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계속해서 동전 이야기를 했다. 동전의 기원부터 시작해 알려진 역사와 아직 인류가 발견하지 못한 동전의 역사, 동전의 쓰임새와 세계 각국 동전의 의미, 그의 역할과 책임(이는 동전의 쓰임새와 비슷한 의미 같지만, 관점에 따라 정의를 나눌 수 있다고 그는 말했다), 심지어는 향후 동전이 어떻게 될지에 대한 미래 이야기도 해주었다. 앞으로 오십 년 뒤 동전의 모습, 백 년 뒤, 오백 년 뒤, 만년 뒤, 오천만 년 뒤, 그 숫자를 헤아릴 수 없을 만큼의 시간이 흐른 뒤의 동전의 모습을. 그런 동전의 이야기를 들으니 자연스럽게 인류가 어떻게 살아왔는지, 또 미래엔 어떻게 될지에 대한 힌트도 얻게 되었다. 그렇게 예상 가능했던 미래 세상의 범주를 뛰어넘어 도저히 나의 상식으론 이해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을 때, 나는 그제야 동전 이야기에 제대로 집중하게 되었다.
그는 분명 담백하게, 말하고 싶은 바의 핵심만 이야기했음에도 음료수 캔을 땄을 때 중천이던 해는 빠르게 고개를 넘었고, 나는 밤의 색이 짙어진다는 사실도 알지 못한 채 새벽을 맞이하게 되었다. 내가 새벽이라는 걸 알게 된 것은 낮과 밤의 시간이 아닌 음료수 캔에 맺힌 이슬 때문이었다. 이슬을 알게 된 것도 그저 맺혀 있던 녀석이 흘러내려 내 손가락에 부딪힌 촉감 때문에 알 수 있던 것이었으며 이슬이 나를 두드리기 전까지 내 모든 오감, 아니 육감은 그가 하는 동전 이야기에 집중되어 있었다. 내가 이슬의 촉감에 새벽을 인지하게 되자, 그는 어찌 그 사실을 알았는지 무한정으로 이루어질 것 같았던 이야기를 정리하는 듯했다. 아주 서서히, 피어오른 아지랑이가 그 모습과 너무나도 어울리게 흐려지듯이. 아침이 되자, 그는 모든 이야기를 마치고 다시 캔을 바라보고 있었다.
정적이 얼마간 흐르고 나니 흑백이던 세상이 다시 색을 되찾기 시작했다. 아침의 햇살이 나와 그가 앉은 이곳을 비추고, 새벽에 이슬을 잔뜩 마신 나무와 여린 잎들의 생기가 참으로 아름다웠으며 하늘엔 구름 한 점 없었고 아직 아무 오염도 되지 않은 오늘의 새로운 공기는 여기 있는 모든 살아있는 것과 죽은 것들에게 희망을 주는 것 같았다.
선생님은, 아니 당신은 사람이 아니라 신(神)인 거냐고 물어보려 했지만,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말할 수 없는 이유를 알지 못하기 때문에 더욱 말할 수 없는 심정을 이리 격렬하게, 몸 구석구석 느끼기는 처음이었다. 아니, 본능적으로 알 수 없었다. 살면서 절대, 다시는 느끼지 못할 감각과 감정이라는 것을, 나는 알고 있었다.
또 얼마간 우리는 말이 없었다. 그렇게 아침의 생기가 옅어져 갈 때쯤, 갑자기 그는 굽어진 허리를 한순간에 쭉 피더니 고개를 뒤로 젖히며 응시하던 음료를 벌컥벌컥 들이마시기 시작했다. 나는 번개와 같이 행동하는 그를 보고 깜짝 놀랐지만, 이내 빠른 속도로 안정을 찾게 되었다. 참으로 올곧은 자세였다. 몸을 전부 폈음에도 성인의 얼굴과 어울리지 않는 작은 키를 가진 그의 모습은 진정으로 아름다웠다. 음료수를 마시는 인물의 모습에서 아름다움의 진리를 깨우치게 되었다는 사실을 당신은 믿을 수 있는가? 그러나 나는 그렇게 말할 수밖에 없다. 상식적으로 부정해야 한다는 걸 알면서도 부정할 수 없는 것이다. 그렇게 나는, 아름다움을 알게 되었다.
그는 음료수를 전부 마시고, 내뱉는 호흡 하나 없이 그대로 고개를 내렸다. 그리고 나를 바라보았다. 처음 만났을 때 보여준 미소를 싱긋 짓는다. 나도 덩달아 미소가 나온다. 이유 모를 행복이 나를 머금었다. 내 눈동자에 그의 모습이 가득했다.
그리고 내가 눈을 깜빡이자, 그는 언제 그 자리에 있었냐는 듯 감쪽같이 사라지고 말았다. 내 옆자리엔 그가 마신 음료수 캔만이 놓여 있었다. 나는 그가 번개같이 고개를 젖힐 때와 같이 깜짝 놀랐다가, 이내 이유 모를 안정을 찾게 되었다. 평화. 아직 오전이었다.
나는 안주머니에 있던 동전 지갑을 꺼낸다. 그리고 그의 지퍼를 열어 동전 하나를 꺼내 든다. 1990년대에 만든 백 원짜리 동전이다. 녀석의 모습을 앞뒤로 자세히 살펴보니 이곳저곳 긁히고 파인 자국이 남발이다. 해가 중천에 뜨자 그의 빛이 백 원을 비추어 찬란히 빛난다. 그것은 내가 보았던 음료 캔 속 윤슬과 같았다. 동전의 상처들이 하나하나의 파도가 되어 윤슬이 되었다. 나는 음료를 사 먹기 위해 동전을 집기 시작했다. 하나, 둘, 셋, 넷, 다섯, 여섯, 일곱. 음료 캔을 뽑아 든다. 나는 음료 캔을 얼마간 응시하다가, 이내 녀석을 당긴다. fin