그러면… 컴퓨터의 처리 속도와 버금갈 만하게 여러 생각의 옳고 그름을 따지던 도중, 목소리가 들렸다.
“동전은 참으로 아름다운 존재입니다. 동전은 원을 이루고 있잖아요? 원은 우리가 감히 셀 수도 없을 만큼의 꼭짓점과 선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걸 알고 있습니까? 동시에 동전이 아름다운 이유는 그 역할을 하는 동안에는 무한대로 꼭짓점과 선이 생긴다는 것이에요. 본인을 깎고 지워서 아름다움을 유지하는 것이죠.”
그 사람은 내 잃어버린 동전 중 하나를 엄지와 검지 사이에 감싸 쥐곤 뚫어지라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그 모습이 흡사 영화 반지의 제왕 속 절대 반지를 움켜쥔 골룸의 모습과 닮았다고 생각했다. 그 사람은 말을 끝으로 내 신발 위에 백 원을 올려두고는 이곳을 떠나려는 듯 정반대 방향으로 몸을 돌렸다. 그는 느린 속도였지만, 꾸준한 발놀림으로 나에게서 멀어지고 있었다. 그 작은 몸이 가는 방향은 햇빛을 정통으로 받았고, 덕분에 멀어질수록 땅 아래 솟아오른 그림자는 점점 더 커지고 있었다.
내 눈동자 속 그의 그림자가 차올라 내가 그를 담는 것이 아닌 그가 나를 담게 되었을 때, 나는 경주마가 도약하듯 그를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무엇 때문일까. 무엇이 나를 설레게 하였을까. 아마 달리는 이유가 달리는 것인 경주마만이 나의 이 심정을 이해해주리라. 얼마 안 가 그에게 가까워진 나는 살짝 거친 숨을 몰아쉬며 말을 뱉었다.
“선생님, 선생님! 동전, 이야기, 잠깐, 할 수 있을까요. 음료수라도 대접하고 싶어서요. 선생님과,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요.”
말이 끝나자 분주하게 움직이던 두 발은 멈췄고, 처음 동전을 주울 때 마주치듯 나를 향해 몸을 돌리더니 이내 말없이 자판기 쪽으로 향해 움직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