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 지폐가 생기면 어디에다 보관하느냐고? 보관하지 않는다. 나는 지갑이 없다. 이유는 간단했다. 지갑을 자주 잃어버리기 때문이다. 나는 특이하게도 지갑을 잘 잃어버렸다. 짧게는 이틀 만에 잃어버린 적도 있고, 길어봐야 한 달을 넘기질 못했다. 처음에는 좋은 지갑에 재물운이 들어온다는 이야기를 듣고, 그 안에 들어가고 나올 돈의 총합을 뛰어넘는 가격의 지갑을 구매했다가 재물운의 기대만큼, 혹은 그 이상으로 실망하여 좀 더 저렴한 가격의 지갑을 사고, 그러다 시장 바닥에 팔 법한 오천 원짜리 지갑을 샀다가 이번엔 오래가는 듯하여 ‘아, 지갑의 운은 가격으로 정해지는 것이 아니구나.’라고 생각이 들 때쯤 그것마저 잃어버리고 나니 나는 그냥 지갑을 들고 다니면 안 되는 사람이 되어버린 것 같았다. 그런 생각이 들고나서 마련한 것이 이 꾀죄죄한 복주머니 동전 지갑이다. 신기하게도 이 녀석은 애초에 원했던 재물운을 생각하지 않으니 나를 떠나지 않았다. 애정과 애착 사이, 친하면서도 어색한 것이 녀석과 나 사이였다. 무언가를 바라는 순간, 사라지는 것이구나. 만약 내가 지폐를 보관하였다가 동전 지갑이 더는 그 이름을 유지하지 못하게 되는 순간, 다른 녀석들처럼 나를 떠날까 봐 지폐는 절대 넣지 않는다. 내 나름의 징크스는, 아니 결핍에서 오는 안정은 이렇게 지켜지는 것이다.
“아름답지 않은 것은 말이죠.”
그와 나는 음료수를 들고 벤치에 앉았다. 벤치의 높이와 비슷한 키를 가진 그는 나름의 요령이 있는 듯 그리 어렵지 않게 벤치에 앉았다. 그러나 그의 굽은 허리는 여전했는데, 그 덕분에 얼굴은 물론 그가 들고 있는 음료수의 모습조차 등에 가려 보이지 않았다. 나와 그는 동시에 음료수 캔 뚜껑을 당겼다. 음료를 한껏 들이켠 후 그를 바라봤을 때, 그는 좁은 캔 구멍 안에 가득 차 찰랑거리는 음료를 응시하는 듯했다.
“아름답지 않은 것은 말이죠. 아무것도 없는 것이에요. 아무것도 없다는 건 인식할 수 있는, 혹은 인식할 수 없는 그 무엇도 없다는 뜻이에요. 저는 그것을 완벽이라고 불러요. 고로 완벽은 아름답지 않아요. 아름답다는 건 불완전함에서부터 시작하는 거예요. 점에서 시작된 불완전함은 선이 되어 곡선이 되고, 또 다른 점과 이어져 하나의 면이 되고, 면의 생김새는 모두가 달라요. 또는 어느 시점에서 보느냐에 따라 달라요. 책장 속 가지런히 진열되어있는 책 한 권의 면과 태양을 둘러싼 별들의 점을 이은 면의 정의가 다르듯 말이죠. 다만, 아무리 큰 의미를 품고 있는 듯해도 결과적으로 본질은 같아요. 존재하면서부터 불완전한 것이고, 완전하지 못한 것만이 아름다운 것이며 완전한 것은 존재할 수 없으므로 아름답지 못하다. 조금 어려울까요.”
조용한 이곳의 작은 소리에도 묻힐듯한 그의 중저음이 나에겐 참으로 선명하게 들렸다. 무슨 말인지 완전히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그가 말을 하는 동안 나에겐 이곳에 불어오는 모든 소리가 묵음이 되어 그의 음성만 남게 되었고, 모든 세상의 색은 흑백이 되어 아이러니하게도 그가 응시하고 있는 음료수 캔 구멍 속 찰랑대는 음료의 색만이 선명히 보이게 되었다. 어쩌면 아무 빛도 들어오지 않아 가장 검정에 가깝다고 말할 수 있는 캔의 음료는 출렁이는 호수의 모양과 같았고, 그것은 더는 검은색이 아니게 되어 윤슬이 된 듯 반짝이고 있었다.
“마치, 선생님이 쥐고 계신 캔 속 음료처럼요.”
나는 홀린 듯 대답을 하고 말았다. 그는 나의 대답에 흥미가 있는 듯 귀를 시작으로 고개를 내 쪽으로 아주 미세하게 돌리는 듯하더니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음료로 고개를 돌려 시선을 주기 시작했다. 그가 어떤 행동을 하지 않았음에도 음료는 넘실대고 있었다. 가득 채워져 있던 음료의 파도는 가까스로 캔을 빠져나올 듯하다가 다시 들어가고, 또 빠져나오려는 듯하다가 다시 들어갔다. 그는 음료를 마시지 않고 계속해서 응시하고 있었다.
“넘실대는, 좌로, 우로, 혹은 위로, 아래로, 움푹 파이기도 했다가, 세차게 솟아오르기도 하는, 너무나 세찬 것의 꼭대기 파편은 방울이 되어 녀석은 안착한 곳의 또 다른 파도가 되고, 또다시 넘실대는, 좌로, 우로, 캔 음료처럼. 그럴지도 모르겠어요. 그럼 동전 이야기를 다시 해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